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컴비네이터, 스타트업 투자금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


에어비앤비, 코인베이스, 드롭박스를 배출한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가 2026년 봄 배치부터 스타트업 투자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한다. 전통 벤처캐피탈이 디지털 자산으로 투자금을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YCombinator - 와우테일

와이컴비네이터의 크립토 담당 방문 파트너 네밀 달랄(Nemil Dalal)은 The Block과 인터뷰에서 스타트업들이 기존 50만 달러 투자금을 서클(Circle)의 USDC로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창업자들은 이더리움(Ethereum), 베이스(Base), 솔라나(Solana) 등 주요 블록체인 네트워크 중 원하는 곳에서 USDC를 받으면 된다. 투자 금액이나 지분율(7%) 같은 핵심 조건은 그대로고, 자금 수령 방식에만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중요한 건 크립토 스타트업뿐 아니라 모든 와이컴비네이터 포트폴리오 기업이 이 옵션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와이컴비네이터의 표준 투자 조건(Standard Deal)은 2022년 1월부터 50만 달러로 정해졌다. 이 중 12만5,000달러는 포스트머니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방식으로 확정 지분 7%와 교환된다. 나머지 37만5,000달러는 언캡드 MFN(Most Favored Nation) SAFE로 투자돼, 다음 투자 라운드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자동으로 적용받는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은 프로그램 합격 즉시 50만 달러 전액을 받고, 최소 7%의 지분만 넘기면 된다. 마일스톤 조건도 없고 별도 협상도 필요 없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구조 덕분에 전 세계 창업자들이 와이컴비네이터에 몰린다.

달랄은 스테이블코인 송금이 1센트도 안 되는 수수료로 1초 만에 국경을 넘어 정산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제 전신송금은 은행과 중개 수수료를 합치면 수십 달러가 들고 처리에 며칠이 걸린다. 해외 기반 창업자들에겐 이런 속도와 비용 차이가 결정적이다. 규제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에 시달리는 신흥국 창업자들은 달러 페그 스테이블코인으로 자금을 즉시 확보하고 외환 리스크를 없앨 수 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2012년 코인베이스에 첫 투자한 이후 지금까지 약 100개의 크립토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달랄은 스테이블코인 기술이 성숙해지면서 관련 기업 투자를 적극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외에도 토큰화, 새로운 신용 시장, 온체인 자본 조달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결정의 배경엔 2025년 7월 통과된 지니어스법(GENIUS Act, 미국 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 지침법)이 있다. 이 법은 미국 최초로 포괄적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만들었다. 달랄은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전환점에 도달했다”며 이게 와이컴비네이터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시장 데이터를 보면 지니어스법 통과 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50억 달러에서 3,000억 달러 이상으로 급증했고, 서클의 USDC는 751억 달러로 성장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작년 9월 코인베이스와 손잡고 온체인 인프라 구축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다. 당시 와이컴비네이터는 세상이 “핀테크 3.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코드로 만든 금융 시스템에서 결제가 즉시 처리되고 자산이 자체 보관 지갑에 저장되며 금융 서비스가 24시간 전 세계에서 돌아가는 시대가 온다고 선언했다.

달랄은 “앞으로 스타트업의 금융 니즈는 점점 더 블록체인으로 충족될 것”이라며 “크립토 제품을 안 만드는 스타트업들도 개발자 도구, 송금, 지급처럼 속도와 비용이 중요한 영역에선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론 블록체인이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재무 운영, 나아가 공개시장 진출 방식의 근간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달랄은 전 코인베이스 개발자 플랫폼 리드로 USDC 성장과 x402 프로토콜 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2025년 10월 코인베이스를 떠난 뒤 12월 와이컴비네이터 방문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크립토 생태계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합류한 것 자체가 와이컴비네이터의 블록체인·스테이블코인 전략이 얼마나 진지한지를 보여준다.

와이컴비네이터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결제 수단 추가가 아니다. 벤처캐피탈 업계 패러다임이 바뀌는 신호다. 지금까진 크립토 VC들만 디지털 자산으로 투자금을 줬는데, 실리콘밸리 최고 액셀러레이터가 이걸 표준 옵션으로 내놓으면서 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규제가 명확해진 상황에서 전통 금융기관들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참여를 검토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스타트업 펀딩의 주류 인프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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