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패션 AI 인프라 ‘플릭’, 2500만 달러 시리즈B 유치


중고패션 AI 인프라 ‘플릭’, 2500만 달러 시리즈B 유치

매년 최대 240억 벌의 옷이 런던·파리·뉴욕의 기부함에서 전 세계 섬유 분류·등급판정 센터로 흘러들어간다. 중고 의류 수요가 일반 의류보다 3배 빠르게 늘고 있는데도, 2000억 달러 규모의 이 산업은 여전히 수작업·파편화·오프라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옷은 사람 손으로 일일이 감정되고, 등급 기준은 업체마다 제각각이며, 가격 투명성 없이 끊어진 네트워크를 통해 거래된다. 디지털화 없이는 이미 넘쳐나는 수요조차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중고패션 AI 인프라 '플릭', 2500만 달러 시리즈B 유치

이 틈을 파고든 곳이 영국 스타트업 플릭(Fleek)이다. 2021년 런던에서 창업한 플릭은 전 세계 중고 의류 도매업체·등급판정업체와 소매업체·리셀러를 잇는 B2B 마켓플레이스에, 이 공급망을 디지털화하는 AI 시스템을 결합한 인프라 기업이다.

창업 계기는 우연한 대화에서 나왔다. 아비 아로라(Abhi Arora) 공동창업자 겸 CEO가 즐겨 찾던 런던 브릭레인의 한 빈티지 옷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장은 코로나19로 아시아·중동으로 직접 사입을 떠나던 길이 막히면서 온라인 브로커에게 의존하게 됐고, 그중 한 곳에 1만5천 달러 넘게 사기를 당한 뒤 마진까지 깎여 결국 폐업을 택했다고 털어놨다. 아로라는 이 이야기를 온라인 창업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산케트 아가르왈(Sanket Agarwal) 공동창업자 겸 CTO에게 전했고, 아가르왈의 장모 역시 중고의류를 팔며 같은 소싱 문제를 겪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공급이 수요만큼 빠르게 늘지 못하는 게 이 산업의 진짜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플릭을 창업했다. 아로라는 UC버클리를 나와 케임브리지에서 MBA를 마쳤고, 덥스매시(Dubsmash)의 초기 멤버로 성장을 이끈 뒤 이 회사가 레딧(Reddit)에 인수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아가르왈은 헬스케어 음성AI 스타트업 수키(Suki)의 창립 엔지니어 출신이다.

플릭은 부르다프린시펄인베스트먼트(Burda Principal Investments) 주도로 2500만 달러 규모 시리즈B를 유치했다고 9일 밝혔다. 부르다는 중고의류 플랫폼 빈티드(Vinted)의 초기 투자자이자 시리즈C 리드 투자사이기도 하다. 이번 라운드에는 이베이(eBay), FJ랩스(FJ Labs), H14가 새로 참여했고, 안드레센호로위츠(a16z)·HV캐피탈·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등 기존 투자자도 이어서 투자했다. 이번 조달로 플릭의 누적 투자액은 4500만 달러로 늘었다. 기업가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조달 자금은 AI 네이티브 마켓플레이스 개발 가속, 엔지니어링 팀 확충, 기술 플랫폼 확장, 구매자·공급자 네트워크 확대에 투입된다.

플릭은 창업 후 3년을 마켓플레이스 자체를 만드는 데 썼고, 약 1년 전부터 AI를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한 끝에 ‘플릭소트(Fleek Sort)’를 내놓았다. 자사 거래 데이터 4년치로 학습시킨 커스텀 비전-언어 모델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몇 장(단 한 장으로도 작동)만으로 옷의 브랜드·스타일·카테고리를 식별하고, 찢어짐이나 봉제 불량 같은 하자를 표시하며, 예상 판매가와 판매 소요 기간까지 추정한다. 파키스탄·인도·두바이의 분류 허브에서 이미 등급판정 작업자들이 쓰고 있고, 영국·유럽·미국에서는 파일럿이 진행 중이다. 아가르왈 CTO는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파트너사는 하루에 옷 60만 파운드(약 27만㎏)어치를 처리한다”며 “이 정도 물량에서는 외부 모델을 그대로 쓰는 게 비용상 불가능해 직접 모델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진위 감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어, 카라치와 델리에 별도 품질검사 센터를 두고 위조가 잦은 브랜드·카테고리를 데이터로 걸러내 직접 점검하고 있다.

처리된 재고는 자동으로 플릭 마켓플레이스에 등록되고, AI 기반 가격 책정·검색·추천·매칭 시스템이 이를 전 세계 구매자와 연결한다. 거래가 쌓일수록 플랫폼은 중고 재고에 대한 이해를 축적해가는 구조다. 현재 플릭은 2천여 개 검증된 도매업체·등급판정업체와 100개국 이상의 소매업체·리셀러·부티크 5만여 곳을 연결하고 있으며, 1200만 벌 이상의 옷을 순환시켜 물 130억 리터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배출 2만3천 톤을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발효된 EU의 섬유 분리수거 의무화 규정과, 팔리지 않은 재고 폐기를 금지하는 새 규정도 앞으로 더 많은 물량을 플릭 같은 채널로 밀어넣을 전망이다.

아로라 CEO는 “옷 한 벌을 손에서 놓은 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수천 마일을 이동해 카라치의 한 창고에서 손으로 분류된 뒤, 운이 좋으면 런던이나 뉴욕의 빈티지 숍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스템은 고장 나 있고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지는데, 정작 이를 고칠 기술과 인프라를 만드는 곳은 없었다”고 창업 배경을 밝혔다. 부르다프린시펄인베스트먼트의 율리안 폰 에카르츠베르크(Julian von Eckartsberg) 유럽 총괄은 “중고패션이 아직 틈새시장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빈티드에 투자했다”며 “플릭은 다음 세대 패션 산업이 의존하게 될 인프라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플릭은 B2B 도매 인프라 영역에서는 직접적인 경쟁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소비자 대상 중고거래 플랫폼인 빈티드(Vinted)베스티에르콜렉티브(Vestiaire Collective)는 개인 판매자와 구매자를 직접 연결하는 C2C 모델로, 도매업체·등급판정업체를 잇는 플릭과는 사업 구조 자체가 다르다. 다만 같은 중고의류 가치사슬 안에서 마이스리프트익스체인지(MyThriftXchange) 같은 B2B 대량 경매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어, 공급망 디지털화를 둘러싼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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