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J&J가 주목한 ‘세포 밖’ 단백질 분해 기술, 에피바이올로직스 1억700만 달러 투자 유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바이오 기업 에피바이올로직스(EpiBiologics)가 1억700만 달러(약 1,52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마무리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번 라운드는 구글 벤처스(GV)와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벤처 캐피털 부문인 JJDC가 공동 주도했으며, 노바티스 벤처 펀드(Novartis Venture Fund), 아울리스 캐피털(Aulis Capital), 아베고 바이오사이언스 캐피털(Avego BioScience Capital), 삼사라 바이오캐피털(Samsara BioCapital)이 신규 투자자로 참여했다. 

EpiBiologics logo - 와우테일

기존 투자자인 폴라리스 파트너스(Polaris Partners), 디지탈리스 벤처스(Digitalis Ventures), 타이호 벤처스(Taiho Ventures), 비보 캐피털(Vivo Capital), 코돈 캐피털(Codon Capital), 미션 바이오캐피털(Mission BioCapital)도 후속 투자에 나섰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2022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의 저명한 항체 공학자 짐 웰스(Jim Wells) 교수의 선구적 연구를 기반으로 설립됐다. 웰스 교수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E3 리가아제(ligase)와 사이토카인 수용체를 활용해 세포 표면 및 세포 외부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 입증했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이 기술을 산업화해 독자적인 ‘에피탁(EpiTAC)’ 플랫폼을 구축했으며, 조직 특이적 분해 항체 아틀라스를 만들어 암, 면역질환, 신경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앤 리-칼론(Ann Lee-Karlon)은 “이번 투자로 암과 면역질환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막 단백질과 가용성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분해하는 새로운 이중특이항체 파이프라인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리-칼론은 제넨텍(Genentech)에서 18년간 재직하며 다수의 신약 개발을 주도했고, 이후 알토스 랩스(Altos Labs)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23년 7월 에피바이올로직스 CEO로 합류했다.

에피바이올로직스의 핵심 차별점은 세포 외부 공간에 있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단백질 분해 기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기존 기술 대부분은 세포 내부 단백질에 집중했다. 아르비나스(Arvinas), 카이메라(Kymera), 뉴릭스(Nurix) 같은 바이오텍들은 ‘프로탁(PROTAC)’이라는 저분자 화합물을 개발한다. 프로탁은 세포막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간 뒤, 한쪽으로는 질병 유발 단백질에 결합하고 다른 쪽으로는 세포 내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에 결합한다. 그러면 표적 단백질에 ‘유비퀴틴’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세포 내 프로테아좀(proteasome)이라는 분해 기계가 이를 인식해 단백질을 조각낸다. 이 방식은 전사인자나 키나아제 같은 세포 내 신호 전달 단백질을 제거할 수 있고, 알약 형태로 경구 투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르비나스는 이 분야 선두주자로 2015년 4,160만 달러 시리즈B를 시작으로 2018년 5,500만 달러 시리즈C를 거쳐 2018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화이자(Pfizer)와 공동 개발 중인 유방암 치료제 베프데게스트란트(vepdegestrant)가 최근 FDA 승인 신청을 제출해 프로탁 기술 최초의 시판 승인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프로탁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바로 세포막에 박혀있는 수용체 단백질과 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단백질이다. 암의 핵심 표적인 EGFR, HER2, c-Met 같은 막 수용체나, 염증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 같은 분비 단백질은 세포 내부 분해 기술로는 제거하기 어렵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바로 이 공백을 공략한다. 회사는 이중특이항체를 이용해 세포 표면에서 작동하는 분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중특이항체의 한쪽 팔은 표적 단백질(막 수용체나 분비 단백질)을 잡고, 다른 쪽 팔은 세포 표면에 있는 분해 수용체를 잡는다. 그러면 이 복합체가 세포 안으로 끌려 들어가 리소좀(lysosome)에서 분해된다. 웰스 교수 연구팀은 세포막에 있는 E3 리가아제인 RNF43이나 특정 사이토카인 수용체를 분해 수용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 방식의 장점은 조직 특이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조직이나 종양에만 많이 발현되는 분해 수용체를 선택하면, 그 부위에서만 표적 단백질이 제거되고 정상 조직은 보존된다. 에피바이올로직스가 구축한 270개 이상의 조직 특이적 분해 수용체 아틀라스 ‘에피아틀라스(EpiAtlas)’는 바로 이런 선택적 분해를 가능케 하는 핵심 자산이다. 

