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난공불락 표적 베타-카테닌 공략 ‘파라빌리스’, 3억 5백만 달러 투자 유치


임상단계 바이오 제약사 파라빌리스 메디슨즈(Parabilis Medicines)가 시리즈 F 라운드에서 3억 5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는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으며, RA 캐피털 매니지먼트(RA Capital Management),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 리서치 컴퍼니(Fidelity Management & Research Company),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Janus Henderson Investors)가 공동으로 주도했다.

parabilis medicines logo - 와우테일

파라빌리스는 2016년 포그파마(FogPharma)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2024년 사명을 변경한 회사다. 이 회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30년 넘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베타-카테닌이라는 암 표적을 실제로 약물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30년간 실패한 표적, 왜 그랬을까

베타-카테닌은 정상적으로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건강한 세포에서는 필요할 때만 작동하고, 필요 없으면 분해되어 제거된다. 하지만 암세포에서는 이 스위치가 고장나서 계속 켜진 상태로 남게 된다. 베타-카테닌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세포 핵 안으로 들어가 TCF라는 전사인자와 결합해 c-Myc, Cyclin D1 같은 암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세포가 무분별하게 증식하고, 암 줄기세포가 유지되며,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능력까지 얻게 된다.

실제로 Wnt/베타-카테닌 경로의 이상은 전체 암의 최소 20%에서 발견되며, 특히 대장암의 80% 이상, 간암의 30~40%에서 이 경로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연간 수백만 건의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중요한 표적이지만, 현재까지 이 경로를 직접 타겟하는 승인된 치료제는 없다.

문제는 베타-카테닌의 구조적 특성에 있었다. 베타-카테닌과 TCF의 결합 표면은 약 4,800Ų(옹스트롬 제곱)에 달할 정도로 넓고 평평하다. 기존 저분자 항암제들이 효과를 보이는 키나아제나 효소는 약물이 들어가 결합할 수 있는 깊고 좁은 포켓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베타-카테닌에는 이런 포켓이 없다. 저분자 의약품은 세포 안으로 침투할 수 있지만, 평평하고 넓은 표면에서는 충분한 결합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대로 항체 치료제는 넓은 표면적으로 강력하게 결합할 수 있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세포막을 통과하지 못해 세포 내부에 있는 베타-카테닌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연구개발 총괄을 역임한 마타이 매먼(Mathai Mammen) 파라빌리스 CEO는 “머크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존슨앤존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주요 종양학 기업이 같은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하버드 연구실에서 시작된 돌파구

파라빌리스의 기술은 1990년대 후반 하버드대 그레그 베르다인(Gregory Verdine) 교수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베르다인 연구팀은 저분자 의약품과 항체 사이의 간극을 메울 방법을 찾았다. 특정 나선 구조를 가진 짧은 펩타이드가 세포 내로 침투하면서도 평평한 단백질 표면에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헬리콘(Helicon) 플랫폼은 안정화된 알파-나선 펩타이드를 설계하고 발견하는 약물 개발 플랫폼이다. AI와 물리학 기반 계산 방법을 통합해 세포 투과성과 표적 결합력을 동시에 최적화한다. 헬리콘은 저분자 의약품처럼 세포 내로 침투할 수 있으면서도 나선 구조 덕분에 항체처럼 넓은 표면적으로 단백질과 강력하게 결합할 수 있어 ‘큰 저분자(large small molecules)’라고 불린다.

Parabilis Helicon Structure - 와우테일

헬리콘 펩타이드는 표적에 따라 세 가지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첫째, 표적 단백질에 직접 결합해 단백질 간 상호작용을 차단하는 억제제로 작동한다. 졸루카테타이드가 이 방식으로 베타-카테닌과 TCF의 결합을 막는다. 둘째, 표적 단백질과 세포 내 분해 기구(E3 리가제)를 연결해 표적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분해제(degrader)로 작동한다. PROTAC(Proteolysis Targeting Chimera) 기술과 유사한 방식이지만, 헬리콘의 세포 투과 능력 덕분에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표적도 분해할 수 있다. 셋째, Lead-212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시켜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방사성의약품으로도 개발될 수 있다.

