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그만두고 20만 달러를 받아라, ‘틸 펠로우십’ 출신 유니콘들의 놀라운 성장


페이팔(PayPal) 공동창업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 피터 틸(Peter Thiel)이 2011년 세상에 발표 틸 펠로우십(Thiel Fellowship)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논란이 많으면서도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22세 이하 젊은이들에게 대학을 그만두거나 입학하지 않는 조건으로 2년간 20만 달러(2025년 기준, 이전에는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기존 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틸은 고등교육을 “타락한 제도”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전통적인 학위보다 실제 경험과 창업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해왔다.

Thiel Fellowship logo.svg - 와우테일

2026년 1월 현재, 틸 펠로우십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프로그램 출범 이후 290여 명의 펠로우를 배출했으며, 이들이 창업한 기업의 총 가치는 7,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배출률은 13.79%에 달해, 일반 벤처캐피탈의 성공률을 훨씬 상회한다. 이더리움(Ethereum), 피그마(Figma), 머코(Mercor), OYO 등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탄생했다.

프로그램의 성공 비결은 단순히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펠로우들은 틸 재단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통해 실리콘밸리 최고의 창업가, 투자자, 과학자들과 연결된다.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 나발 라비칸트(Naval Ravikant) 같은 전설적인 투자자들이 멘토로 참여하며, 선배 펠로우들도 후배들을 적극 지원한다. 2025년부터는 지원금이 20만 달러로 증액되어 펠로우들이 더욱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게 됐다.

틸 펠로우십 출신 중 가장 눈부신 성공 사례는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공동창업한 이더리움이다. 2014년 펠로우로 선정된 부테린은 블록체인 기반 분산 금융 플랫폼을 구축해 수조 달러 규모의 웹3 생태계를 창조했다. 딜런 필드(Dylan Field)가 2012년 펠로우로 선정된 후 공동창업한 피그마(Figma)는 협업 디자인 도구 시장을 장악하며 어도비에 200억 달러에 인수될 뻔했고, 2025년 8월 나스닥 상장으로 기업가치 680억 달러를 달성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가장 주목받는 펠로우십 출신 스타트업은 단연 머코어(Mercor)다. 2024년 펠로우로 선정된 브렌든 푸디(Brendan Foody), 아다르쉬 히레마스(Adarsh Hiremath), 수리야 미드하(Surya Midha) 세 명의 21세 하버드 중퇴생이 공동창업한 AI 인재 채용 플랫폼이다. 이들은 하버드와 조지타운 대학을 다니던 중 AI 붐을 놓칠 수 없다는 “극심한 절박함”을 느끼고 대학을 떠났다. 머코는 2023년 설립 후 불과 2년 만에 2025년 2월 2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펠리시스(Felicis) 주도로 1억 달러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2025년 10월에는 100억 달러 기업가치로 3억5천만 달러를 추가 조달하며 22세 나이에 역대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 공동창업자가 됐다. 머코는 AI를 활용해 지원자의 인터뷰 영상,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최적의 인재를 매칭하며, 현재 오픈AI(OpenAI)를 비롯한 세계 5대 AI 랩이 고객이다. 연간 순환 매출(ARR)은 4억5천만 달러에 달한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사례는 에치드(Etched)다. AI 칩 스타트업인 에치드는 트랜스포머 모델에 특화된 ASIC 칩 ‘소후(Sohu)’를 개발해 엔비디아 GPU 대비 10배 빠른 추론 성능을 목표로 한다. 2024년 6월 포지티브섬(Positive Sum)과 프라이머리 벤처 파트너(Primary Venture Partner) 주도로 1억2천만 달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고, 2026년 1월에는 스트라입스(Stripes) 주도로 약 5억 달러 추가 투자를 확보하며 기업가치 50억 달러를 달성했다. 피터 틸은 에치드에 엔젤 투자자로 직접 참여했다. 에치드는 TSMC와 파트너십을 맺고 칩 생산을 준비 중이며, AI 시대의 인프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서브스트레이트(Substrate)가 야심찬 도전을 시작했다. 2011년 첫 펠로우 중 한 명인 영국 출신 제임스 프라우드(James Proud)가 동생 올리버와 함께 2022년 설립한 이 기업은 ASML의 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X선 기반 기술로 대체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2025년 10월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와 제너럴 캐털리스트(General Catalyst) 등으로부터 1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프라우드는 웨이퍼당 생산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고 2028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대량 생산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지만, 테슬라와 스페이스X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일론 머스크의 사례처럼 서브스트레이트도 반도체 산업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가 존재한다.

