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론 파워, 1.4억 달러 유치.. “100년 묵은 변압기를 반도체로 대체”


헤론 파워(Heron Power)가 2026년 2월 18일 1억4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를 발표했다.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a16z)의 아메리칸 다이나미즘 펀드와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reakthrough Energy Ventures)가 공동으로 라운드를 주도했으며, 카프리콘 인베스트먼트 그룹(Capricorn Investment Group), 에너지 임팩트 파트너스(Energy Impact Partners), 발로 아트레이데스 AI 펀드(Valor Atreides AI Fund), 기가스케일 캐피털(Gigascale Capital) 등 기존 투자사들도 추가 참여했다. 불과 9개월 전인 2025년 5월 3800만 달러 시리즈A를 마감한 데 이어, 이번 라운드를 포함하면 누적 조달액은 약 1억7800만 달러에 이른다.

Heron Power - 와우테일

창업자 겸 CEO인 드류 배글리노(Drew Baglino)는 테슬라에서 18년을 보낸 전력 전자 분야의 베테랑이다. 2006년 입사 이후 2012년 모델 S 파워트레인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이후 파워트레인·에너지 부문 수석 부사장(SVP)까지 오르며 테슬라 에너지 사업 전반을 이끌었다. 2024년 4월 테슬라를 떠난 그는 다양한 업계 사람들을 만나며 공통된 불만을 발견했다. 태양광 개발자, 장기 에너지 저장 기업, 핵융합 연구자까지 “어느 분야 사람과 대화해도 결국 전력 전자 장비 이야기로 끝났다”는 게 그의 회고다. 그렇게 2024년 헤론을 창업했다.

변압기, 왜 지금 문제가 됐나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뒤 수천 볼트의 고전압으로 송전되고, 우리가 쓰는 곳 근처에서 다시 전압을 낮춰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전압을 높이고 낮추는 장치가 바로 변압기다. 태양광이나 배터리에서 나오는 직류(DC) 전기를 전력망과 연결하거나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때도 변압기가 필수적으로 개입한다.

문제는 오늘날 쓰이는 변압기의 기본 구조가 에디슨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거대한 철심에 코일을 감아 자기장으로 전압을 바꾸는 방식으로, 100년 넘게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 크고 무겁고 열도 많이 발생하는 수동 장치다. 게다가 변압기 하나만으로 전력 공급이 완결되지 않는다. 태양광에서 나오는 직류를 교류로 바꾸는 인버터, 이상 전류로부터 설비를 보호하는 스위치기어, 정전 시 전력을 유지하는 무정전 전원장치(UPS)까지 별도 장비를 여럿 설치해야 한다. 선박 컨테이너만 한 크기의 장비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게 현재 태양광 발전소나 데이터센터의 풍경이다.

설상가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열풍과 재생에너지 확산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기존 변압기 수요는 2019년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했고, 납기는 최장 24개월까지 늘어났다. 미국 전력망 설비의 절반 이상이 사용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구조적 병목은 더욱 심각하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재생에너지·에너지 저장·전력망 현대화 투자는 1조2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정작 전기를 연결해 주는 핵심 부품의 공급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헤론 링크: 철심 대신 반도체, 여러 장비를 하나로

헤론이 내놓은 답이 ‘헤론 링크(Heron Link)’다. 핵심은 기존 철심 변압기의 자기장 원리를 반도체 기반 전력 전자 회로로 대체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수동 장치를 디지털 능동 장치로 바꾼다고 이해하면 쉽다.

