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시놉시스에 20억 달러 투자..  AI 칩 설계 도구 협력 강화


엔비디아(NVIDIA) 시놉시스(Synopsys)가 칩 설계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시놉시스 보통주 약 480만 주를 주당 414.79달러에 매입해 총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엔비디아는 이로써 시놉시스의 7번째 대주주가 됐으며, 전체 지분의 약 2.6%를 확보했다.

Nvidia synopsys - 와우테일

시놉시스는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EDA(전자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쉽게 말해 엔지니어들이 복잡한 반도체 칩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를 제공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손으로 회로를 그렸지만, 지금은 시놉시스의 소프트웨어가 회로 시뮬레이션부터 설계, 검증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해준다. 특히 시놉시스는 캐던스(Cadence)와 함께 EDA 시장의 양대 강자로 각각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칩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설계 작업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28nm 공정에서 3nm 공정으로 넘어가면서 칩 설계 비용은 무려 12배나 뛰었다. 반도체부터 자동차, 항공우주 분야까지 연구개발 팀들은 복잡해진 작업, 늘어난 비용, 짧아진 개발 기간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엔비디아 창업자이자 CEO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CUDA GPU 가속 컴퓨팅이 칩 설계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원자 단위부터 트랜지스터, 개별 칩에서 시스템 전체까지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칩을 만들기 전에 컴퓨터 안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디지털 트윈을 먼저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2024년 1월 CEO에 취임한 시놉시스의 사신 가지(Sassine Ghazi)는 “엔비디아의 AI와 가속 컴퓨팅 기술로 엔지니어링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있다”며 “엔지니어들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시뮬레이션 속도를 높이며, 미래를 바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번 다년간 협력은 세 가지 핵심 분야에 집중한다. 첫째, 시놉시스의 다양한 칩 설계 소프트웨어를 엔비디아 GPU로 가속화한다. 칩 설계, 물리적 검증, 분자 시뮬레이션, 전자기 분석, 광학 시뮬레이션 등 계산이 많이 필요한 작업들의 속도를 대폭 끌어올린다. 가지 CEO는 CNBC 인터뷰에서 “몇 주 걸리던 작업을 몇 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AI가 스스로 칩을 설계하는 ‘에이전틱 AI’ 기술을 발전시킨다. 시놉시스의 에이전트엔지니어 기술과 엔비디아의 AI 스택을 결합해 칩 설계 과정을 자동화한다. 엔지니어가 모든 걸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최적의 설계 방법을 찾아내는 식이다.

셋째,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과 현실을 연결한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와 코스모스 같은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는 물론 로봇, 자동차,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품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가상 공간에서 먼저 설계하고 테스트할 수 있게 만든다.

양사는 시장 공략도 함께 진행한다. 시놉시스의 글로벌 판매망을 활용해 여러 산업의 엔지니어링 팀에게 온프레미스와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시놉시스는 이미 글로벌 소프트웨어 상위 10개 기업 중 8곳, 자동차 제조사 상위 10곳 중 7곳, 글로벌 은행 상위 20곳 중 16곳이 고객이다.

황 CEO는 “일반 CPU로 돌리던 기존 컴퓨팅 방식에서 GPU로 구동하는 가속 컴퓨팅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기존 방식도 계속 쓰이겠지만 세상은 새로운 컴퓨팅 방식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파트너십은 독점적이지 않다. 엔비디아와 시놉시스 모두 다른 업체들과도 계속 협력한다. 시놉시스는 캐던스와 함께 EDA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데, 각각 약 30%씩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엔비디아 역시 시놉시스의 경쟁사인 캐던스와도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투자를 엔비디아의 방어적 조치로 본다. 씨포트 리서치의 제이 골드버그는 엔비디아가 올해만 민간 기업에 60억 달러를 투자했고, 앞으로 17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AI 칩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반대로 이번 제휴를 전략적 수직 통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칩 설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소프트웨어 도구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함으로써 차세대 반도체가 어떻게 개발되는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엔비디아 플랫폼과 잘 맞는 칩을 설계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하드웨어 제조를 넘어 설계 소프트웨어까지 손을 뻗어 생태계 전반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발표 직후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시놉시스 주가는 4% 올랐고 엔비디아는 1.4% 상승했다. 다만 엔비디아는 지난 한 달간 14% 하락한 상태였다. 투자자들은 AI 시대를 이끄는 두 강자의 협력을 환영하면서도, 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성 압박 가능성에는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시놉시스는 1986년 설립 이후 꾸준히 EDA 시장을 선도해왔다. 칩 설계가 복잡해지면서 EDA 소프트웨어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설계 비용이 28nm에서 3nm로 넘어가며 12배나 증가한 상황에서 시놉시스 같은 EDA 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시놉시스와 캐던스를 “칩을 만들고 싶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회사”로 부른다.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도구로 바꾸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설계 프로세스 깊숙이 통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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