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DeepSeek) 충격 이후 중국 AI 생태계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구현형 AI(Embodied AI) 분야에만 740건의 투자, 735억 위안(약 107억 달러) 이상이 쏟아졌다. 그 열기는 올해 2월에도 식지 않았다. 이달에만 1억 달러 이상을 단숨에 끌어모은 중국 스타트업이 6곳에 달했다. 로봇용 범용 AI 모델 개발사부터 자율주행 전용 반도체까지, 주목할 만한 4개 회사를 묶어 소개한다.
스피릿 AI(Spirit AI)는 2월 두 차례 연속 투자 라운드를 통해 총 약 20억 위안(2억8천만~2억9천만 달러)을 유치했다고 밝혔다. 기업가치는 100억 위안(약 14억 달러)을 넘어서며 창업 2년 만에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회사를 이끄는 핵심 인물은 공동창업자 겸 최고과학책임자 가오양(高阳, Yang Gao)이다. 칭화대를 졸업하고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칭화대 조교수를 겸직하며 로봇 학습과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연구자다. 공동창업자 한펑타오와 함께 2024년 1월 회사를 세웠다. 팀 전체의 평균 연령이 30세 미만이고 대부분 UC버클리·칭화대·베이징대 출신이라는 점도 화제가 됐다.
스피릿 AI의 승부수는 ‘더티 데이터(dirty data)’ 전략이다. 경쟁사들이 정제된 데이터셋에서 성능 한계에 부딪히는 동안, 가오양은 “VLA 모델 확장의 핵심은 더티 데이터”라고 단언한다. 사전에 스크립트화되지 않은 비정형 실세계 데이터를 대규모로 학습해야 진짜 상식을 가진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를 위해 자체 개발한 웨어러블 데이터 수집 장치를 5세대까지 진화시켰고, 덕분에 전통적인 텔레오퍼레이션 대비 데이터 수집 비용을 90% 낮췄다. 현재 20만 시간 이상의 실제 상호작용 데이터를 쌓았으며, 연말까지 100만 시간 돌파를 목표로 한다.
기술력은 벤치마크로 입증됐다. 2026년 1월 오픈소스로 공개한 ‘스피릿 v1.5’는 RoboChallenge 글로벌 리더보드에서 1위에 오르며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의 Pi0.5를 넘어섰다. 중국산 오픈소스 모델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제 산업 현장에도 이미 발을 들였다. 스피릿 AI의 휴머노이드 로봇 ‘샤오모(Moz1)’는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 CATL의 정저우 생산라인에 투입돼 유연한 와이어 하네스 작업을 처리하고 있다. 소재 특성상 자동화가 까다로운 공정인데, 99% 이상의 성공률로 숙련 작업자와 동등한 속도를 내고 있다. 징둥닷컴(JD.com) 매장에도 로봇을 배치해 고객 응대와 제품 시연에 활용 중이다.
이번 투자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윈펑 캐피탈(YF Capital)·홍산 캐피탈(HongShan Capital Group)·카오스 인베스트먼트(Chaos Investment) 같은 대형 재무 투자자에 더해, CATL·TCL·징둥닷컴·화웨이·샤오미 등 산업 전략 투자자들이 고루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충칭·항저우 시 국유 투자펀드도 참여했다. 중국 제조 공급망의 상류(부품)와 하류(유통·소매)를 동시에 주주로 둔 덕분에 실세계 배치 환경과 훈련 데이터를 남들보다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창업 2년도 안 되어 완료한 투자 라운드만 6건, 누적 조달액은 약 33억 위안에 달한다.
갤럭시아 AI(Galaxea AI) — 웨이모 출신이 만드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시리즈B 1억4천5백만 달러
구현형 AI 스타트업 갤럭시아 AI(Galaxea AI)는 2월 시리즈B에서 10억 위안(약 1억4천5백만 달러)을 조달했다. 기업가치는 100억 위안(약 14억 달러)으로 책정됐다. 진딩 캐피탈(Jinding Capital)·BAIC그룹산업투자(BAIC Group Industrial Investment)·혼 캐피탈(Hone Capital)이 신규 투자자로 들어왔고, 기존 주주인 캐세이 캐피탈(Cathay Capital)·메이퇀 드래곤볼(Meituan Dragonball)·캐피탈 투데이(Capital Today)도 추가 베팅했다. 누적 총 조달액은 30억 위안에 육박한다.
2023년 9월 설립된 갤럭시아는 AI 알고리즘과 로봇 하드웨어를 한 지붕 아래서 개발하는 풀스택 전략을 택했다. 창업자 가오지양(高继扬, Jiyang Gao)은 구글 계열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모(Waymo)와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Momenta)를 거친 뒤 회사를 차렸다. USC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구글·센스타임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자율주행에서 배운 데이터 루프 기반 반복 개발 방법론이 구현형 AI 로보틱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공동창업자도 칭화대 조교수 2명과 자율주행 양산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로 탄탄하게 꾸려졌다.
