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전통기업 먹어치우기”…실리콘밸리 투자자가 몰린 新전략


ChatGPT 열풍이 시작되기 전부터 AI 스타트업에 베팅해온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투자자 엘라드 길(Elad Gil)이 이번에는 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Perplexity, Character.AI, Harvey 같은 AI 유니콘들의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그가 새롭게 주목하는 분야는 바로 ‘AI 롤업(roll-up)’ 전략이다.

AI Roll up 1 - 와우테일

길의 아이디어는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이다. 로펌이나 회계법인 같은 전통적인 전문서비스 업체들을 인수한 후 AI 기술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운영비용을 절감하고, 늘어난 수익으로 또 다른 회사를 사들이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년간 이 전략에 따라 투자를 진행해왔으며, 그 결과는 놀랍다.

하지만 길만이 이 기회를 포착한 것은 아니다.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 스라이브 캐피탈(Thrive Capital), 코슬라벤처스(Khosla Ventures) 같은 대형 벤처캐피털들도 이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특히 제너럴 카탈리스트는 이를 “새로운 자산 클래스”라고 선언하며 이미 7개 회사에 투자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Long Lake라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주택소유자협회들을 인수해 커뮤니티 관리를 더욱 효율화하는 사업을 하고 있으며, 설립 2년 만에 6억 7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전통적으로 위험한 미검증 기술에 장기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 Khosla Ventures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도 이런 유형의 기회를 몇 개 살펴볼 것”이라고 코슬라 벤처스의 사미르 카울(Samir Kaul) 제너럴 파트너가 밝혔다.

카울은 “우리가 살펴보는 회사들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매우 낮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돈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수탁자가 되고 싶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코슬라 벤처스는 먼저 몇 건의 거래를 통해 수익성을 검증한 후 전용 펀드 조성을 고려할 계획이며, 실제 인수에는 사모펀드 전문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기존 사업과 신기술을 결합하면 AI 스타트업들이 대형 기존 고객에 즉시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자체적으로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너무나 명백한 기회처럼 보입니다”라고 길은 최근 인터뷰에서 말했다. “생성형 AI는 언어 이해와 조작, 텍스트 생산에 매우 뛰어납니다. 이는 영업활동부터 백오피스 업무까지 모든 반복 작업을 소프트웨어로 전환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가 제시하는 수치는 충격적이다. AI 도입을 통해 회사의 총 마진을 기존 10%에서 4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선된 현금흐름은 경쟁자들보다 높은 가격으로 추가 인수를 가능하게 만든다. “자산을 직접 소유하면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벤더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길은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작업자 생산성 회사 Enam Co.는 설립 1년 만에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OpenAI 스타트업 펀드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3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길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10년 전 기술 기반 롤업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기술이 단순히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했지만, AI는 실제로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PE 스타일의 접근법은 벤처캐피털들이 점점 더 사모펀드처럼 행동하며, 콜센터, 회계법인, 전문서비스 회사 같은 성숙한 사업체를 인수해 AI로 최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했던 벤처캐피털들이 성숙한 기업 인수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이는 AI 롤업 전략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임을 시사한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몇몇 다른 벤처 투자사들도 이 투자 모델을 시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전반에서 이 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길의 판단력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그는 Airbnb, Coinbase, Stripe(910억 달러 가치평가) 같은 대형 유니콘들의 초기 투자자로, 각각 상장이나 고가 매각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그의 현재 AI 포트폴리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로펌용 대형 언어모델을 개발하는 하비(Harvey)는 50억 달러 가치평가로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고, 의료진의 문서작업을 개선하는 Abridge는 2월에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브렛 테일러가 공동창립한 고객서비스 AI 회사 시에라AI(Sierra AI) 역시 출범과 동시에 수십억 달러 가치를 인정받았다.

“6개월 전만 해도 AI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라고 길은 회상한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시장에서 승자들이 명확해지고 있어요. 법률, 헬스케어, 고객서비스 분야에서 각각 1-2개의 주요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도전과제도 있다. 롤업 전략의 핵심은 팀 구성인데, 뛰어난 기술 전문가와 사모펀드(PE) 경험자를 모두 갖춘 팀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길은 지금까지 약 24개 팀을 만났지만 대부분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제는 여러 대형 VC들이 동시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투자업계는 이미 이 전략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다. AI 기술의 성숙도가 임계점에 달하면서, 과거 수직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달리 이제는 소프트웨어 자체가 상품화되고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것보다 직접 사업을 운영하며 AI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수익성이 높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럼에도 길이 남들보다 앞서 트렌드를 포착할 수 있는 비결은 기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다. GPT-3가 출시되기 전부터 그는 이미 전작을 실험하고 있었고, 기술 발전 곡선을 통해 변화의 잠재력을 일찍 파악했다. 현재도 그의 팀은 정기적으로 모든 AI 프론트엔드 회사들을 직접 테스트하며 성능과 도구를 분석하고 있다.

“지금은 정말 재미있는 시기입니다.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거든요”라고 그는 말한다. AI의 미래뿐만 아니라 AI가 모든 산업을 어떻게 재편할지에 대한 두 가지 변화의 교차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하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제 AI 롤업은 길 혼자만의 실험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주목하는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전통 산업의 대대적인 재편이 예고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야심찬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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