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창업자만 챙기던 세컨더리, 이제는 직원 전체가 현금화한다


비상장 스타트업의 주식 거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과거 창업자 개인의 현금 확보 수단으로 악용되던 세컨더리 거래가 이제는 직원들의 보상과 유지를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AI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진다.

Employee Liquidity - 와우테일

지난 5월 AI 영업 자동화 스타트업 클레이(Clay)는 15억 달러 기업가치로 직원 대부분에게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시리즈B 직후 이뤄진 이 유동성 제공은 상대적으로 젊은 기업에서는 여전히 드문 일이었다. 이후 몇 개월 사이 여러 신생 스타트업들이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창립 6년차 AI 프로젝트 관리 툴 리니어(Linear)는 시리즈C 기업가치 12억5000만 달러로 텐더 오퍼를 진행했고, 창립 3년차 AI 음성 스타트업 일레븐랩스(ElevenLabs)는 66억 달러 기업가치로 1억 달러 규모 직원 주식 매각을 승인했다.

지난주에는 클레이가 다시 한번 텐더 오퍼를 단행했다. 1년 만에 연간 반복 매출(ARR)을 1억 달러로 3배 늘린 이 회사는 직원들이 50억 달러 기업가치로 주식을 팔 수 있도록 했다. 지난 8월 31억 달러였던 기업가치가 반년도 안 돼 60% 이상 뛴 셈이다.

세컨더리와 텐더 오퍼, 무엇이 다른가

이해를 돕기 위해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세컨더리 거래(secondary sale)는 회사가 신규 주식을 발행하지 않고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다른 투자자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구주거래라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금이 유입되지 않지만, 주주는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텐더 오퍼(tender offer)는 본래 ‘공개매수’로 번역되는 용어다. 하지만 상장 기업과 비상장 스타트업에서 이 용어가 쓰이는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상장 기업에서 텐더 오퍼는 주로 M&A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사용된다. 인수하려는 측이 불특정 다수 주주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사겠다”고 공개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방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하는 전통적 의미의 공개매수가 바로 이것이다.

반면 비상장 스타트업의 텐더 오퍼는 경영권 탈취와 무관하다. 회사나 투자자가 직원과 초기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각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에 가깝다. 비상장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을 현금화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IPO나 회사 매각 전까지는 ‘종이 위의 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공식적으로 “직원 여러분, 보유 주식의 일부를 이 가격에 팔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하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텐더 오퍼다.

이 기사에서 다루는 클레이, 리니어, 일레븐랩스의 텐더 오퍼는 모두 후자에 해당한다. 같은 용어지만 목적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과거에는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 같은 특정인만 개별적으로 자신의 주식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의 텐더 오퍼는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사적 세컨더리’로 진화하고 있다.

2021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젊은 기업들이 높은 기업가치로 세컨더리 거래를 하는 모습은 언뜻 2021년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가 호핀(Hopin)이다. 가상 이벤트 플랫폼을 운영하던 이 회사는 팬데믹 특수를 타고 최고 기업가치 77억 달러까지 올랐다. 창업자 조니 부파르하트는 이 시기에 자신의 주식 1억950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자 호핀의 가치는 급락했고, 결국 회사 자산은 최고 기업가치의 극히 일부에 매각됐다.

하지만 지금의 세컨더리 거래는 2021년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제로금리 시대에는 창업자들이 개인적으로 거액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최근 클레이, 리니어, 일레븐랩스의 거래는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텐더 오퍼 형태다. 투자자들은 과거의 과도한 창업자 배당에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직원 포함 텐더 오퍼는 훨씬 긍정적으로 본다.

인재 유지의 필수 수단으로

세컨더리 전문 벤처캐피털 뉴뷰캐피털(NewView Capital)의 파트너 닉 부닉은 “우리는 많은 텐더를 진행해왔는데, 아직까지 단점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비상장을 더 오래 유지하고 인재 경쟁이 심화되면서, 직원들이 보유 주식의 일부를 현금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채용과 유지에 강력한 도구가 됐다는 설명이다. “적절한 유동성은 건강하다. 우리는 생태계 전반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클레이 공동 창업자 카림 아민은 첫 텐더 오퍼 당시 “이익이 소수에게만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밝혔다. 실제로 빠르게 성장하는 AI 스타트업들은 조기 유동성을 제공하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텐더를 진행하는 오픈AI(OpenAI)나 스페이스X(SpaceX) 같은 성숙한 기업으로 최고 인재를 빼앗길 위험이 있다.

우려도 존재한다

물론 직원들이 노력의 대가를 현금으로 받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있다. 세컨더리 전문 회사 세인츠캐피털(Saints Capital)의 공동 창업자 켄 소여는 “직원들에게는 물론 긍정적이지만, 기업들이 더 오래 비상장으로 남을 수 있게 해 벤처 투자자들의 유동성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텐더 오퍼를 IPO의 장기 대체 수단으로 삼으면 벤처 생태계에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제한 투자자(LP)들이 현금 수익을 보지 못하면 벤처캐피털에 자금을 대는 것을 꺼리게 되고, 결국 스타트업 투자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