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으로 소 이동”…뉴질랜드 가상 울타리 ‘핼터’, 2.2억 달러 시리즈E 투자유치


울타리를 치지 않고 소를 키우는 세상. 목장주가 스마트폰 화면 위에 선 하나를 그으면 GPS 칼라를 찬 소들이 그 경계를 알아서 지킨다. 핼터(Halter)가 만든 가상 울타리(virtual fencing) 기술이 이 풍경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핼터는 2억 2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E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기업가치는 20억 달러로 평가됐으며, 피터 틸(Peter Thiel)이 공동 창업한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가 이번 라운드를 주도했다. 블랙버드(Blackbird), DCVC, 본드(Bond),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뉴뷰(NewView), 유비퀴티(Ubiquity), 프로무스(Promus), 아이스하우스 벤처스(Icehouse Ventures)가 함께 참여했다.

Halter funding - 와우테일

이번 라운드는 글로벌 애그테크 역대 최대 규모 투자 중 하나로 꼽힌다. 파운더스 펀드는 스페이스X(SpaceX), 팔란티어(Palantir),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에어비앤비, 스트라이프, 안두릴(Anduril), 오픈AI에 초기 투자한 곳이다. 이 펀드가 핼터에 처음 베팅한 건 2017년 시리즈A 때였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판을 키운 셈이다.

뉴질랜드 낙농가 출신 엔지니어, 로켓을 만들다 목장으로 돌아오다

크레이그 피곳(Craig Piggott) CEO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의 낙농가에서 자랐다. 오클랜드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명예 학사를 마친 후 뉴질랜드 민간 우주발사체 기업 로켓랩(Rocket Lab)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이테크 스타트업 환경에서 고성과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배웠지만, 머릿속에는 늘 농업이 있었다. 로켓랩 CEO 피터 벡(Peter Beck)이 창업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지지하면서 2016년 핼터를 창업했다. 피터 벡은 현재 핼터 이사회 멤버로 있다.

핼터의 핵심 제품은 태양광 충전 GPS 칼라다. 칼라를 찬 소들은 앱에서 설정한 가상 경계선에 가까워지면 먼저 음향 신호를 받고, 계속 접근하면 가벼운 진동을 느낀다. 목장주는 철조망을 치지 않고도 스마트폰으로 수백 두의 소떼를 원하는 구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칼라는 태양광으로 충전되기 때문에 배터리 교체 걱정도 없다. 피곳 CEO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들은 세 번의 경험만으로 시스템에 적응한다고 한다.

100만 개 칼라, 22개 주, 6만 마일의 가상 울타리

핼터가 판매한 태양광 칼라가 누적 100만 개를 돌파했다. 뉴질랜드, 호주, 미국에서 2,000명 이상의 목장주와 농민이 핼터를 쓰고 있다. 2024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미국 목장주들이 앱으로 만든 가상 울타리 길이만 6만 마일(약 9만 6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2025년 11월 시점에 집계된 1만 1천 마일에서 불과 몇 달 만에 6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채택 속도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6월 핼터는 본드(Bond)가 주도한 시리즈D에서 1억 달러를 조달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의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10개월이 채 안 되어 기업가치가 두 배로 뛰었다.

파운더스 펀드 파트너 아민 미르자데간(Amin Mirzadegan)은 농업이 전 세계 수조 달러 규모의 산업이면서도 디지털화 수준은 가장 낮은 분야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핼터가 소프트웨어·센서·AI를 실제 목장 운영에 접목해 농민들이 실제로 쓰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DCVC 파트너 스펜서 펀터(Spencer Punter)는 핼터를 여타 애그테크 스타트업이 아니라 상장된 트럭 관제 소프트웨어 업체에 가깝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목장 경영의 OS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일랜드·영국 진출, 200명 이상 신규 채용

이번 조달 자금은 미국·뉴질랜드·호주 상업 운영 확대와 제품 개발에 투입된다. 올해 안에 아일랜드와 영국에 새로 진출하고, 이미 캐나다에서 초기 목장 파트너십을 확보한 상태에서 북미·남미 추가 확장도 검토 중이다. 채용도 대폭 늘린다. 핼터 역사상 최대 규모 채용으로 200명 이상을 뽑을 계획이며, 오클랜드 본사를 중심으로 제품·엔지니어링·고객 부문에 집중한다.

제품 개발 측면에서는 동물 건강 모니터링과 목초지 관리 기능을 확장할 예정이다. 현재 핼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가상 울타리 시스템 도입으로 토지 생산성이 최대 20% 높아지며, 일부 목장에서는 생산량이 두 배로 늘기도 했다.

버추얼 펜싱, 이제 막 시작된 시장

가상 울타리 시장은 경쟁이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핼터 외에 머크 애니멀 헬스(Merck Animal Health)의 벤스(Vence), 갤러거(Gallagher)의 이셰퍼드(eShepherd), 노르웨이의 노펜스(Nofence) 등이 경쟁하고 있다. 노펜스는 2025년 9월 유럽 최대 규모 애그테크 라운드로 꼽히는 3천5백만 달러 시리즈B를 마감했다. 소·양·염소 등 다양한 축종에 대응하는 유일한 업체라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우며 미국 48개 주에서 운영 중이다. 드론을 활용한 신규 진입자도 등장하고 있다.

핼터가 경쟁사 대비 앞서는 지점은 규모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먼저 검증한 기술을 미국 시장에 이식했고, 소수 대형 목장이 아닌 2,000명 이상의 실제 농민들이 매일 쓰는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피곳 CEO는 “농민들이 핼터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기술이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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