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 세포 리프로그래밍 임상 나선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 8천만 달러 유치


노화는 왜 일어날까.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의 답은 명쾌하다. 세포가 나이 들수록 DNA 메틸화 패턴이 점진적으로 손상되고, 이 에피게놈 정보 소실이 세포 기능 저하를 부르고 결국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노화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 of Aging)’이다.

Life Biosciences Logo - 와우테일

DNA 서열 자체는 멀쩡하다. 어떤 유전자를 언제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주석 레이어”가 나이 들면서 망가지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이 주석을 다시 젊게 복원할 수 있을까.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는 바로 이 가설을 임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설립된 바이오텍이다. 싱클레어 교수가 공동창업한 보스턴 기반 회사로, ‘부분 에피게놈 리프로그래밍(Partial Epigenetic Reprogramming, PER)’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4월 8일, 8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D 투자유치를 마감했다고 밝혔다. 이번 라운드는 모집액을 초과하는 완전 청약(fully-subscribed)으로 마감됐다.

OSK로 세포 시계를 되돌리다

기술의 출발점은 노벨상 수상자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의 연구다. 야마나카 박사는 OCT4, SOX2, KLF4, c-Myc 4개 단백질(전사 인자)이 성체 세포를 배아 줄기세포처럼 완전히 리셋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완전 리셋은 치명적 부작용을 낳았다. 세포가 자신이 간세포인지 뉴런인지 “정체성”을 잊어버리면서 동물 실험에서 종양(기형종)으로 이어진 것이다.

싱클레어 팀의 핵심 발견은 c-Myc를 빼고 나머지 세 인자 OCT4·SOX2·KLF4(=OSK)만 쓰면, 세포가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에피게놈만 젊게 복원된다는 것이었다. 완전 리셋이 아닌 ‘부분 리프로그래밍’. 스크래치된 LP 음반에 비유하면, 판(DNA)은 건드리지 않고 스크래치(에피게놈 손상)만 복원하는 기술이다. 싱클레어 팀은 2020년 녹내장 마우스 모델에서 이 방법으로 시력 회복에 성공했고,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는 하버드·싱클레어 연구실로부터 기술을 라이선스받아 영장류 실험까지 확장했고, 영장류 NAION 모델에서도 시력 손상 역전 결과를 얻었다.

인류 최초의 세포 리프로그래밍 임상

올해 1분기 FDA로부터 임상시험 개시(IND) 승인을 받은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는 곧바로 1상 임상을 시작했다. 대상 적응증은 개방각 녹내장(OAG)과 비동맥염성 전방 허혈성 시신경병증(NAION), 두 가지 시신경 질환이다. 두 질환 모두 망막 신경절 세포(RGC)가 손상되면 자연 재생이 불가능하다. 현재 표준 치료는 근본적인 신경 변성을 막지 못하고, 이 분야의 미충족 수요는 크다.

임상 설계는 바이러스 벡터로 OSK 유전자를 환자의 한쪽 눈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이다. 과도한 리프로그래밍을 막기 위해 OSK 유전자는 저용량 독시사이클린 항생제를 복용할 때만 활성화되는 유전 스위치 아래 두었다. 초기 약 12명의 녹내장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내약성을 1차 목표로 평가하고, 시각 기능 측정을 포함한 효능 지표도 함께 확인한다.

CEO 제리 맥로린(Jerry McLaughlin)은 제약업계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머크(Merck)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여러 FDA 승인 의약품의 개발과 글로벌 상업화에 참여했고,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던 에이전바이오(AgeneBio)의 CEO를 역임한 뒤 2021년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에 합류했다. 그는 이번 투자를 통해 ER-100을 핵심 임상 마일스톤까지 진전시키는 동시에 파이프라인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리즈D 8천만 달러는 2027년 하반기까지 회사 운영 자금으로 쓰인다. ER-100 1상 임상 완료 외에도, PER 플랫폼 기반의 추가 적응증 확장 연구에도 투입된다.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는 2025년 9월 노화 연구 학회(ARDD)에서 간 질환 모델에서도 후보물질 ER-300이 주요 간 기능 지표를 유의미하게 개선했다는 전임상 데이터를 발표한 바 있어, 플랫폼의 적용 범위는 안과를 넘어 확장되고 있다.

거대 자금이 몰린 경쟁 구도, 임상은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앞서

부분 에피게놈 리프로그래밍 분야에는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자금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그러나 임상 속도는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가장 앞서 있다.

알토스랩스(Altos Labs)는 2022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투자자 유리 밀너 등이 30억 달러를 투자해 출범한 회사다. 기업가치 63억 달러 규모로, 야마나카 박사 본인이 과학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14개 이상의 적응증에 걸쳐 광범위한 리프로그래밍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2025년 8월 초기 인체 안전성 시험에 진입했지만, 임상 개시 타이밍에서는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에 뒤졌다.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Retro Biosciences)는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2022년 1억8천만 달러를 개인 자금으로 단독 투자해 설립했다. 2025년 10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A를 추진 중이며 목표 기업가치는 50억 달러다. 클로즈 여부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오픈AI와 협력해 리프로그래밍 효율을 50배 끌어올리는 AI 모델을 개발했고, 오토파지(세포 자가청소) 강화 약물 RTR-242로 알츠하이머를 겨냥한 인체 임상도 개시했다. 리프로그래밍 자체보다는 전신적 노화 접근에 초점을 두고 있어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와 직접 충돌하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뉴리미트(NewLimit)은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공동창업한 회사로, 2025년 클라이너 퍼킨스 주도 시리즈B 1억3천만 달러를 포함해 누적 2억8천만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6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2025년 일라이 릴리(Eli Lilly)도 투자자로 참여하며 빅파마 진입의 신호탄을 쐈다. T세포·간세포 특화 에피게놈 리프로그래밍을 개발 중이나 아직 전임상 단계다.

20명 미만의 소규모 팀인 라이프바이오사이언스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쟁자들보다 먼저 인체 임상에 진입한 것은 이 분야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다. 싱클레어 교수는 이번 FDA 승인을 두고 “노화 과학 전반에 있어 변혁적인 날”이라고 평가했고, 맥로린 CEO도 “업계가 수년간 기다려온 돌파구”라고 밝혔다.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