제품 측면에서는 2025년 8월 G0 모델을 공개하고, 2026년 1월 업그레이드 버전 G0 플러스를 선보였다. 휠 기반 로봇 R1 프로는 앤트그룹(Ant Group)의 오픈소스 링봇-VLA 모델의 공식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채택됐다. 인재 확보 경쟁도 치열해서, 바이트댄스와 맞붙으며 최상위 박사급 인재에 연봉 500만 위안 패키지를 제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 구현형 AI 시장 전반을 보면 ‘로봇 투자 광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2월 한 달에만 림엑스 다이나믹스(LimX Dynamics) 2억 달러 시리즈B, 링커봇(Linkerbot) 2억1천8백만 달러 시리즈B 등 대형 딜이 연달아 터졌다. 갤럭시아를 포함해 유니트리 로보틱스(Unitree Robotics)·딥로보틱스(DEEP Robotics)·아지봇(Agibot) 등 복수의 기업이 IPO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AI²로보틱스(AI² Robotics) — 바이두·CRRC가 동시에 베팅한 이유, 1억4천5백만 달러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투자자 구성이다. AI 거대 기업 바이두(Baidu), 국유 고속철도 제조사 중국중차(CRRC), 핀테크 서비스 기업 유시스 테크놀로지(Yusys Technologies), 타이어 메이커 센추리 타이어(Sentury Tire), 증권사 국태해통증권(Guotai Haitong Securities)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소프트웨어 AI 플랫폼과 중공업 제조업 인프라가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장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선전(深圳) 기반의 AI²로보틱스는 2023년 설립됐다. 2024년 6월 자체 개발한 첫 VLA 모델 GOVLA를 공개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연간 1,000대 생산 규모의 자체 로봇 생산라인을 완공했다. 올해는 이 규모를 1만 대로 키울 계획이다. 이번 투자금은 GOVLA 모델 고도화와 알파봇(AlphaBot) 시리즈 개선, 생산 확대에 투입된다.
로봇 활용처도 이미 다양하다. 산업 제조·공공 서비스·신유통 등 여러 분야에 배치 중이며, 세계 3위 LCD 패널 제조사 HKC와는 로봇 1,000대를 3년간 공급하는 계약도 맺었다. 바이두는 딥러닝·거대언어모델 역량으로 구현형 AI 모델 성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중국중차는 방대한 제조 현장을 테스트 및 응용 환경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니오 지니텍(NIO GeniTech/Shenji) — 전기차 회사가 반도체 회사로, 3억1천8백만 달러
‘선지(神玑, Shenji)’로도 불리는 지니텍은 니오가 2021년 자체 스마트 드라이빙 칩 개발에 착수하면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연구팀에서 시작해 지난해 6월 독립 법인으로 분사했으며, 니오 창업자 겸 CEO 리빈(李斌, Li Bin)이 회장을 맡고 전 오포·샤오미 출신의 하드웨어 개발 전문가 바이지안(Bai Jian)이 총괄 경영을 맡고 있다.
지니텍의 대표 제품은 선지 NX9031이다. 중국 최초의 5나노미터 자동차용 칩으로, 2024년 출시 이후 니오의 ET9·ES6·ES8·EC6 등에 이미 15만 대 이상 탑재됐다. 효과도 입증됐다. 니오는 2024년 한 해에만 엔비디아(Nvidia) 커스텀 칩을 3억 달러어치나 사들였는데, 자체 칩으로 전환한 뒤 차량 한 대당 약 1만 위안의 원가를 줄였다. 리빈은 “칩 개발 3년치 비용이 배터리 교환소 1,500개 건설 비용과 맞먹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투자에는 허페이 국유자본기업투자(Hefei State-Owned Capital Enterprise Investment)·허페이 하이헝(Hefei Haiheng)·IDG 캐피탈·중국포춘테크캐피탈(China Fortune-Tech Capital)·위안허 푸화(Yuanhe Puhua)가 참여했다. 니오 자회사가 62.7%의 지배 지분을 유지하고, 투자자들이 27.3%, 직원 스톡옵션 풀이 10%를 보유하는 구조다.
지니텍은 자동차에서 멈추지 않는다. 로보틱스·에이전트 기반 추론 등 신흥 분야로 사업을 넓히며, 차량·로봇·AI 인프라를 아우르는 통합 칩·스마트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리빈은 연초 직원 서한에서 “니오가 최고의 칩을 갖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고, 2025년 11월에는 액세라 반도체(Axera Semiconductor)·옴니비전 그룹(OmniVision Group)과 합작법인을 세워 스마트 드라이빙 기술 라이선스 사업도 시작했다.
테슬라(Tesla)가 자체 칩 개발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의 기준을 제시한 이후, 중국에서도 샤오펑(XPeng)이 ‘튜링(Turing)’ 칩을 2025년 7월 G7 SUV에 탑재하는 등 반도체 내재화 경쟁이 뜨겁다. 이번 투자로 니오가 연구개발 비용을 외부 자본과 분담하면서 2026년 흑자 전환 목표에도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2월 한 달, 이 4개 회사가 유치한 투자만 합쳐도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 로봇의 두뇌를 만드는 파운데이션 모델, 그것을 구현하는 휴머노이드 하드웨어, 자율주행과 로봇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용 반도체까지. 중국 AI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넓게 확장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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