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AI 스타트업 ‘하비’, 80억 달러 가치에 1.6억 달러 시리즈F 투자 유치


법률 업무 자동화에 특화된 AI 스타트업 하비(Harvey)가 1억6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F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로 하비의 기업가치는 80억 달러에 달하게 됐으며,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가 라운드를 주도했다. 원드르코(WndrCo)와 티로우프라이스(T. Rowe Price Associates)가 신규 투자자로 참여했고, 세콰이어(Sequoia),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 컨빅션(Conviction), 엘라드 길(Elad Gil) 등 기존 투자자들도 후속 투자에 나섰다. 앞서 스웨덴 투자사 EQT 그로스(EQT Growth)가 5800만 달러(5000만 유로)를 투자한 바 있어, 하비는 2025년 한 해에만 7억5000만 달러 이상을 조달한 셈이다.

Harvey logo - 와우테일

하비의 기업가치 상승 속도는 놀랍다. 올해 2월 세콰이어 주도로 3억 달러 시리즈D를 유치하며 3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불과 4개월 뒤인 6월에는 클라이너퍼킨스와 코아튜(Coatue) 공동 주도로 3억 달러 시리즈E를 마감하며 50억 달러로 뛰어올랐다. 10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기업가치가 30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2.5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하비는 2022년 전직 증권·반독점 소송 변호사 윈스턴 웨인버그(Winston Weinberg)와 구글 딥마인드 출신 AI 연구원 가브리엘 페레이라(Gabriel Pereyra)가 공동 창업했다. 당시 로펌 오멜베니앤마이어스(O’Melveny & Myers)에서 1년차 변호사로 일하던 웨인버그는 룸메이트였던 페레이라가 보여준 오픈AI의 GPT-3를 접하고 법률 업무 자동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임대차법 관련 개념증명(PoC)을 만들어 샘 알트만(Sam Altman)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고, 이것이 오픈AI 스타트업 펀드(OpenAI Startup Fund)의 첫 번째 투자로 이어졌다.

하비의 핵심 경쟁력은 오픈AI의 GPT, 앤쓰로픽의 클로드 등 최첨단 대형언어모델(LLM) 위에 법률 도메인 전문성을 결합한 것이다.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계약서 분석, 실사, 소송 지원, 규제 준수 등 복잡한 법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웨인버그 CEO는 “단순 검색만으로는 변호사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며 “판례 연구에서는 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아야 하는데, 이건 훨씬 어려운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하비는 오픈AI와 협력해 법률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도 자체 개발했으며, 빅로(Big Law)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ChatGPT 대비 93% 더 높은 선호도와 87% 향상된 판례 인용 정확도를 기록했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2024년 한 해 동안 고객사가 40곳에서 235곳으로 5배 이상 늘었고, 연간 반복 매출(ARR)은 4배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 ARR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미국 100대 로펌(Am Law 100) 중 절반 이상이 하비를 사용한다. 브리지워터(Bridgewater), 컴캐스트(Comcast), 카바나(Carvana) 등 대기업 사내 법무팀도 고객사에 포함된다. 현재 63개국에서 700여 개 고객사를 확보했으며, 직원 수는 300명을 넘어섰다.

테크크런치는 하비가 VC들의 ‘킹메이킹(kingmaking)’ 전략의 대표 사례라고 분석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스타트업의 안정성을 시장에 각인시키면, 대형 로펌 같은 기업 고객들이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이것이 자기 실현적 예언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2022년 창업 이후 불과 3년 만에 고객 확보와 법률 데이터 학습 양 측면에서 경쟁사를 크게 앞서며 시장의 ‘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이번 투자 발표와 함께 하비는 셰어드 스페이스(Shared Spaces)라는 새로운 협업 플랫폼도 공개했다. 로펌이 자체 개발한 AI 워크플로우와 플레이북을 외부 클라이언트나 협력 로펌과 공유하면서도 핵심 프롬프트나 기밀 정보는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다. 기업 사내 법무팀과 외부 로펌 간 협업을 원활하게 만들어 계약 업무와 딜 사이클을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리걸테크 AI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법률 AI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2025년 31억 달러에서 2030년 108억 달러로 연평균 28.3% 성장할 전망이다. 법률 업무가 본질적으로 ‘텍스트 입력, 텍스트 출력’의 구조라는 점에서 LLM 기술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분석이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2025년 리걸테크 분야 투자 규모는 24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경쟁도 치열하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본사를 둔 파일바인(Filevine)은 올해 9월 인사이트 파트너스(Insight Partners), 액셀(Accel), 할로 펀드(Halo Fund) 주도로 4억 달러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2014년 설립된 파일바인은 약 6000개 고객사와 10만 명의 법률 전문가가 사용하는 법률 업무 관리 플랫폼으로, AI 매출이 전년 대비 130% 성장했다. 캐나다 밴쿠버의 클리오(Clio)는 2024년 9월 9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F를 유치해 3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2025년 11월에는 5억 달러 시리즈G를 마감하며 50억 달러로 도약했다. 개인상해 전문 법률 AI 스타트업 이븐업(EvenUp)도 올해 10월 1억5000만 달러 시리즈E를 유치하며 2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초기부터 투자해온 엘라드 길은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하비는 기술과 시장 포지셔닝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어 진정한 성장을 경험하는 AI 시장 리더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세콰이어캐피털의 팻 그레이디(Pat Grady) 파트너도 “법률 시장에 생성형 AI를 적용하는 것은 정중앙을 노린 것과 같다”며 “미국 법률 서비스 시장만 4000억 달러 규모로,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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