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브릭스 시리즈L이 보여준 것…메가 유니콘들의 ‘탈IPO’ 전략


데이터 인텔리전스 기업 데이터브릭스(Databricks)가 1340억 달러 기업가치로 40억 달러 이상을 유치하며 시리즈L 투자 라운드를 완료했다. 이 소식은 벤처캐피털 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메가 유니콘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성장 전략의 표본이다.

de IPO strategy - 와우테일

시리즈L 투자 라운드는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다. 통상적으로 스타트업 투자는 시드(Seed) → 시리즈A → 시리즈B → 시리즈C 순으로 진행되며, 대부분 기업은 시리즈C~D 단계에서 IPO나 M&A를 통해 엑시트한다. 시리즈E를 넘어가는 것도 흔치 않은데, 시리즈L까지 간다는 것은 12번째 투자 라운드를 의미한다. 이는 회사가 그만큼 오랜 기간 사모 단계에 머물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테크크런치는 “IPO는 전통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었지만, 상장에 따른 공개 심사를 받지 않고도 엄청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굳이 상장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분석했다. 실제로 IPO 창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스타트업들은 상장 의사가 없다.

데이터브릭스가 상장을 계속 미루는 이유는 명확하다. 고드시 CEO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하루도 빠짐없이 쏟아졌다며 “회사가 1조 달러 기업가치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사모 단계에 머물면서 얻는 전략적 이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분기별 실적 발표 부담에서 자유롭다. 상장 기업은 매 분기 실적을 공개해야 하고,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를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는 경영진이 단기 성과에 집중하게 만들고, 장기적 투자 결정을 어렵게 한다. 반면 사모 기업은 5년, 10년 후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와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독립적이다. 공개 시장에서는 거시경제 상황, 업종 전체의 침체, 경쟁사의 실적 등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이 주가에 즉각 반영된다. 사모 기업은 이런 외부 잡음 없이 자체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다.

셋째, 대규모 M&A를 기동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상장 기업의 대형 인수는 주주 승인과 규제 당국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시장의 즉각적인 평가를 받는다. 반면 사모 기업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 데이터브릭스는 사모 투자금으로 공격적인 M&A를 통해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2023년 AI 인프라 강화를 위해 모자익ML(MosaicML)을 13억 달러에 인수했고, 2024년에는 데이터 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태뷸러(Tabular)를 10억 달러 이상에 인수했다.

넷째, 기업가치 상승 여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데이터브릭스의 기업가치는 작년 12월 600억 달러에서 1년 만에 13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올랐다. 만약 작년에 600억 달러 밸류에이션으로 IPO를 했다면, 이런 급격한 가치 상승의 혜택을 기존 주주들이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사모 단계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투자자와 직원들의 유동성 요구다. 초기 투자자들은 10년 넘게 투자금이 묶여 있으면 펀드 수익률 계산이 어려워진다. 직원들도 스톡옵션이 아무리 많아도 현금화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메커니즘이 주식 공개매수(Tender Offer)와 세컨더리 마켓이다. 주식 공개매수는 회사나 신규 투자자가 기존 주주들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으로, IPO 없이도 유동성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데이터브릭스는 작년 12월 100억 달러 시리즈J 투자 유치 당시 벤처캐피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했다.

뉴뷰 캐피털(NewView Capital)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주식 공개매수 시장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된다. 데이터브릭스는 직원들이 보유 지분의 40~60%를 매도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는 레볼루트(Revolut)의 20%보다 훨씬 관대한 조건이다. 또한 전체 주식 공개매수의 46%는 우선주 보유자, 즉 벤처캐피털들도 참여할 수 있었다. 62%는 전직 직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했다.

세컨더리 마켓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quityZen, Forge, Nasdaq Private Market 같은 플랫폼을 통해 직원과 초기 투자자들은 IPO 전에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 Forge에 따르면 데이터브릭스의 주가는 12월 16일 기준 주당 197.11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세컨더리 마켓은 회사가 공식적으로 주최하는 주식 공개매수보다 소액 거래에 유용하며, 수시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셔우드 뉴스(Sherwood News)는 “상장 기업이 되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본 조달과 주주 유동성이다. 자본이 필요 없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춘 기업이라면 상장의 유일한 동기는 유동성이다. 그런데 사모 시장 투자자들이 기꺼이 그 주식을 사줄 의향이 있다면? 영원히 사모 기업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트렌드는 데이터브릭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스페이스X(SpaceX), 오픈AI(OpenAI), 스트라이프(Stripe) 같은 메가 유니콘들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올해 3500억 달러 기업가치로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했고, 오픈AI는 10월 5000억 달러 밸류에이션으로 66억 달러 규모 세컨더리 거래를 완료했다. 스트라이프는 2월 915억 달러 기업가치로 주식 공개매수를 실시했다. 이들은 사모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정기적인 주식 공개매수로 유동성을 제공하며, IPO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2021~2022년 투자 혹한기의 영향도 크다. 당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IPO 시장이 사실상 얼어붙었다.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IPO를 준비했다가 시장 상황 악화로 포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굳이 서둘러 상장할 필요가 있나?”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물론 이 전략에도 리스크는 있다. 첫째,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질 위험이다. 사모 투자는 소수의 투자자들 간 협상으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이는 공개 시장의 광범위한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메커니즘보다 덜 효율적일 수 있다. 데이터브릭스의 1340억 달러 밸류에이션이 거품이라는 비판도 일부 존재한다.

둘째, 언젠가는 유동성 압박이 한계에 도달한다. 주식 공개매수는 일부 주주들에게만, 보유 지분의 일부만 매도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주주들이 완전한 유동성을 원하게 되고, 결국 IPO나 M&A를 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셋째, 직원 보상 전략이 복잡해진다. 상장 기업의 스톡옵션은 시장 가격이 명확하고 언제든 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모 기업의 스톡옵션은 가치 평가가 불투명하고, 주식 공개매수 기회가 제한적이며, 세금 문제도 복잡하다. 이는 인재 유치와 유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20억 달러 이상의 현금 보유고를 갖춘 데이터브릭스는 시장 상황이 호의적일 때까지 IPO를 지연할 여력이 충분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데이터브릭스가 2026년경 상장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회사는 공식적인 IPO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고드시 CEO가 언급한 “1조 달러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일 수 있다.

결국 데이터브릭스의 시리즈L 투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IPO는 더 이상 스타트업의 필수 통과의례가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충분한 자금력과 유동성 제공 메커니즘만 갖춘다면, 스타트업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까지 사모 단계에 머물 수 있다. 이는 투자자, 창업자, 직원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하는 ‘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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