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머스크의 ‘테라팹’ 합류…역사상 최대 규모 반도체 공장 프로젝트에 제조 역량 투입


일론 머스크가 구상하는 반도체 공장 ‘테라팹(Terafab)’에 인텔(Intel)이 합류했다. 4월 7일 인텔은 X(구 트위터)를 통해 “테라팹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돼 자랑스럽다“며 “초고성능 칩의 설계·제조·패키징 역량을 바탕으로 테라팹이 연간 1테라와트(TW)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생산하는 목표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인텔 CEO 립부 탄(Lip-Bu Tan)은 지난 주말 인텔 캠퍼스에서 머스크를 직접 만나 파트너십 논의를 마무리했다고 전했다. 인텔 주가는 발표 당일 3% 이상 뛰었다.

Intel Terafab2 - 와우테일

테라팹은 머스크가 지난 3월 21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공식 발표한 스페이스X(SpaceX)·xAI·테슬라(Tesla) 3사 합작 반도체 프로젝트다. 발표 장소도 특별했다. 오스틴 시내 폐발전소 실홀름 파워플랜트(Seaholm Power Plant)를 무대 삼아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벗(Greg Abbott)이 객석에 앉은 가운데 스페이스X 공식 X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공개된 ‘100kW AI 미니샛(AI Mini Sat)’ 콘셉트 이미지는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한눈에 보여줬다. 별도 보도자료는 없었다. 발표는 머스크의 무대 연설과 X 포스트가 전부였다.

머스크의 핵심 주장은 하나다. TSMC, 삼성, 마이크론 같은 기존 공급사들이 자신의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속도로 생산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기존 공급망에 매우 감사하지만, 그들이 편안하게 확장할 수 있는 최대 속도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다”며, 지구상 모든 반도체 공장을 합쳐도 테슬라·스페이스X·xAI가 필요한 컴퓨팅 파워의 약 2%밖에 공급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계획의 스케일은 업계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예상 투자액 200억~250억 달러. 부지는 텍사스 기가팩토리(Giga Texas) 북쪽 캠퍼스다. 기가 텍사스 자체가 지구상 최대 건물 중 하나인데, 테라팹은 그보다 더 큰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청사진은 칩 설계, 리소그래피, 제조, 메모리 생산, 첨단 패키징, 테스트까지 반도체 생산의 전 과정을 한 지붕 아래 통합하는 수직계열화 팹이다. 공정 기술은 현재 상용화에 진입한 최첨단 노드인 2nm. 초기 생산 목표는 월 10만 장(wafer starts)에서 시작해 최종 월 100만 장까지 확장한다. 목표 생산량은 연간 1테라와트 규모의 AI 컴퓨팅 파워로, 현재 전 세계 AI 칩 생산량의 약 50배이자 TSMC 전체 생산량의 70%에 맞먹는 수준이다. 단, 테라팹의 2026년 예상 투자액은 이미 200억 달러를 넘긴 테슬라의 연간 설비투자 계획에 아직 포함돼 있지 않다.

머스크는 X 포스트에서 “테라팹은 기술적으로 두 개의 팹으로, 각각 하나의 칩 설계만 생산한다”고 밝혔다. 첫 번째 팹은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시스템, 사이버캡(Cybercab), 로보택시, 옵티머스(Optimus) 휴머노이드 로봇용 엣지 추론 칩이다. 두 번째는 스페이스X 위성과 xAI 궤도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내방사선(radiation-hardened) D3 칩이다. 테슬라 AI5 칩은 2026년 소량 생산, 2027년 본격 양산이 목표다.

수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옵티머스 수치로 짐작할 수 있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분석에 따르면 기가 텍사스 단일 공장에서 연간 1,000만 대의 로봇을 생산하면 칩 2,000만 개가 필요하다. 이는 현재 테슬라 자동차 사업 전체 수요의 약 6배다. 머스크가 제시한 장기 목표인 연간 1억 대 생산이 실현되면 자동차·로보택시 합산 수요의 50배 이상의 칩이 필요하다. 지금의 공급망으로는 답이 없다는 게 머스크의 논리다.

머스크가 궤도 데이터센터에 생산량의 80%를 쏟아붓겠다는 배경에도 물리적 계산이 있다. 우주 공간은 태양 복사 에너지가 지표면보다 약 5배 강하고, 진공 환경은 열 방출 특성이 지상 데이터센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2~3년 안에 궤도 AI 컴퓨팅이 지상보다 저렴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머스크가 지난 1월 테슬라 칩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AI7/도조3는 우주 기반 AI 컴퓨팅용”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며, 스페이스X가 올해 초 FCC에 저궤도에 100만 개의 데이터센터 위성을 발사하는 계획에 대한 라이선스 신청을 제출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사실 인텔과 머스크의 접점은 이미 있었다. 인텔은 테슬라의 도조3(Dojo 3) 칩 패키징을 애리조나 시설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머스크도 지난해 주주들에게 “인텔과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파트너십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합류는 그 복선의 결과다.

인텔에게는 단순한 수주를 넘어서는 의미다. 엔비디아와 AMD에 밀려 AI 칩 시장의 주도권을 내준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CEO 립부 탄 취임 이후 ‘파운드리 퍼스트(Foundry First)’ 전략을 내세우며 외부 대형 앵커 고객 유치에 공을 들여온 터다. 인텔의 18A(1.8nm급) 공정은 2025년 말~2026년 초 고용량 양산(HVM) 단계에 진입했고, 첨단 패키징 기술은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탄은 “머스크는 산업 전체를 재발명한 검증된 이력이 있다”며 “지금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화답했다.

다만 이번 발표는 보도자료도, SEC 제출 서류도 없었다. X 포스팅 하나가 전부다. 구체적인 역할 분담, 지분 구조,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 해석은 엇갈린다. 인텔이 ‘설계·제조·패키징 역량 제공’을 직접 언급한 만큼, 사실상 인텔이 실질적인 제조를 담당하는 구조라는 시각이 있다. 반면 이것이 테슬라·스페이스X가 인텔 파운드리의 대형 앵커 고객이 되는 형태에 가깝다는 해석도 있다. 전형적인 웨이퍼 공급 계약과 어떻게 다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최첨단 파운드리 하나를 짓는 데 통상 수년에 수백억 달러가 든다. 모건스탠리는 테라팹 전체 구축 비용을 350억~450억 달러로 추산했고, 공격적인 시나리오에서도 초기 칩 생산은 2028년 중반 이전에는 어렵다고 봤다.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Stacy Rasgon)은 1테라와트 목표를 달성하려면 5조~13조 달러의 자본이 필요할 수 있다며 “진정한 테라팹은 과한 목표”라고 잘라 말했다. 

바클레이즈도 자체 강세 시나리오 추정치인 500억 달러의 “수배 이상”이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테슬라는 반도체 제조 경험이 전혀 없다. 인텔이 실질 제조를 맡는다 해도, 머스크가 약속한 타임라인을 그대로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거 배터리 혁명을 약속한 ‘배터리 데이’ 발표가 수년간의 지연 끝에 기대에 훨씬 못 미쳤던 전례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테라팹이 가리키는 방향은 선명하다. AI 컴퓨팅 수요가 기존 파운드리 공급 능력을 빠르게 초과하는 가운데, 빅테크와 AI 기업들이 반도체 공급망을 직접 통제하려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텔이 새 고객을 얻은 것인지, 머스크가 제조 파트너를 얻은 것인지, 아니면 양쪽 다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테라팹이 그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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