틸 펠로우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오스틴 러셀(Austin Russell)이다. 2013년 17세에 스탠포드를 중퇴한 러셀은 자율주행차용 라이다(LiDAR) 센서를 개발하는 루미나(Luminar Technologies)를 창업했다. 2020년 나스닥 상장 당시 그는 25세에 24억 달러 자산으로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됐다. 루미나는 볼보, 다임러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센서를 공급했으나, 2025년 러셀의 갑작스러운 CEO 사임과 12월 파산 신청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러셀의 도전은 젊은 창업가들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다.

여성 창업가 중에서는 루시 구오(Lucy Guo)가 단연 돋보인다. 2014년 카네기멜론대학을 중퇴하고 펠로우가 된 구오는 알렉산더 왕(Alexandr Wang)과 함께 AI 데이터 레이블링 플랫폼 스케일AI(Scale AI)를 2016년 공동창업했다. 2018년 회사를 떠났지만 5% 지분을 보유한 그녀는 2025년 메타가 스케일AI 지분 49%를 인수하며 기업가치가 250억 달러로 평가되자 12억5천만 달러 자산으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제치고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가 됐다. 현재 그녀는 크리에이터 수익화 플랫폼 패시스(Passes)를 운영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호스피탈리티 분야에서는 인도 출신 리테시 아가르왈(Ritesh Agarwal)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2013년 19세에 펠로우로 선정된 아가르왈은 아시아인 최초로 틸 펠로우십을 받았다. 그가 창업한 호텔 체인 OYO는 현재 35개국 18만5천 개 이상의 호텔과 숙소를 운영하며, 2024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아가르왈은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아이콘으로 샤크탱크 인디아의 투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025년 미국의 모텔6와 스튜디오6 브랜드를 인수하며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했다.

2025년 신규 펠로우 중에는 다양한 분야의 혁신가들이 포함됐다. 독일 출신 페르디난트 다비츠(Ferdinand Dabitz)는 국제 결제 핀테크 아이비(Ivy)를 공동창업했으며, 틸의 밸러 벤처스(Valar Ventures)가 2023년부터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콜롬비아 출신 후안 파블로 에브라스(Juan Pablo Ebrath)는 “프로그래머블 생물학을 통한 신체 재생” 기술을 개발하는 페이즈 랩스(Phase Labs)를 설립했다. 일본 출신 코키 마시타(Koki Mashita)는 사이클론 규모를 축소하고 날씨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아이올루스 랩스(Aeolus Labs)를 설립했다.

틸 펠로우십의 성공은 기존 교육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치솟는 학자금 대출과 불확실한 취업 전망 속에서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전통적인 대학 학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틸은 2014년 인터뷰에서 현대 대학을 1514년 면죄부를 팔던 부패한 교회에 비유했다. “최고의 타락이 최악”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인용하며, 고등교육이 가장 나쁜 제도라고 강조했다.

물론 모든 펠로우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초기에는 구조 부족과 불공평한 지원으로 일부 펠로우들이 실패감과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2023년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271명의 펠로우 중 11명이 유니콘 기업을 창업했으며, 2025년 펠로우십 웹사이트는 26개의 유니콘을 집계하고 있다. 2025년 블룸버그 칼럼에서 금융 연구자들은 초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펠로우십이 “충격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틸 펠로우십의 영향력은 다른 프로그램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2015년 초기 펠로우십 디렉터였던 다니엘 스트라크만(Danielle Strachman)과 마이클 깁슨(Michael Gibson)은 틸의 지원으로 1517 펀드를 설립해 대학 중퇴자와 비학위 보유자에 투자하고 있다. 2025년 4월부터는 팔란티어(Palantir)가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4개월 인턴십을 제공하며 대학 진학을 건너뛰도록 권장하는 팔란티어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Palantir Meritocracy Fellowship)을 시작했다. “부채를 건너뛰고, 세뇌를 건너뛰고, 팔란티어 학위를 얻으라”는 모토를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틸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틸 펠로우십은 지원자가 22세 이하이고 대학 학위를 받지 않았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국적 제한은 없으며, 연중 상시 지원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력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 의지다. 선발 과정에서는 STEM 경시대회 수상, 해커톤 참여, 인턴십 경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관습에 도전하는 용기와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다.

2026년을 맞아 틸 펠로우십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의 혁신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에치드, 머코, 서브스트레이트 같은 기업들이 AI 칩, 인재 채용,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산업을 재정의하는 가운데, 틸의 실험은 단순한 성공을 넘어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 학위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젊은 창업가들이 교실 밖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목받을 전망이다.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