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최강 모델 전 세계 차단… AI 주권 전쟁의 서막


반도체 수출 통제에서 시작된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이 마침내 AI 모델로 옮겨붙었다. 6월 13일,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Anthropic)에 자사의 최상위 AI 모델 두 개를 외국인 전원에게 즉시 차단하라고 명령했다. 미국 내 외국인도, 앤트로픽 소속 외국인 직원도 예외가 없었다. AI 모델이 처음으로 수출 통제 품목이 된 순간이다.

앤트로픽 최강 모델 전 세계 차단… AI 주권 전쟁의 서막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뿌리는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국방부는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대량 감시·자율 무기 용도로 무제한 사용하겠다며 안전 장치 제거를 요청했다.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앤트로픽 CEO는 이 요청을 “디스토피아적”이라고 표현하며 거부했다. 2월 27일, 트럼프(Trump) 행정부는 연방 기관 전체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즉시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으로 지정해 정부 계약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갈등은 6월 앤트로픽이 최상위 모델 페이블 5(Fable 5)와 마이토스 5(Mythos 5)를 출시하면서 폭발했다.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상무장관이 아모데이 CEO에게 서한을 보내 수출 통제를 통보했다. 트리거는 잭브레이킹(jailbreaking)이었다. 한 기업이 마이토스 5를 잭브레이크해 사이버보안 취약점 탐지 능력을 활성화했다고 정부에 보고했고, 페이블 5도 소프트웨어 취약점 식별에 탁월하다는 점이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됐다.

앤트로픽은 수억 명이 쓰는 상용 모델 전체를 회수할 만한 잭브레이킹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결국 두 모델을 전 세계 고객에게 비활성화했다. 덜 강력한 모델인 클로드 오퍼스(Claude Opus) 4.8 등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AI 모델이 왜 수출 통제 대상이 됐나

기존의 수출 통제는 주로 하드웨어(반도체, 장비)를 겨냥했다. AI 모델이 통제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에 가깝다. 이유는 모델의 능력 자체에 있다.

최상위 AI 모델은 이제 단순한 텍스트 생성 도구가 아니다. 페이블 5·마이토스 5처럼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익스플로잇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은 사이버전(cyberwarfare)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미사일 설계 보조, 생화학 공정 최적화 등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지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반도체 수출 통제가 “칩을 만들 능력”을 막는 것이라면, AI 모델 수출 통제는 “그 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막는 것이다.

문제는 AI 모델이 소프트웨어라는 점이다. USB 하나, 인터넷 연결 하나면 어디서든 복제·유포될 수 있다. 통제의 실효성 문제가 남는다.

유럽의 경고등: “스위치를 남에게 맡기지 마라”

이번 사태가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 유럽이었다. 프랑스·독일·핀란드 등 유럽 정부와 기업들은 클로드, OpenAI의 GPT를 포함한 미국산 AI 도구를 깊숙이 도입해 쓰고 있다. 그 스위치를 워싱턴이 언제든 끌 수 있다는 게 현실로 드러났다.

유럽 의회는 즉각 “경종(wake-up call)”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프랑스 총리 세바스티앙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는 프랑스 공공 기관에 자국 AI 스타트업 미스트랄(Mistral) 기반 도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스트랄 CEO 아르튀르 멍슈(Arthur Mensch)는 “켜고 끄는 권한을 다른 나라에 맡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사이익은 즉각 수치로 나타났다. 미스트랄은 6월 12일 기준 기존 기업가치(약 117억 유로)의 거의 두 배인 200억 유로 밸류에이션으로 30억 유로 규모의 투자 유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9개월 만에 기업가치가 두 배 뛴 셈이다. 코히어(Cohere) 역시 앤트로픽 차단 이후 대규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소버린 AI란 무엇인가

이번 사태가 불러낸 단어가 ‘소버린 AI(Sovereign AI)’다. 번역하면 ‘주권 AI’. 국가가 AI의 개발·운용·통제권을 외부 의존 없이 자국 내에서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소버린 AI의 필요성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서비스 중단 위험 — 이번 앤트로픽 사태처럼 정치적 결정으로 언제든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둘째, 데이터 주권 — 국가 기밀, 의료·금융 데이터가 외국 기업 서버를 거치면 데이터 유출·감시 리스크가 생긴다. 셋째, 기술 종속 — AI가 경제·군사·행정의 핵심 인프라가 될수록,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는 전략적 약자가 된다. 엔비디아(NVIDIA)가 각국 정부에 “자국 AI를 만들어야 한다”며 소버린 AI 인프라 구축을 적극 세일즈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한국은 어디 있나

한국 정부는 2025년 6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5,300억 원 규모의 국가 예산을 투입해 2027년까지 글로벌 최상위 AI의 95% 수준에 달하는 한국어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경쟁 구도다. 참여 컨소시엄은 최초 5팀에서 탈락을 거쳐 현재 SKT·LG AI연구원·업스테이지 3개 팀이 2차 단계를 진행 중이다.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SKT는 5,190억 파라미터 규모의 한국 최초 하이퍼스케일 AI 모델 ‘A.X K1’을 공개했고, LG AI연구원의 K-EXAONE은 정확도·활용성·혁신성 부문에서 최고 평가를 받았다.

정부 자금도 대규모로 투입됐다. 국민성장펀드는 AI 반도체 팹리스 리벨리온(Rebellions)을 1호 직접투자 기업으로, 독파모 프로젝트 참여 기업 업스테이지를 2호로 선정해 각각 수천억 원을 집행했다. 전남 해남에 AI 반도체 1만5,000장을 갖춘 국가 AI 컴퓨팅센터도 구축 중이다. 상반기 내 ‘모두의 AI’ — 독파모 기반 한국판 챗GPT 무료 서비스 — 출시도 예고됐다.

그러나 이번 앤트로픽 사태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다. 한국 기업·정부 기관 상당수가 클로드, GPT, 제미나이(Gemini) 등 미국산 AI를 핵심 업무에 쓰고 있다. 독파모가 완성 단계에 이르기 전, 그 공백을 메울 전략이 필요하다.

앤트로픽을 비롯한 주요 AI 기업들의 투자 관계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