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환구의 특허 이야기] 유럽의 특허제도


유럽연합은 여러 주권국가가 모인 국가연합으로, 여러 지역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연방국가와는 결합형태가 다르다. 연방국가의 상징과 같은 미국과 유럽연합에 속한 연방국가인 독일은 국가 전체를 규율하는 법체계가 있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정치, 경제 통합을 목표로 하지만, 공동화폐인 유로(€, EUR)를 사용하는 이른바 유로존 국가조차도 2025년 현재 27개 회원국 중 20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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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도 통일하지 못한 유럽연합에서 2023년에 유럽 단일특허(Unitary Patent)를 도입했으니, 유럽 전체가 그 제도를 다 따르지는 않아서 2025년 현재 참여 회원국 수는 18개이다. 그렇더라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등 주요국이 포함된 단일특허 비준 18개국에서는 하나의 특허권으로 등록될 뿐만 아니라, 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의 판결로 동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단일특허 이전 유럽의 특허제도인 묶음특허(Bundle of National Patents)로 등록된 특허는 최소 7년 동안 통합특허법원의 관할에서 벗어나 각국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으나, 단일특허는 통합특허법원에서만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묶음특허 제도는 유럽연합에서 단일특허를 비준하지 않은 9개국에서만 운영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단일특허 비준 18개국에서도 종래와 같이 묶음특허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독일, 프랑스 등은 그 나라 언어로 명세서를 작성해 직접 해당국 특허청으로 출원하는 방법도 있다. 각각의 제도를 간단히 살펴보자.

유럽을 상징해온 묶음특허는 중앙집중식 특허심사와 국가별 효력 발생을 분리시킨 제도다.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특허를 받으려면 특허명세서를 유럽특허청(EPO: European Patent Office)에 영어, 프랑스어 또는 독일어로 제출해야 한다. 유럽특허청의 심사를 통과해 ‘유럽특허’가 부여되면 그 자체로 특허권이 인정되지는 않고, 출원인이 특허 보호를 받고자 하는 각 국가별로 특허의 효력을 발생(validation)시켜야 한다. 유럽특허청에서는 유럽연합 각국으로 뻗어나가 효력 발생가능한 묶음(bundle) 권리를 발생시키고, 이를 원하는 국가에서 개별적으로 권리화해야 한다. 국가별 효력 발생을 위해서는 국가별 번역문 제출과 수수료 납부 등이 필요하고,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도 유럽특허청의 회원국이므로 영국에서도 효력발생은 가능하다. 

묶음특허로 여러 나라에서 효력이 발생된 특허는 등록 이후부터 등록된 각국별 법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특허의 무효소송이나 특허의 침해에 관한 소송은 각국 법원에서 진행되므로, 유럽특허청에서 같이 등록 받았던 특허가 독일에서는 무효가 되고 네덜란드에서는 유효한 특허로 남을 수도 있다. 동일하게 인정되었던 권리가 국가별로 유무효 판단이 달라지는 일은 어색하므로, 유럽단일특허제도와 함께 출발한 유럽 통합특허법원에서는 묶음특허에 대해서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묶음특허 권리자는 최소 7년간 유럽 통합특허법원에서 벗어나(opt-out) 각 국가별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신청을 할 수 있다.

유럽단일특허는 중앙집중식 특허심사와 국가별 효력발생을 일체화시켰다. 유럽특허청의 심사 후 유럽특허가 부여되면 출원인은 단일특허 비준 18개국에 대해서 통일된 보호를 제공하는 단일특허를 신청할 수 있다. 단일특허는 유럽특허청에 수수료를 납부하는데, 묶음특허로 4개국을 지정하는 비용보다 저렴하다. 단일특허와 묶음특허는 병렬로 허용되어서, 18개국에 속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효력 발생을 원한다면 추가로 그 국가에서 효력 발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영국은 유럽 단일특허제도에는 포함되지 않으므로, 유럽 심사 후 영국에서 권리를 발생시키려면 별도 절차가 필요하다.

드문 일이겠으나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큰 국가 하나에서만 특허를 받고자 한다면,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직접 해당국에 출원할 수 있다. 프랑스는 종전에 유럽특허청의 심사를 통한 효력 발생만 받아들이고 프랑스로 직접 출원한 경우는 최소 요건만 심사하고 등록하고 분쟁이 있을 때 실체심사를 했으나, 최근 법(PACTE)을 제정하여 실질적인 실체심사를 한다.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형식적 심사만 하거나 유럽특허청의 심사를 통한 묶음특허를 받도록 한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로 직접 출원하는 제도는 주로 해당 국가의 시민이 이용한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특허를 출원할 때는 단일특허 또는 묶음특허를 선택한다. 어느 경우이든 출원은 유럽특허청으로 해야 하며, 심사 후 유럽 특허를 부여받아 보호대상을 선택할 때 결정하게 된다. 유럽특허는 제도 자체가 복잡하므로 전문가인 변리사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환구변리사(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석사, 고등기술연구원(IAE)과 아주대학교 협동과정에서 시스템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와 고등기술연구원에서 반도체, 정보통신 분야를 연구했으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지냈다. 《세상의 모든 X》(2020) 《발명, 노벨상으로 빛나다》(2021)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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