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버린 AI ‘사카나’, 1억3500만 달러 투자유치로 유니콘 등극


구글, 오픈AI, 앤트로픽 등이 초거대 언어모델 개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도쿄 기반의 사카나 AI(Sakana AI)는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2023년 설립된 이 스타트업은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최적화된 효율적인 AI 모델 개발에 집중하며, 시리즈 B 라운드에서 1억 3500만 달러(약 200억 엔)를 유치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투자로 사카나의 기업가치는 26억 5000만 달러로 평가됐다.

sakana ai 2 - 와우테일

사카나는 전직 구글 연구원인 데이비드 하(David Ha), 리온 존스(Llion Jones), 이토 렌(Ren Ito)이 공동 창업했다. 특히 존스는 2017년 구글에서 발표된 AI 분야의 획기적인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의 공저자로, 현재 대부분의 생성형 AI를 뒷받침하는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다. 하 대표는 구글 브레인과 스태빌리티 AI에서 연구를 이끌었으며,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투자를 주도한 곳은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MUFG)이다. 글로벌 벤처캐피탈인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맥쿼리 캐피탈(Macquarie Capital), NEA, 럭스 캐피탈(Lux Capital)도 참여했다. 주목할 점은 미국 CIA와 연계된 전략 투자기관 인큐텔(In-Q-Tel, IQT)의 투자인데, 이는 사카나의 기술이 국가안보 분야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기존 투자자들도 추가 투자에 나서면서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

사카나의 철학은 자연의 진화 원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회사명 ‘사카나’는 일본어로 물고기를 뜻하며, 물고기 떼가 단순한 규칙만으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집단지성을 상징한다. 회사는 투자금을 모델 개발을 포함한 연구개발뿐 아니라 일본 내 엔지니어링, 영업, 유통 팀 확장에 사용할 예정이다.

사카나는 기존 초거대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시키는 방식 대신, 오픈소스 모델들을 진화 알고리즘으로 결합하는 독특한 접근법을 취한다. 이는 에너지와 컴퓨팅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도 특정 분야에 최적화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진화적 모델 병합(Evolutionary Model Merge)’ 기술로 소규모 데이터셋으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델을 생성해냈다. ‘AI 과학자(The AI Scientist)’라는 시스템도 개발했는데, 가설 수립부터 실험, 논문 작성까지 연구 과정 전체를 자동화한다.

이러한 접근은 자원이 제한적인 일본 상황에 특히 적합하다. 사카나는 성명에서 “현재 AI 컴퓨팅에 기록적인 자본이 투입되고 있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일본처럼 자원이 제한된 국가에 맞는 올바른 경로는 혁신과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사카나는 이미 일본 주요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올해 미쓰비시 UFJ 및 다이와증권과 전략적 협력을 발표하고, 금융권 맞춤형 AI 개발에 착수했다. MUFG의 가메자와 히로노리 CEO는 “사카나의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초기부터 인정했으며, 이번 투자를 통해 AI의 혜택이 일본의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2026년부터 금융을 넘어 제조업, 정부 부문, 국방과 정보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 대표는 “범용 모델과 실제 전문 업무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며 “일본 기업의 암묵지를 다룰 수 있는 도메인 특화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카나는 또한 ‘소버린 AI(Sovereign AI)’ 개발을 강조한다. 이는 각국의 문화와 가치를 반영한 AI를 의미한다. 하 대표는 “일본은 사전 학습이 아닌 사후 학습(Post-training) 레이어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는 미중 2강의 초거대 모델 경쟁과는 다른, 일본이 실질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로”라고 강조했다.

sakana ai - 와우테일

사카나는 2023년 7월 설립 후 빠르게 성장했다. 2024년 초 럭스 캐피탈과 코슬라 벤처스가 주도한 3000만 달러 시드 라운드로 시작해, 9월 엔비디아, MUFG, SMBC, 미즈호, 이토추, KDDI, 노무라, NEC, 후지쯔 등이 참여한 2억 1400만 달러 규모 시리즈 A를 마무리하며 기업가치 15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이번 시리즈 B까지 포함하면 누적 투자금은 약 3억 7900만 달러에 달한다.

사카나의 독특한 점은 도쿄를 본거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AI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 몰리는 가운데, 사카나는 도쿄의 탄탄한 기술 인프라와 우수한 인재 풀을 활용하면서도 비서구권 시장에 최적화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존스는 과거 CNBC 인터뷰에서 “구글의 관료주의가 너무 심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며 퇴사 배경을 설명했다.

자원 제약 속에서도 효율성과 진화를 통해 혁신을 추구하는 사카나의 접근은, 무한한 자원 투입을 전제로 한 현재 AI 산업의 방향성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일본 정부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구조적 과제 해결을 위해 AI를 국가 의제 최우선으로 삼았다. 사카나는 일본이 AI 경쟁에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 물고기 이름을 딴 스타트업이 거대 기업들이 지배하는 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진화적 모델들의 물고기 떼는 주류에 역행하며 일본의 글로벌 AI 논의에서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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