회사의 선도 프로그램인 EPI-326이 대표적인 사례다. EPI-326은 EGFR을 분해하는 조직 선택적 이중특이항체다. EGFR은 비소세포폐암, 두경부편평세포암종 등에서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핵심 막 수용체다. 기존 EGFR 억제제들은 수용체의 활성 부위만 막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내성 돌연변이가 생긴다. 반면 EPI-326은 EGFR 단백질 자체를 세포 표면에서 제거한다. 돌연변이 상태와 무관하게 모든 형태의 발암성 EGFR을 분해하며, 종양 조직에만 분해 작용을 집중시켜 정상 조직의 EGFR 신호는 보존한다. 이런 선택적 분해가 가능한 이유는 종양 세포에 많이 발현되는 특정 분해 수용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전임상 연구에서 EPI-326은 EGFR 돌연변이 상태에 관계없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항암 효과를 보였으며, 우수한 안전성과 약동학 특성을 나타냈다. 단독요법은 물론 다른 항암제와 병용요법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2026년 초 비소세포폐암과 두경부편평세포암종 환자를 대상으로 EPI-326의 첫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회사는 임상 진입을 앞두고 2025년 최고의료책임자(CMO)로 에릭 험키(Eric Humke),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애런 미셸(Aaron Mishel)을 새로 영입하며 조직을 강화했다.

GV의 제너럴 파트너인 데이비드 셴카인(David Schenkein)은 “초기 투자자로서 에피바이올로직스가 에피탁 플랫폼과 포트폴리오를 암, 면역학 등 다양한 분야로 구축하면서 보여준 빠른 과학적·운영적 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이 혁신을 환자를 위한 혁신적 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공동 투자를 주도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2023년 3월 5,000만 달러 시리즈A를 유치하며 출범했고, 같은 해 7월 시리즈A를 7,000만 달러 이상으로 확대했다. 이번 시리즈B까지 합치면 누적 투자액은 약 1억8,000만 달러에 이른다. 회사는 EGFR 외에도 c-Met을 타깃으로 하는 이중특이항체도 개발 중이다. c-Met은 비소세포폐암, 위암, 대장암, 신장암 등에서 돌연변이, 증폭, 과발현 형태로 나타나는 수용체 티로신 키나아제로, 에피바이올로직스는 2025년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회의에서 c-Met 분해 에피탁의 전임상 데이터를 처음 공개했다.

단백질 분해 기술은 기존 억제제나 차단 항체로는 ‘약물화하기 어려운(undruggable)’ 표적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억제제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결합해 기능을 막는 반면, 분해 기술은 질병 유발 단백질 자체를 제거해 모든 기능을 차단한다. 또한 촉매적으로 작동해 낮은 용량으로도 지속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 Myers Squibb),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 사노피(Sanofi)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적극 투자 중이다. 카이메라는 2024년 2억2,5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해 사노피와 염증성 질환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뉴릭스도 길리어드(Gilead), 사노피 등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세포 내부 단백질에 집중하는 가운데, 에피바이올로직스는 세포 외부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암의 핵심 표적인 EGFR, HER2, c-Met 같은 막 수용체나 면역 체크포인트 단백질 PD-L1, 염증성 사이토카인 IL-6·TNF-α 같은 분비 단백질은 세포 내부 기술로는 접근이 어렵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항체 기반 플랫폼을 통해 이 공백을 메우며, 암 뿐 아니라 자가면역질환, 신경퇴행성 질환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회사는 c-Met을 타깃으로 하는 이중특이항체도 개발 중이다.

c-Met은 비소세포폐암, 위암, 대장암, 신장암 등에서 돌연변이·증폭·과발현 형태로 나타나는 수용체 티로신 키나아제다. 에피바이올로직스는 2025년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회의에서 c-Met 분해 에피탁의 전임상 데이터를 처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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