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 없이 회의 녹취 ‘그래놀라’, 1억 2500만 달러 유치…유니콘 등극


연속으로 이어지는 회의. 끝나고 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흐릿해지는 기억.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영국 스타트업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granola series c - 와우테일

AI 회의 메모 앱 그래놀라(Granola)가 시리즈C 라운드에서 1억 2500만 달러를 조달했다고 발표했다. 인덱스 벤처스(Index Ventures)의 대니 리머(Danny Rimer)가 주도하고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의 마문 하미드(Mamoon Hamid)가 참여했다. 기존 투자자인 라이트스피드(Lightspeed), 스파크 캐피털(Spark Capital), 내트 프리드먼(Nat Friedman)과 다니엘 그로스(Daniel Gross)가 운영하는 NFDG도 재투자에 나섰다. 리머는 이번 라운드를 계기로 그래놀라 이사회 옵저버로 합류한다.

이번 투자로 기업가치는 15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 시리즈B에서 2억 5000만 달러로 평가받은 지 불과 10개월 만에 6배가 뛴 수치다. 누적 조달 금액은 총 1억 9200만 달러다.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직전 분기 대비 매출 성장률이 250%에 달했다.

그래놀라의 접근 방식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회의 중에 봇을 초대해 녹취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노트북에 앱을 설치하면 시스템 오디오를 통해 로컬에서 실시간 전사가 이뤄진다. 참석자들이 “AI가 이 자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없다. 줌(Zoom), 구글 미트(Google Meet), 팀즈(Teams), 슬랙(Slack), 웹엑스(WebEx) 등 주요 플랫폼에서 별도 봇 초대 없이 작동한다. 사용자가 회의 중 간단히 메모를 남기면 AI가 녹취록을 참조해 내용을 보완하고 빠진 부분을 채워넣는다. 회의가 끝나면 정리된 노트, 요약, 액션 아이템이 자동으로 완성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클로드(Claude), GPT,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한 채팅 기능이 탑재돼 쌓인 회의록 전체를 대상으로 검색하고 질문할 수 있다. “지난달 이 고객사 미팅에서 어떤 우려 사항이 나왔지?”라고 물으면 맥락을 파악한 답변이 돌아오는 식이다.

이번 투자와 동시에 기업 고객을 겨냥한 신기능 세 가지도 선보였다. 팀 공유 공간 ‘스페이스(Spaces)’는 특정 회사와의 미팅 히스토리를 모아보거나 담당자별로 회의를 필터링할 수 있고, 폴더를 중첩 구조로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API는 개인 사용자용 퍼스널 버전(비즈니스·엔터프라이즈 플랜)과 관리자용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함께 내놨으며, MCP(Model Context Protocol) 업데이트로 클로드, ChatGPT 같은 외부 AI 도구들이 그래놀라 데이터를 직접 불러올 수 있게 됐다. 엔터프라이즈 관리 기능도 강화해 SSO, SCIM, 사용자별 접근 권한, 전사 예약 삭제, 민감 데이터 관리 등 대기업 IT 보안 요건을 충족하는 기능들을 갖췄다.

고객군만 봐도 그래놀라의 성장 방향이 보인다. 반타(Vanta), 구스토(Gusto), 아사나(Asana) 같은 중견 테크 기업부터 커서(Cursor), 러버블(Lovable), 데카곤(Decagon), 미스트랄AI(Mistral AI) 같은 AI 네이티브 스타트업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이들이 그래놀라를 활용하는 방식도 단순 메모 이상이다. 여러 영업 통화에서 반복되는 고객 이탈 패턴을 분석하거나, 사용자 인터뷰를 모아 핵심 니즈를 파악하거나, 팀 브레인스토밍 내용을 마케팅 브리프로 전환하는 식이다. 현재 클로드, ChatGPT, 러버블, 피그마 메이크(Figma Make), 레플릿(Replit), 볼트닷뉴(Bolt.new) 등의 공식 커넥터로도 등록돼 있다.

그래놀라 공동창업자는 각자의 이력이 뚜렷한 두 사람이다. CEO 크리스 페드리갈(Chris Pedregal)은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구글 프로덕트 매니저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3년 고등학생 대상 AI 튜터 앱 소크라틱(Socratic)을 창업해 1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모은 뒤 2018년 구글에 매각했다. 이후 구글에 남아 AI 문서 스캐너 스택(Stack)을 만들었고, 이 역시 2022년 구글 드라이브에 흡수됐다. 구글에 두 번 팔아본 연쇄 창업자다. 공동창업자 샘 스티븐슨(Sam Stephenson)은 AI 노트 앱 아이디어플로우(Ideaflow) 출신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소비자 제품 설계를 전문으로 해온 런던 기반 창업자다. 두 사람은 런던의 회의 도구 커뮤니티 밋업에서 처음 만나 2023년 3월 그래놀라를 함께 차렸다.

성장 속도가 가팔랐다. 2023년 5월 라이트스피드와 베타웍스(Betaworks) 주도로 시드 425만 달러를 시작으로, 2024년 10월 시리즈A 2000만 달러(당시 주간 활성 사용자 5000명), 지난해 5월 시리즈B 4300만 달러로 이어진 뒤 이번 시리즈C에서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이번 자금은 미국 내 채용 확대와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신설, AI 에이전트 기능 개발에 쓰일 예정이다.시장 경쟁도 만만치 않다.

오터닷에이아이(Otter.ai), 파이어플라이즈닷에이아이(Fireflies.ai), 리드AI(Read AI) 등 전사+요약 앱들은 이미 시장에 자리를 잡았고, 오픈AI의 챗GPT 데스크탑 앱도 화면 읽기 기능을 강화하며 플랫폼 차원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래놀라의 승부수는 봇 없는 로컬 전사라는 프라이버시 설계와 함께, 회의 내용 자체가 아닌 그 ‘맥락’을 기업 AI의 데이터 레이어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대화 데이터를 외부 AI 도구와 연결하는 컨텍스트 레이어로 자리매김한다면, 단순 노트 앱과는 다른 게임을 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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