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시드] 안토 바이오사이언시스, 장내 미생물 분석 AI로 신약 개발 리스크 줄인다


같은 약을 먹어도 누군가에게는 효과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다. 심지어 중국에서 성공한 항암제가 미국 임상시험에서 실패하기도 한다. 분자 구조는 동일한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답은 우리 몸속 100조 개의 미생물,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에 있다.

anto biosciences cofounders - 와우테일

안토 바이오사이언시스(Anto Biosciences)는 이 오래된 수수께끼를 AI로 풀겠다고 나섰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 스타트업은 Y콤비네이터(Y Combinator) 2025년 가을 배치에 선정되며 5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입으로 삼키는 약의 3분의 2 이상은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장내 세균의 영향을 받는다. 세균이 약물을 분해하거나, 변형시키거나, 활성화시킨다. 문제는 이 장내 미생물 구성이 지역, 인종, 나이, 식습관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한국인과 미국인의 장내 세균 구성은 다르고, 심지어 같은 가족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에서 이 변수는 거의 무시돼 왔다. 제약사는 동물 실험과 특정 집단 대상 임상시험을 거쳐 약을 출시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 차이로 인한 반응 변화는 예측하지 못했다. 안토는 회사 설립 배경으로 중국에서 효과를 보인 항암제가 미국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사례를 제시한다. 동일한 분자임에도 10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고, 안토의 모델은 그 원인이 양국 환자들의 마이크로바이옴 차이에 있었음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공동창업자 아르비드 골비처(Arvid Gollwitzer)는 MIT·하버드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와 ETH 취리히에서 메타게노믹스를 연구한 전문가다. 네이처(Nature)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로,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신호만 추출하는 ‘희소화(sparsification)’ 기법을 개척했다. 또 다른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더 흐루일(David de Gruijl)은 하버드 의대 소화기내과와 존슨앤존슨(J&J)에서 경력을 쌓으며, 기존 약물 소화 모델의 한계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안토가 구축하는 것은 장내 미생물 군집을 위한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GPT가 언어를 이해하듯, 이 모델은 수백만 개의 마이크로바이옴 샘플 데이터를 학습해 약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예측한다. 핵심 기술은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의 99%를 차지하는 노이즈를 걸러내고, 실제 예측력을 가진 1%만 남기는 희소화 알고리즘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몇 달이 걸리고 수백만 달러가 들던 장내 미생물 시뮬레이션을 빠르고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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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입장에서 안토의 기술은 이렇게 활용된다. 신약 후보 물질을 입력하면, 지역별·연령별·식습관별로 해당 약물이 어디서 효과를 발휘하고 어디서 실패할지 예측한다. 단순히 위험 신호만 띄우는 게 아니라, 실패 원인이 어떤 미생물의 어떤 대사 경로 때문인지까지 짚어준다. 나아가 더 많은 환자에게 효과가 있도록 분자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제안한다. 안토 측은 “20%의 약효를 80%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적화 문제로 전환된다”고 설명한다.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2024년 9억 4,000만 달러에서 2034년 138억 7,000만 달러로 연평균 30.97%의 성장이 예상된다. 이미 실제 치료제가 시장에 나와 있다.

세레스 테라퓨틱스(Seres Therapeutics)는 2023년 4월 FDA로부터 ‘바우스트(Vowst)’의 승인을 획득했다. 세계 최초의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다.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rCDI) 예방에 사용되는 이 약은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에서 추출한 미생물 포자를 캡슐에 담았다. 임상시험에서 투약 8주 후 재발 방지율이 88%에 달했고, 24주 후에도 79%가 재발 없이 유지됐다. 네슬레 헬스 사이언스(Nestlé Health Science)와 공동 상용화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만 연간 약 15만 6,000건의 재발성 CDI가 발생한다.

베단타 바이오사이언스(Vedanta Biosciences)는 2023년 1억 65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E 투자를 유치하고, 차세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VE303’의 글로벌 3상 임상시험(RESTORATiVE303)을 2024년 5월 시작했다. 바우스트와 달리 기증자 대변이 아닌 순수 세균 배양을 통해 8가지 균주를 정밀하게 배합한 제품이다. 2상에서 위약 대비 재발 위험을 30.5% 낮추며 유망한 결과를 보였고, 2027년 결과 발표가 예상된다. 다만 2025년 8월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VE202는 2상에서 주요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안토와 바이오코텍스 같은 회사들은 이런 ‘치료제’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 제약사들이 더 좋은 약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AI 플랫폼’을 개발한다. 둘 다 마이크로바이옴과 약물의 상호작용을 예측하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영국 런던의 바이오코텍스(BioCorteX)는 2023년 소피노바 파트너스(Sofinnova Partners)와 혹스턴 벤처스(Hoxton Ventures) 주도로 500만 달러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카본 미러(Carbon Mirror) 플랫폼은 물리학과 화학의 제1원리(first-principle)를 기반으로 약물-박테리아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한다. 항공우주 산업에서 제트 엔진이나 원자로 설계에 쓰이는 에뮬레이션 기술을 생명과학에 적용한 것이다. 30억 개 이상의 노드와 160억 개의 관계를 담은 ‘카본 날리지(Carbon Knowledge)’ 지식 그래프 위에 시뮬레이터를 구축했다. 최근에는 항체-약물 접합체(ADC) 항암제와 종양 내 박테리아의 상호작용을 규명해 주목받았고, 미국과 일본 환자의 항암제 반응 차이를 마이크로바이옴으로 설명하는 연구도 발표했다.

안토는 이와 달리 대규모 언어모델(LLM)처럼 작동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한다. GPT가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해 언어를 이해하듯, 안토의 모델은 수백만 개의 마이크로바이옴 샘플을 학습해 집단 수준의 약물 반응 패턴을 예측한다. 바이오코텍스가 개별 약물-박테리아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을 시뮬레이션하는 ‘미시적 접근’이라면, 안토는 집단 데이터에서 패턴을 추출하는 ‘거시적 접근’에 가깝다. 또한 안토는 단순 예측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집단에 효과가 있도록 분자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까지 제안하는 ‘분자 최적화’ 기능을 강조한다.

안토의 오픈소스 도구와 연구 성과는 이미 공학 및 계산생물학 교육 프로그램에서 활용되고 있다. 창업팀은 NeurIPS 2025 AI for Science 워크숍에 치료 저항성 연구와 미생물 생태계 인과 모델링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셋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제약사 연구개발팀과 협력해 국경 간 라이선스 거래에서 집단별 약효 예측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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