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으로 암을 잡는다…샤인 테크놀로지스, 2억 4,000만 달러 투자 유치


암 치료에 쓰이는 방사성 의약품은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루테튬-177(Lu-177)은 전립선암과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에 활용되는 표적 방사성 의약품으로, 제조 난이도가 높아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오랜 숙제였다. 핵융합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한 몇 안 되는 회사 가운데 하나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하고 있다.

SHINE Logo - 와우테일

샤인 테크놀로지스(SHINE Technologies)는 위스콘신주 제인즈빌에 본사를 둔 핵융합 기술 기업이다. 대부분의 핵융합 스타트업이 청정 에너지 생산이라는 먼 목표만 바라보며 투자를 기다리는 동안, 샤인은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활용해 방산·항공우주 부품 비파괴검사와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이라는 즉각적인 상업 가치를 먼저 만들어왔다. 이미 흑자를 내는 사업 부문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사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샤인을 이끄는 그렉 피퍼(Greg Piefer) CEO는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핵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물리학과 전기·컴퓨터공학 학사도 겸비했다. 졸업 후 피닉스 핵연구소(Phoenix Nuclear Labs)에서 고출력 입자 소스 개발을 이끌었고, 데이터 복구 기업 길웨어(Gillware)의 최고기술책임자를 거쳐 2010년 샤인을 독립 법인으로 분리·설립했다. 핵융합 기술을 단계별로 상업화하겠다는 4단계 로드맵은 박사 시절부터 그가 그려온 청사진이다.

샤인이 Lu-177 생산에 주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물질이 기존 방사선 치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방사선 치료’라고 하면 병원에서 커다란 기계 앞에 누워 외부에서 방사선을 쏘는 장면을 떠올린다. 선형가속기(LINAC)를 이용해 몸 밖에서 X선이나 감마선을 종양 부위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국소적인 고형 종양에는 효과적이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방사선이 암세포에 도달하는 경로의 정상 조직도 함께 손상되고, 이미 여러 곳으로 퍼진 전이성 암에는 쓰기 어렵다.

방사성 의약품 치료(Radioligand Therapy, RLT)는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방사성 의약품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특정 암세포 표면의 수용체만을 찾아가도록 설계된 분자인 ‘리간드’와, 여기에 결합해 방사선을 내뿜는 Lu-177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다. 리간드가 표적을 탐색하는 유도 장치라면, Lu-177은 암세포를 파괴하는 탄두다. 이 물질을 주사하면 혈류를 타고 전신을 돌면서 암세포에만 달라붙어 방사선을 방출한다. 전이성 암처럼 여러 곳에 퍼진 경우에도 쓸 수 있고, 주변 정상 조직의 피해도 훨씬 적다. 폭격기로 도시 전체를 타격하는 대신 목표물만 찾아가는 정밀 유도 미사일에 가까운 개념이다. Lu-177은 이미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Pluvicto)와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Lutathera)로 FDA 승인을 받았으며, 현재 유방암·폐암·대장암 등으로 임상 연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방사성 의약품 치료 시장은 전체 항암 시장에서도 가장 뜨거운 분야로 떠올랐다. 전체 항암제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2,200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11% 성장이 전망된다. 이 중 RLT 시장은 아직 전체의 3~5% 수준에 불과하지만, 성장 속도는 전체 시장을 크게 웃돈다. 루츠 애널리시스(Roots Analysis)에 따르면 방사성 의약품 시장은 2025년 121억 달러에서 2040년 546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며, RLT 세부 시장만 놓고 보면 연평균 12~22%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빅파마들은 이미 대규모 베팅에 나섰다.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2023년 말 포인트 바이오파마(Point Biopharma)를 1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BMS가 2024년 초 레이즈바이오(RayzeBio)를 41억 달러에,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가 같은 해 퓨전 파마슈티컬스(Fusion Pharmaceuticals)를 24억 달러에 각각 사들였다. 노바티스(Novartis)는 미국 내 방사성 의약품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해 23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010년대 면역항암제가 항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것처럼, 방사성 의약품이 2030년대 항암 치료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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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산업 구조를 이해하면 샤인의 포지션이 더 명확해진다. 리간드를 개발하는 주체는 노바티스·바이엘 같은 빅파마와 수많은 바이오텍들이다. 이들이 고부가가치를 가져가는 상단을 차지한다면, 샤인은 이들 모두에게 Lu-177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핵심 원료 공급자다. 어느 리간드가 임상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Lu-177 수요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샤인 입장에서는 특정 치료제 하나에 운명을 걸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반도체 산업으로 비유하면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에 실리콘 웨이퍼를 공급하는 소재 기업에 가깝다. 없어선 안 되는 인프라지만, 한편으로는 설계 기술을 가진 쪽이 더 큰 가치를 가져가는 구조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급이다. Lu-177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반감기가 짧아 생산지와 병원 사이의 물류 관리가 까다롭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먼저 확보하는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이 회사가 최근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샤인은 2026년 2월 26일 2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에쿼티 투자 유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번 라운드는 낸트웍스(NantWorks)가 주도했으며,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드 리서치(Fidelity Management & Research Company), 스미토모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스(Sumitomo Corporation of Americas), 펠리칸 에너지 파트너스(Pelican Energy Partners), 디어필드 매니지먼트(Deerfield Management),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Oaktree Capital Management)를 포함한 기존 투자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이번 투자를 더하면 샤인의 누적 조달액은 10억 달러를 넘어선다.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낸트웍스 창업자 패트릭 순-시옹(Patrick Soon-Shiong) 박사다. 그는 낸트웍스를 통해 1억 5,0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면서 샤인 이사회에도 합류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의사 과학자인 순-시옹 박사는 미국 FDA 최초의 단백질 나노입자 항암제 아브락산(Abraxane)을 발명한 인물로, 유방암·폐암·췌장암 치료제로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두 개의 대형 제약사를 설립·매각한 그는 현재 면역항암제 전문 기업 이뮤니티바이오(ImmunityBio, NASDAQ: IBRX)의 회장 겸 최고 과학·의료 책임자로 재직하면서, 헬스케어·기술·미디어 생태계를 아우르는 ‘낸트(Nant)’ 계열사들을 총괄하고 있다.

