미국 차세대 원자력 연료 제조 ‘스탠다드 뉴클리어’, 1.4억 달러 시리즈 A 투자 유치


창업 1년 만에 미국 정부 핵심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상업용 HALEU TRISO 연료 생산까지 개시한 스탠다드 뉴클리어(Standard Nuclear)가 시리즈 A 라운드에서 1억 4,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디시시브 포인트(Decisive Point)가 투자를 주도했고, 쉐브론 테크놀로지 벤처스(Chevron Technology Ventures), 스텝스톤 그룹(StepStone Group), XTX 벤처스(XTX Ventures) 등 신규 투자자와 웰라라(Welara), 펀도모(Fundomo), 앤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등 기존 투자자들이 함께했다.

standard nuclear logo - 와우테일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본사를 둔 차세대 원자력 연료 전문 제조기업이다. 원자력 발전을 이해하려면 먼저 연료에 대해 알아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이라는 물질을 쪼개면서(핵분열) 나오는 엄청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석탄을 태우는 것과 비슷한데, 석탄 대신 우라늄을 쓰는 셈이다.

문제는 자연 상태의 우라늄은 핵분열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우라늄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핵분열이 잘 되는 우라늄-235는 자연 상태에서 0.7%밖에 안 된다. 나머지 99.3%는 우라늄-238로 핵분열이 거의 안 된다. 그래서 우라늄-235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농축’ 과정을 거친다. 기존 상업용 원자로는 우라늄-235를 3~5%까지 높인 ‘저농축 우라늄(LEU)’을 쓴다.

차세대 원자로는 한 단계 더 나간다. 크기를 훨씬 작게 만들면서도 효율을 높이려면 더 농축된 연료가 필요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HALEU(High-Assay Low-Enriched Uranium)다. 우라늄-235를 5~20%까지 농축한 연료로, 작은 원자로에서도 충분한 전력을 뽑아낼 수 있고 한 번 넣으면 오래 쓸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러시아 로사톰(Rosatom) 자회사 TENEX만 상업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중국도 대량 생산 인프라를 갖췄다. HALEU의 국내 생산은 미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스탠다드 뉴클리어가 만드는 건 이 HALEU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TRISO(Tri-structural Isotropic) 연료다. TRISO는 양귀비 씨앗만 한 크기의 작은 공 모양인데, 내부 구조가 독특하다. 가장 안쪽에 우라늄 핵이 있고, 그 주변을 세라믹과 탄소 소재로 세 겹 감쌌다. M&M 초콜릿처럼 딱딱한 껍질로 여러 번 코팅한 구조다. 이 껍질이 방사성 물질을 완벽하게 가둬둔다. 1,60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껍질이 녹지 않고, 원자로에 문제가 생겨도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구상에서 가장 견고한 핵연료”라고 부르는 이유다.

TRISO 연료는 특히 차세대 소형 원자로에 꼭 필요하다. 고온 가스 냉각로나 용융염 냉각로 같은 새로운 원자로는 기존보다 훨씬 높은 온도에서 돌아간다. 효율이 높아지는 대신 연료에 가해지는 열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일반 연료는 이런 환경을 못 버티지만, TRISO는 가능하다. 각각의 TRISO 입자가 독립적인 격납 용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안전성도 획기적으로 높다.

이번 투자금으로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2026년 중반까지 여러 전략 거점에서 연간 TRISO 생산량을 2메트릭톤 이상으로 늘린다. 회사가 이미 민간 자금으로 돌리고 있는 상업 규모 생산 라인을 넘어서는 대폭 확장이다. 커트 테라니(Kurt Terrani) CEO는 “창업한 지 1년 만에 엄청난 성과를 냈다”며 “오늘 HALEU TRISO 생산을 시작한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테라니 CEO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10년간 선임 연구원으로 일한 뒤 울트라 세이프 뉴클리어(Ultra Safe Nuclear) 부사장을 거쳐 스탠다드 뉴클리어를 세웠다.