헤론 링크는 탄화규소(SiC) 반도체를 활용해 전압 변환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인버터·변압기·스위치기어 등 기존에 따로따로 설치하던 여러 장비의 역할을 하나의 모듈 안에 통합한다. 소프트웨어로 전력 흐름을 실시간 제어하기 때문에 태양광·배터리·전력망 사이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다. 그 결과 기존에 필요했던 설비의 70%를 줄일 수 있고, 특정 데이터센터 환경에서는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밝힌다.

heron logo - 와우테일

데이터센터에 납품하는 제품은 한 대당 최대 5메가와트(MW) 전력을 처리하며, 엔비디아(NVIDIA) 최신 AI 서버 랙이 요구하는 800볼트 직류 전원을 직접 공급한다. 내부에는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 팩이 내장돼 있어, 정전이 발생했을 때 비상 전원으로 넘어가는 30초 동안 전력을 끊김 없이 유지한다. 덕분에 데이터센터는 별도의 대형 UPS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개의 모듈이 병렬로 구성된 구조여서,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약 10분이면 교체가 가능하다. 대형 변압기 하나가 고장 나면 수일씩 서비스가 멈추던 기존 방식과 비교하면 운영 안정성이 크게 높아진다.

태양광·배터리 발전사업자용 제품도 있다. 발전소에서 전력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인버터와 변압기 기능을 하나로 합쳐, 설치 면적과 설비 비용을 대폭 줄인다. 기존 변압기는 핵심 소재인 방향성 전기강판(grain-oriented electrical steel) 부족으로 공급 병목이 심각하지만, 헤론 링크는 전기차 시장이 이미 키워 놓은 SiC 반도체 공급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원자재 리스크에서도 한층 자유롭다. 현재 데이터센터가 전체 매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태양광과 그리드 스케일 배터리 사업이 나눠 맡고 있다.

“고객이 먼저 달려왔다”

이번 시리즈B는 다소 이례적인 배경에서 결정됐다. 배글리노는 “사실 지금 당장 자금이 필요하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12개 이상의 잠재 고객사로부터 총 50GW가 넘는 초기 수요 신호가 들어오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고객들이 먼저 달려오고 있다면, 우리도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조달 자금은 주로 연간 40기가와트(GW) 규모의 헤론 링크를 생산할 수 있는 고도 자동화 미국 내 제조 공장 건설에 투입된다. 40GW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변압기 생산량의 10~15%에 해당하며, 텍사스주 최대 전력 수요의 절반과 맞먹는 규모다. 공장 부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며, 2027년 초 파일럿 생산을 시작해 이후 2년에 걸쳐 대규모 양산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a16z의 에린 프라이스-라이트(Erin Price-Wright) 제너럴 파트너는 “헤론은 단순히 지금 당장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국의 노후 전력망을 소프트웨어 정의·AI 네이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기술을 만들고 있으며 그것을 미국에서 대규모로 제조한다”고 평가했다.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의 데이브 다니엘슨(Dave Danielson) 파트너도 “급격히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기존 전력망 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헤론은 그 핵심 병목을 차세대 기술로 정면 돌파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경쟁사도 대규모 투자 유치… 뜨거운 시장

헤론만이 이 시장을 노리는 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헤론의 시리즈B 발표 당일인 2월 18일, 노스캐롤라이나 기반의 DG 매트릭스(DG Matrix)도 엔진 벤처스(Engine Ventures) 주도의 $6000만 달러 시리즈A를 동시에 발표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확장 중인 앰퍼샌드(Amperesand)는 2025년 11월 월든 카탈리스트 벤처스와 테마섹 공동 주도로 $8000만 달러 시리즈A를 마감하고 2026년 첫 상업 납품을 앞두고 있다. 대형 전력 설비 기업 이턴(Eaton)도 고체 상태 변압기 스타트업 레질리언트 파워(Resilient Power)를 최대 1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이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배글리노는 ‘속도’와 ‘세대 교체’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다. 누구보다 먼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18~24개월마다 다음 세대를 출시해 항상 경쟁자보다 두세 기술 세대 앞서 나간다는 구상이다. 테슬라에서 배터리·파워트레인 대량 양산을 직접 이끈 경험, 그리고 이번 시리즈B로 확보한 자금력이 그 자신감의 근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겠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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