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용 핵융합 원자로 ‘마리타임퓨전’, 450만 달러 투자 유치


전직 테슬라 엔지니어들이 뭉쳐 만든 핵융합 에너지 스타트업 마리타임퓨전(Maritime Fusion)이 45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트럭스벤처캐피털(Trucks VC)이 투자를 주도했고, Y컴비네이터의 공동 창업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 알루미니벤처스(Alumni Ventures), 아에라벤처캐피털(Aera VC), Y컴비네이터(Y Combinator) 등이 함께했다.

maritime fusion - 와우테일

샌프란시스코에 자리잡은 마리타임퓨전의 접근법은 독특하다. 대다수 핵융합 기업들이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과 달리, 이 회사는 상업용 선박에 탑재할 핵융합 원자로 개발에 집중한다. 전력망용 핵융합 원자로는 높은 출력과 안정적인 가동이 필수지만, 선박용은 그보다 훨씬 낮은 출력으로도 충분하고 가동 중단 시간도 더 유연하다. 마리타임퓨전은 이런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핵융합 기술을 먼저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마리타임퓨전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저스틴 코헨(Justin Cohen)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핵융합 기술은 곧 현실화될 것”이라면서도 “첫 세대 원자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유지보수 부담이 크며 가동률도 낮아서, 전력망에 공급하면 전기 비용이 기존 대비 5~10배나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노리는 선박 시장은 전력망보다 15배 낮은 출력만 필요하고, 가동률 요구치도 낮으며, 암모니아나 수소 같은 대체 연료와 비슷한 비용으로 탄소 배출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개발 중인 원자로는 ‘토카막(tokamak)’ 방식을 따른다. 토카막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장치 중 가장 검증된 방식으로,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 안에서 초고온 플라즈마를 자기장으로 가둬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태양이 수소 원자핵들을 융합해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토카막도 같은 원리를 지구에서 구현하는 셈이다. 문제는 플라즈마를 1억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가두려면 엄청나게 강력한 자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마리타임퓨전은 이 문제를 고온 초전도(HTS) 케이블 기술로 풀어내고 있다.

이번 투자금은 바로 이 HTS 케이블 기술 개발과 토카막 설계 작업에 쓰인다. 마리타임퓨전은 샌프란시스코에 HTS 자석 연구소를 세우고, 프로토타입 케이블과 자석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 테스트하고 있다. 최근 벤치 테스트에서는 특허 출원 중인 ‘SHIELD(초전도 고신뢰도 에너지 링크 및 배전)’ 케이블을 통해 액체 질소로 냉각하면서 5,000암페어의 전류를 성공적으로 흘려보냈다.

SHIELD 케이블의 성능은 놀랍다. 25센트 동전보다 얇은 직경(단열재 제외)이면서도 영하 196도 환경에서 최대 8,000암페어를 견딜 수 있다. 핵융합에 필요한 극한 조건(영하 253도, 20테슬라 자기장)에서는 더 높은 전류도 감당한다. 케이블은 모듈식 설계라서 여러 개를 묶어 쓸 수 있고, 열 안정성과 기계적 강도도 뛰어나다.

재미있는 건 이 케이블이 핵융합 원자로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같은 곳에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핵융합용으로는 강한 자기장을 견디는 특수 테이프를 쓰지만, 일반 전력 배전용으로는 테이프만 바꾸면 나머지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전류를 구리선으로 보내려면 케이블이 3배 이상 무거워지고 에너지 손실도 심하지만, 초전도 케이블은 손실이 거의 없고 미터당 1.5와트만 써서 냉각하면 된다. 마리타임퓨전은 핵융합 원자로를 개발하면서 이 케이블을 AI 데이터센터 같은 곳에 먼저 팔아 수익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마리타임퓨전이 개발하는 토카막의 이름은 ‘인센(Yinsen)’이다. 회사는 컬럼비아대학교와 손잡고 펄스 방식 운전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미국 에너지부의 DIII-D 국립핵융합시설에서도 실험을 수행 중이다. 첫 원자로는 직경 8미터 규모로 2032년 가동을 목표로 하며, 건설 비용은 약 11억 달러로 예상된다. 이 숫자는 핵융합 업계 선두주자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Commonwealth Fusion Systems, CFS)와 견줄 만하다. MIT에서 분사한 CFS는 직경 5미터 미만의 토카막 ‘스파크(Sparc)’를 건설 중이며, 현재까지 약 30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모았다. CFS는 2026년 스파크를 가동해 2027년 과학적 손익분기점을 입증한 뒤, 2030년대 초 본격 상용 원자로 아크(Arc)를 전력망에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코헨은 CFS의 막대한 자금력과 선발 우위에도 자신감을 보인다. “우리는 전력망에 전기를 못 올리는 손익분기 실증용 장치에 수십억 달러를 쓰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만드는 첫 토카막은 실제 고객에게 에너지를 파는 상용 원자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력망용 핵융합은 기술 난이도가 높고 규제도 까다롭지만, 선박용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투자사도 이 전략을 높이 산다. 트럭스벤처캐피털의 파트너 제프리 쇼크스(Jeffrey Schox)는 “핵융합은 전력망뿐 아니라 해운 같은 대규모 운송 분야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마리타임퓨전은 전력망용 핵융합의 가장 큰 난관들이 해결되기 훨씬 전에 상당한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영리한 시장을 골랐다”고 평가했다.

maritime fusion logo - 와우테일

핵융합 에너지 산업은 요즘 투자 열기가 뜨겁다. TIME 보도에 따르면 업계 전체 투자금이 2020년 17억 달러에서 2025년 9월 기준 150억 달러로 급증했다.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치솟으면서, 청정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도 치열하다. 헬리온에너지(Helion Energy)는 올해 1월 4억2,500만 달러를 유치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2028년부터 50메가와트 전력을 공급하는 최초의 핵융합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다. 캘리포니아의 TAE 테크놀로지스(TAE Technologies)도 올해 6월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으며, 구글과 쉐브론 같은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는다.

마리타임퓨전을 공동 창업한 코헨과 제이슨 카우프만(Jason Kaufmann)은 모두 테슬라 출신이다. 두 사람은 스페이스X에서 스타십 전자장비 방사선 테스트를 하다 처음 만났고, 이후 테슬라로 자리를 옮겨 사이버트럭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팀 전체가 플라즈마 물리학, 원자력 공학, 전기공학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로, 스페이스X·테슬라·컬럼비아대·펜실베이니아대 등 쟁쟁한 곳 출신들이다.

회사는 현재 HTS 케이블 개발과 토카막 설계 인력을 뽑고 있다. 고전류, 극저온 진공 시스템, 메가와트급 전력, 초전도 물질, 자기 구속 분야 경험자를 찾는다. 마리타임퓨전은 Y컴비네이터 2025년 겨울 배치에 참여했으며, 미 국방부·해군·DARPA·에너지부와의 협력과 상업 해운업계 진출을 적극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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