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원자로 개발사 ‘라디언트’, 3억 달러 시리즈D 투자 유치


컨테이너 크기의 휴대용 원자로를 개발하는 라디언트(Radiant)가 3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지난 5월 시리즈C 투자를 마무리한 지 6개월 만에, 단 몇 주 만에 성사된 초고속 투자 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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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D 라운드는 드레이퍼 어소시에이츠(Draper Associates)와 부스트 VC(Boost VC)가 주도했다.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 ARK 벤처 펀드(ARK Venture Fund), 쉐브론 테크놀로지 벤처스(Chevron Technology Ventures) 등 기존 투자자들도 대거 참여했다. 기업가치는 18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에서 12년간 일한 엔지니어 더그 버나워(Doug Bernauer)가 2020년 설립한 라디언트는 캘리포니아 엘세군도에 본사를 두고 있다. 회사가 개발 중인 ‘칼레이도스(Kaleidos)’는 1MW급 소형 원자로로, 배송 컨테이너 크기에 불과하다. 육로와 해상, 항공으로 운송할 수 있고 며칠 안에 설치가 가능하다. 디젤 발전기를 대체할 이동식 무탄소 전력원이 목표다. 군사 기지나 원격지 산업 시설, 데이터센터, 재난 현장 같은 곳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조달한 자금은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짓는 ‘R-50 공장’에 쓰인다. 80여 년 전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바로 그 자리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K-27과 K-29 시설 부지 일부를 포함한다. 라디언트는 2026년 초 착공해 2028년 첫 양산 원자로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몇 년 안에 연간 50개 원자로를 찍어낼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춘다.

버나워 CEO는 “대량 생산되는 마이크로 규모 원자력은 역사상 처음”이라며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자금으로 공장을 짓고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와의 DOME 일정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라디언트는 내년 여름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DOME(Demonstration of Microreactor Experiments) 시설에서 첫 원자로를 가동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50년 만에 나오는 신규 원자로 설계다. 회사는 이미 압력 용기와 10년 만에 처음 나온 미국산 원자력용 흑연을 받아 조립을 시작했다.

라디언트의 올해 성적표는 화려하다. 디지털 인프라 기업 에퀴닉스(Equinix)와 20개 원자로 구매 계약을 맺었고,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고농축 저농축 우라늄(HALEU) 연료 공급 계약도 따냈다. 우렌코(Urenco)와는 미국 선진 원자로 업체로는 처음으로 서방 상용 HALEU 농축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전 에너지부 원자력 담당 차관보였던 리타 바란월(Rita Baranwal) 박사를 최고 원자력 책임자로 영입한 것도 눈에 띈다.

드레이퍼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팀 드레이퍼(Tim Draper)는 “라디언트는 모든 단계에서 약속을 지켜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휴대용 원자력이 앞으로 우리가 늘려야 할 에너지의 대부분을 공급할 것”이라며 “라디언트는 첫 원자로 가동은 물론 수개월 내 대규모 생산까지 목표로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스트 VC의 파트너 아담 드레이퍼(Adam Draper)도 “원자력은 우리 평생 가장 중요한 기회”라며 “라디언트만큼 실행에 집중하는 팀은 없다”고 거들었다.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시장이 요즘 뜨겁다. 2024년 58억 달러였던 시장 규모는 올해 말 6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2032년엔 84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AI와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배경이다. 구글은 작년 10월 카이로스 파워(Kairos Power)와 손잡고 2030년까지 500MW 규모 원자로를 도입하기로 했다. 메타는 올해 6월 콘스텔레이션 에너지(Constellation Energy)와 1.1기가와트 용량에 대한 20년 계약을 맺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28년 가동 예정인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로 재가동 계약을 확보했다.

경쟁도 치열하다. 아마존의 지원을 받는 엑스에너지(X-Energy)는 지난 11월 제인 스트리트(Jane Street) 주도로 7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마무리했다. 이는 시리즈C 확대 투자 후 1년도 안 돼 조달한 금액으로, 최근 1년여간 모은 돈만 14억 달러에 달한다. 지금까지 총 18억 달러를 조달했다. 엑스에너지는 80MW급 Xe-100 원자로를 개발 중이며, 이미 144개 원자로(총 11기가와트) 주문을 확보했다. 아마존, 다우(Dow), 센트리카(Centrica) 등이 고객이다. 아마존과는 2039년까지 최대 5기가와트를 미국 전역에 배치하는 계약을 맺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TerraPower)는 올해 6월 엔비디아 벤처 캐피털 부문과 빌 게이츠, HD현대로부터 6억 5000만 달러를 끌어모았다. 지금까지 모은 돈만 8억 8000만 달러다. 와이오밍주에 나트륨 냉각 방식의 나트륨(Natrium) 원자로를 짓고 있으며 2030년 말 가동이 목표다.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승인을 받은 유일한 SMR 업체다. 올해 5월 77MWe 모듈과 VOYGR-4(308MWe), VOYGR-6(462MWe) 설계로 라이선스를 땄다. 1분기에 주식을 팔아 1억 240만 달러를 조달했고, 3월 말 기준 현금이 5억 2140만 달러에 달한다.

파리의 신생 업체 뉴클레오(Newcleo)도 눈여겨볼 만하다. 2021년 생긴 이 회사는 납 냉각 고속로를 만든다. 지금까지 5억 8500만 달러를 모았고, 작년 9월엔 1억 5100만 달러를 추가로 조달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최대 2억 1652만 달러 투자를 검토 중이다.

Net Zero Insights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초까지 원자력 기업들이 끌어모은 돈이 벌써 13억 달러다. 2020년 이후 전체 투자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8년간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뉴스케일, 뉴클레오 4곳이 SMR 시장 투자의 92%를 가져갔다.

라디언트의 성공은 원자력 산업이 50년 침체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공장에서 찍어내 빠르게 배치할 수 있는 휴대용 원자로는 기존 전력망이 닿지 않는 곳에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을 공급할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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