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효율 AI 추론칩 유클리드, 2억 유로 시리즈A 유치


엔비디아의 최신 추론 칩 ‘베라 루빈(Vera Rubin)’은 GPU 한 개당 288기가바이트의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얹고 초당 22테라바이트의 대역폭을 낸다. 이전 세대인 블랙웰(8테라바이트/초)의 2.8배에 달하는 수치지만, 베라 루빈 72개를 담은 NVL72 랙 한 대는 190~230킬로와트(kW)의 전력을 먹는다. 메모리가 GPU 다이 바로 옆에 붙어 있어도 물리적으로 분리된 이상, 데이터를 오가게 하는 데만 막대한 전력이 든다. 추론 작업에서는 이 ‘메모리 이동’ 비용이 전체 전력 예산의 60~80%를 차지한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초고효율 AI 추론칩 유클리드, 2억 유로 시리즈A 유치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기반 유클리드(EUCLYD)는 이 ‘메모리 벽’을 정조준한다. 별도의 HBM 스택을 GPU 옆에 붙이는 대신, 1만6384개의 커스텀 SIMD 프로세서를 자체 개발한 메모리 아키텍처 ‘울트라 밴드위드 메모리(UBM)’와 한 개의 시스템인패키지(SiP, 가로세로 약 100mm)에 통합했다. 데이터를 한곳으로 실어 나르지 않고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처리해, 이동 자체에 드는 전력과 지연을 줄이겠다는 설계다. 이 칩 ‘크래프트워크(craftwerk)’와 32개를 묶은 랙 시스템 ‘크래프트워크 스테이션(CWS) 32’가 유클리드 로드맵의 중심이다. 회사 측 추정으로 CWS 32는 초당 8000테라바이트의 집계 대역폭, 1엑사플롭 이상의 연산 성능, 32테라바이트의 온시스템 메모리를 갖추고도 전력 소모는 약 125kW에 그친다. 메타의 라마4 매버릭 모델 기준 초당 768만 토큰을 처리할 수 있고, 토큰당 전력 효율은 엔비디아 베라 루빈 대비 최대 100배에 이른다는 게 회사 주장이다. 다만 이 수치는 모두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로, 독립 검증이나 실제 양산품 벤치마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유클리드는 2024년 베르나르도 카스트럽(Bernardo Kastrup) CEO와 아툴 신하(Atul Sinha)가 아인트호벤 하이테크 캠퍼스에서 창업했다. 카스트럽은 컴퓨터공학과 철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와 필립스리서치를 거쳐 병렬 프로세서 회사 실리콘하이브(Silicon Hive)를 창업해 2011년 인텔에 매각했고, 이후 ASML에서 기술전략가로 일했다. 의식 연구를 다루는 철학서 11권을 낸 저술가이기도 한 그는 퇴근 후 자택 다락방에서 크래프트워크의 아키텍처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40년 경력의 반도체 업계 베테랑 신하는 인도공과대학교(IIT) 바라나시 출신이다.

유클리드는 2억 유로 이상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 서머셋캐피탈파트너스(Somerset Capital Partners), EQT가 운용하는 스케일업 유럽 펀드(Scaleup Europe Fund), 이노베이션인더스트리스(Innovation Industries)가 공동으로 라운드를 이끌었고, 덴마크수출투자기금(EIFO), imec.xpand, 브라반트개발공사(BOM), 콰드리(Quadri)가 참여했다. ASML을 11년간 이끈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전 CEO는 이사회 의장으로 합류한다. 스케일업 유럽 펀드에게는 지난달 핀란드 위성정보 기업 아이스아이(ICEYE)에 이은 두 번째 대형 베팅이자, AI 반도체 분야 첫 투자다.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삼성전자의 이중 역할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의 공동 리드인 동시에, 한국에서 크래프트워크 초도 물량을 위탁생산하는 제조 파트너이기도 하다. 엔비디아가 베라 루빈에 쓸 HBM4 공급을 인증한 세 곳(SK하이닉스·마이크론과 함께) 중 하나인 삼성전자가, HBM을 쓰지 않는 경쟁 아키텍처에 자본과 생산 능력을 함께 베팅한 셈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200억 달러에 사들인 그록(Groq)의 추론칩 기술 양산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어, AI 추론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걸쳐 제조·투자 양면 베팅을 늘려가는 모습이다.

조달한 자금은 엔지니어링 조직 확장, 실리콘·시스템 로드맵 가속화, 생태계 파트너십 강화,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소버린·하이퍼스케일 시장 상용 배포 준비에 쓰인다. 회사는 2028년 첫 물리 시스템 출하를, 2030년까지 수천 곳의 기업 고객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메모리 벽을 넘으려는 추론 칩들

추론 시장의 ‘메모리 벽’을 공략하는 스타트업은 유클리드만이 아니다. 디매트릭스(d-Matrix)는 메모리 안에서 직접 연산하는 ‘디지털 인메모리 컴퓨팅’ 방식으로 기업가치 20억 달러에 2억7500만 달러 시리즈C를 유치했다. 포지트론 AI(Positron AI)는 메모리 중심 설계로 추론 비용을 낮춘다는 전략을 내세워 8억7500만 달러를 유치하며 유니콘에 등극했다. 네이버벤처스도 이 라운드에 참여했다. 커스텀 칩 ‘언어처리장치(LPU)’로 시작한 그록(Groq)은 최근 자체 칩 사업을 접고 ‘추론 클라우드’로 전환했으며, 엔비디아는 그록의 기술을 200억 달러에 사들여 직접 추론칩을 양산하고 있다. 웨이퍼 단위로 칩을 통째로 만드는 세레브라스(Cerebras)는 지난 5월 나스닥 상장 첫날 주가가 108% 폭등하며 55억 달러를 조달했다.

유클리드는 이들과 달리 메모리·컴퓨팅 통합 설계를 유럽에서, 유럽의 반도체 생태계(ASML·imec)를 등에 업고 만든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한다. AI 추론 반도체 시장 전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와우테일 AI 추론 지형도를 참고하시길.

이 기사는 영문기사로 발행되었습니다: EUCLYD Raises Over €200M Series A to Break the AI Efficiency Wall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