베르다인은 “드러깅 디 언드러거블(drugging the undruggable)”이라는 표현을 처음 만들어낸 인물로, 2016년 회사 설립 초기 CEO를 맡았다가 2023년 매먼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임상에서 입증되는 효과

파라빌리스의 대표 파이프라인은 임상 1/2상 단계에 있는 졸루카테타이드(zolucatetide, FOG-001)다. 이 약물은 베타-카테닌과 TCF 간 상호작용을 직접 억제하는 최초의 치료제다.

졸루카테타이드가 베타-카테닌과 TCF의 결합을 차단하면 암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어 암세포 증식이 멈추고, 암 줄기세포가 사라지며, 전이 능력도 감소한다. 또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베타-카테닌 경로를 억제하면 종양 미세환경에서 면역세포가 들어올 수 있게 되어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 가능성도 열린다. 기존에는 Wnt/베타-카테닌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암에서 면역세포가 종양 내부로 침투하지 못해 면역항암제가 효과를 보이지 못했는데, 베타-카테닌을 억제하면 이 장벽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파라빌리스는 2025년 4분기에 진행 중인 임상 1/2상 시험에서 초기 데이터를 발표했다. 졸루카테타이드는 데스모이드 종양(desmoid tumors), 두개인두종(adamantinomatous craniopharyngioma, ACP) 등 Wnt/베타-카테닌 변이로 인한 5개의 저복잡도 종양 유형에서 단독 요법으로 의미 있는 활성을 보였다. 특히 데스모이드 종양 적응증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다. 데스모이드 종양은 결합조직에 형성되는 희귀한 비암성 종양이지만, 국소적으로 공격적인 성장 특성을 보인다.

다음 주 열릴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파라빌리스는 데스모이드 종양에 대한 추가 데이터와 함께 간세포암(HCC),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FAP)에서의 초기 임상 증거를 공유할 예정이다. 회사는 2026년에도 추가적인 데이터 발표를 계획하고 있다. 초기 데이터는 또한 미세부수체 안정성 대장암(MSS CRC) 등 생물학적으로 더 복잡한 암에서 병용요법의 과학적 근거를 보여줬다.

베타-카테닌 너머로 확장

이번 투자금은 졸루카테타이드의 등록 임상시험 준비와 다양한 종양 유형으로의 확대 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헬리콘 플랫폼을 활용한 파이프라인 확장에도 투입된다. 파라빌리스는 전립선암을 타겟으로 하는 ERG, 알로스테릭 ARON 등을 표적으로 하는 전임상 단계의 헬리콘 분해제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이들 역시 기존 약물 방식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던 표적들이다.

매먼 CEO는 “파라빌리스의 목표는 새로운 치료 옵션이 절실한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세계적 수준의 투자자들의 지원과 신뢰에 깊이 감사하며, 이를 통해 희귀 종양부터 일반 종양 유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졸루카테타이드를 발전시키고, 수십 년간 접근할 수 없었던 생물학적 영역을 다루도록 설계된 헬리콘 플랫폼을 통해 독특하고 차별화된 파이프라인을 계속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심화와 투자 열기

베타-카테닌을 타겟으로 하는 경쟁도 치열하다. 사피엔스 테라퓨틱스(Sapience Therapeutics)는 2023년 베타-카테닌의 최초 길항제인 ST316의 임상 1-2상 시험에서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ST316은 베타-카테닌과 그 공동활성자인 BCL9 간 상호작용을 억제하는 펩타이드 길항제다. 듀포인트 테라퓨틱스(Dewpoint Therapeutics)도 베타-카테닌을 비활성 응축물(condensate) 저장소로 격리시키는 소분자 응축물 조절제(c-mods)를 개발 중이다.

파라빌리스는 이례적으로 오랜 기간 비상장 기업으로 남아있는 바이오텍 스타트업이다. 이번 시리즈 F 라운드는 회사가 최소 6번째로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매먼 CEO는 2024년 투자 유치 당시 상장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최근 인터뷰에서는 IPO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파라빌리스는 2024년에 1억 4,500만 달러를, 2022년에는 1억 7,800만 달러, 2021년에는 1억 700만 달러를 투자받았으며, 현재까지 총 5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RA 캐피털의 파트너 제이크 심슨(Jake Simson)은 “오랫동안 드러그하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표적을 성공적으로 약물화하려면 깊은 생물학적 통찰력과 차별화된 기술적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며 “헬리콘을 통해 파라빌리스는 영향력 있는 치료제의 강력한 파이프라인을 생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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