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환구의 특허 이야기] 유럽의 디자인과 상표


유럽 여러 나라가 서로 다른 언어와 민족이라는 장벽을 극복하고 국가연합(EU)을 결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로마제국과 기독교라는 공통점을 무시할 수 없다. 동서로마 교회의 분열,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거치면서도 서유럽 지역에 이어져 내려온 기독교 왕국들과 신성로마제국은 유럽 여러 나라의 왕실을 서로 엮어 놓아서 왕위계승 전쟁이 빈번했고 그때마다 서로 얽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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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위그노전쟁과 30년 전쟁 그리고 청교도혁명 등 종교관련 전쟁 등을 통해서도 유럽은 합종연횡의 싸움판으로 얽혔다. 그런가 하면 상인과 그들이 속한 도시들이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을 위해 결성했던 도시간 연맹인 한자동맹의 역사도 있다.

 유럽연합은 통합 과정에서 특허와 디자인, 상표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구도 두려고 했으나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한 번역 등의 복잡한 문제 때문에, 언어에 크게 구속되지 않는 디자인과 상표 관리기구 단일화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내 디자인과 상표에 대한 절차를 진행하는 기관으로 유럽연합 지식재산청(EUIPO, European Unio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을 설립해서, 이 곳에 디자인이나 상표를 등록하면 유럽연합(EU) 전역에서 권리가 보호되도록 했다. 여기에서 등록된 디자인은 유럽공동체 디자인(RCD: Registered Community Design)이라 하고, 상표는 유럽연합상표(EUTM: European Union Trade Mark)라고 칭한다.

유럽 특허청(EPO)은 유럽특허협약(EPC)에 따라 유럽 특허를 부여하는 기관이므로, 유럽연합 가입국이 아니더라도 유럽특허협약에 가입할 수 있다. 유럽특허협약 가입국은 당연히 유럽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해서 등록여부를 결정하는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심사결과 등록 가능하다는 결정이 나면 유럽특허협약 가입국에서 유효화는 할 수 있지만, 유럽 단일특허를 비준할 수 있는 권리는 유럽연합 가입국 특허청에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미 가입국인 스위스나 튀르키예는 물론 탈퇴국인 영국에서도 유럽 특허청 심사 후 특허유효화를 통해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다. 유럽특허협약이 유럽연합과 별개로 결성된 협약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유럽연합 지식재산청은 그 이름에 유럽연합이 명시되어 있듯이 유럽연합의 기관이므로, 유럽연합 비가입국은 이 기관을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영국이나 스위스 등에 디자인 또는 상표를 등록하기 위하여 유럽연합 지식재산청을 이용할 수는 없다.

 유럽특허청에서 심사를 받으려면 명세서를 영어, 독일어 또는 프랑스어로 기재해야 하는데, 모국어 기준으로 전 세계사용자 수에서 영어를 뛰어넘는 스페인어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단일특허를 비준하지 않은 스페인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유럽연합은 그 지식재산청의 소재지를 스페인의 알리칸테에 두었다.

 이처럼 유럽에서 디자인과 상표를 취득하고자 할 때는 유럽연합 내에서 이미 단일화가 이루어진 하나의 디자인이나 하나의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 받을 수 있다. 명세서 번역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로 실시에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고, 실시 후에도 일부 국가가 여전히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단일특허 제도가 디자인과 상표 분야에서는 일찍 이루어진 셈이다. 유럽공동체 디자인(RCD)과 유럽연합 상표(EUTM)의 무효는 유럽연합 지식재산청 심판소에서 1차를 다투고, 2차는 유럽사법재판소(CJEU: 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Union)에서 다툴 수 있다.

 유럽에 디자인이나 상표를 등록 받기 위해서 반드시 유럽연합 지식재산청을 경유해야 하는 건 아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특정 국가에만 디자인이나 상표를 등록하고 싶으면 해당국 특허청에 직접 출원할 수도 있다. 소수의 국가만 골라서 디자인이나 상표를 출원하는 이유는 대개 비용을 절감하거나, 해당국 내에서만 사업을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시장이 통합된 유럽연합에서 특정 국가에만 디자인이나 상표를 출원해서는 디자인이나 상표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없으므로 한국 기업이나 개인은 유럽공동체 디자인 또는 유럽연합 상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환구변리사(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석사, 고등기술연구원(IAE)과 아주대학교 협동과정에서 시스템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와 고등기술연구원에서 반도체, 정보통신 분야를 연구했으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지냈다. 《세상의 모든 X》(2020) 《발명, 노벨상으로 빛나다》(2021)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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