스탠다드 뉴클리어가 특히 주목받는 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HALEU 공급 허가를 받고 실제로 HALEU를 받아낸 첫 기업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지난달 오크리지 시설에서 HALEU 원료를 받았다. 에너지부가 캘리포니아 마이크로원자로 개발사 라디언트(Radiant)에 할당한 물량이다.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이 HALEU를 TRISO 연료로 가공해 라디언트의 2026년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에 공급한다. 받은 양이 라디언트 첫 원자로를 가동하기에 충분한 전체 노심 장전량이다. 라디언트는 최근 3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으며 1MW급 휴대용 마이크로원자로 ‘칼레이도스(Kaleidos)’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탠다드 뉴클리어의 빠른 성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원자력 정책 덕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5월 행정명령으로 2026년 7월 4일까지 3개 원자로가 임계(criticality)에 도달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에너지부의 ‘원자로 파일럿 프로그램’과 ‘연료 라인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연료 라인 파일럿 프로그램에 뽑힌 첫 기업으로, 에너지부 승인만 받으면 원자력규제위원회(NRC) 허가 없이 시설을 돌릴 수 있다. 민간 자금으로 차세대 핵연료 생산 시설을 빠르게 가동하려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디시시브 포인트의 토마스 헨드릭스(Thomas Hendrix) 총괄 파트너이자 스탠다드 뉴클리어 회장은 “미국이 새로운 원자력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명확한 방향, 새로운 산업 정책, AI 데이터센터 붐, 그리고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전력이 국가 안보에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이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미국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국내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을 만들고 키우겠다는 분명한 목표로 세워졌다”고 강조했다.

창업 1년 만에 스탠다드 뉴클리어가 이룬 성과는 눈에 띈다. 에너지부 연료 라인 파일럿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뽑혔고, 에너지부와 관할권 이전을 위한 최초의 기타 거래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원자력 대기업 프라마톰(Framatome)과 합작투자도 성사시켰다. 합작법인 스탠다드 뉴클리어-프라마톰(SNF)은 2027년부터 연간 2메트릭톤의 TRISO 연료를 만든다. 미국 내 차세대 원자로에 공급할 연료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TRISO 연료 시장에는 경쟁자들도 있다. 엑스에너지(X-energy) 자회사 TRISO-X와 BWX테크놀로지스(BWXT)다. 엑스에너지는 최근 7억 달러를 끌어모으며 아마존, 다우(Dow)와 손잡고 Xe-100 소형모듈원자로(SMR)와 TRISO 연료 생산을 키우고 있다. BWXT는 20년 넘게 TRISO 연료를 만들어온 베테랑으로,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와 협력해 상업 규모 생산을 준비 중이다.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이들과 달리 “미국 내 유일한 독립 TRISO 연료 제조사”라는 점을 내세운다. 어떤 원자로든 연료를 공급하겠다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미국 정부는 HALEU와 저농축 우라늄 공급망을 키우려고 27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아메리칸 센트리퓨지 오퍼레이팅(American Centrifuge Operating), 제너럴 매터(General Matter), 오라노 페더럴 서비스(Orano Federal Services)가 각각 9억 달러씩 받았다. 이들은 주로 우라늄 농축 서비스에 집중한다. 반면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HALEU를 실제 TRISO 연료로 만드는 최종 제조 단계를 맡는다.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TRISO 연료만 만드는 게 아니다. 방사성동위원소 전력 시스템도 생산하며 우주와 국방 분야까지 사업을 넓히고 있다. 회사의 목표는 “전 세계에 비용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믿을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의 핵심 부품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 기술과 주요 인프라 투자 기업들의 지원을 받으며, 지상과 우주 모두에 쓰이는 차세대 원자로용 TRISO 연료를 만든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미국 적대국에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재미있는 건 스탠다드 뉴클리어가 완전히 새로 시작한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테크크런치 보도를 보면 2024년 10월 파산한 울트라 세이프 뉴클리어 코퍼레이션(USNC)의 자산을 2,800만 달러에 사들여 만들어졌다. 울트라 세이프 뉴클리어는 TRISO 연료 외에도 원자로 설계 두 가지, 우주 추진 시스템, 우주선용 핵 열원까지 손대다 망했다.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하려다 실패한 케이스다.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TRISO 연료 제조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빠르게 다시 일어섰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치솟고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스탠다드 뉴클리어는 미국 차세대 원자력 산업의 핵심 공급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2026년 여름 라디언트의 원자로 테스트가 시작되면, 스탠다드 뉴클리어가 만든 TRISO 연료가 실제 원자로에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원자력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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