순-시옹 박사가 샤인에 주목한 배경에는 뚜렷한 전략이 있다. 그는 단순히 Lu-177을 사다 쓰는 고객이 아니라, 이뮤니티바이오의 면역 항암 기술과 샤인의 Lu-177을 결합한 복합 치료법을 개발하려 한다. Lu-177으로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면서 동시에 면역계를 활성화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다. 공급망을 직접 확보하면서 자신의 치료 플랫폼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포석이다. 낸트웍스와 샤인은 이번 투자와 함께 Lu-177 우선 공급 협약을 포함한 전략적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샤인의 Lu-177 생산 역량은 면역계를 활성화해 암을 더 정밀하게 치료하겠다는 내 평생의 사명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그는 밝혔다.

이번 자금은 크게 두 방향으로 쓰인다. 우선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을 강화한다. 방산·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중성자 방사선 촬영을 통한 비파괴검사로 임무 핵심 부품의 신뢰성을 검증하고, 의료 분야에서는 암 표적 치료와 진단 이미징에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공급한다. 샤인은 현재 북미 최대 루테튬-177 생산 시설인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를 위스콘신 캠퍼스에서 가동 중이며, 연간 최대 10만 도스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2024년 상업 출시 이후 4개 대륙 19개국 고객에게 95% 이상의 정시 납품률을 유지 중이다. 나머지 자금은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 개발과 상용 핵융합 에너지 생산이라는 장기 목표에 배정된다.

Lu-177 공급 시장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의 ITM 이소토프 테크놀로지스 뮌헨(ITM Isotope Technologies Munich)은 뮌헨 인근 전용 시설에서 유럽 시장을 겨냥해 생산에 나섰고, 캐나다에서는 아이소젠(Isogen)이 브루스 파워 원자력 발전소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에서 Lu-177 생산을 시작했다. 프랑스 프라마톰(Framatome)은 루마니아·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현지 생산 협력망을 넓히는 중이다. 샤인은 이 경쟁 구도 속에서 핵융합 기반 중성자 생성이라는 차별화 기술과 원료 조달부터 납품까지 직접 관리하는 수직 통합 생산 체계를 앞세우고 있다.

글로벌 확장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샤인은 2025년 스미토모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스와 일본·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공급망 파트너십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유럽 거점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에 동위원소 생산 시설 건설도 추진 중이다. 피퍼 CEO는 “핵융합 에너지는 인류가 개발할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라며 “이미 첨단 제조, 의료, 재활용 분야에서 실질적인 영향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핵융합을 에너지가 아닌 수익으로 먼저 증명해온 샤인의 실용 전략이 글로벌 의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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