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 vs 앤쓰로픽, 헬스케어 AI 경쟁 본격화… “소비자 vs 병원” 전략 엇갈려


지난 1월 7일 오픈AI(OpenAI)가 ChatGPT Health를 발표한 지 나흘 만에 앤쓰로픽(Anthropic) Claude for Healthcare를 선보이며 AI 헬스케어 시장 경쟁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두 회사가 보여주는 전략은 극명하게 다르다. 오픈AI는 “개인 사용자”를, 앤쓰로픽은 “병원과 제약사”를 우선순위에 뒀다.

ChatGPT Health Wayfinding 16 9 - 와우테일

오픈AI: 매주 2억 3,000만 명이 쓰는 ‘소비자 시장’ 공략

오픈AI의 전략은 명확하다. 이미 ChatGPT에서 건강 관련 질문을 하는 2억 3,000만 명의 사용자를 제품화하는 것이다. ChatGPT Health는 ChatGPT 내 별도 공간으로 작동하며, 건강 관련 대화를 일반 대화와 분리해 관리한다. 사용자가 일반 ChatGPT에서 건강 질문을 시작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Health 섹션으로 이동을 제안한다.

핵심은 “개인 건강 기록의 통합”이다. b.well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내 220만 의료 제공자의 전자 건강 기록(EHR)을 연동할 수 있다. 여기에 Apple Health, MyFitnessPal, Weight Watchers, Peloton, AllTrails 같은 웰니스 앱까지 연결된다. 사용자는 “내 최근 혈액 검사 결과는 무슨 의미인가요?”, “의사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같은 일상적 질문을 자신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을 수 있다.

오픈AI는 260명 이상의 의사와 2년간 협력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60개국에서 활동하며 30개 건강 분야에서 60만 건 이상의 모델 출력을 평가했다. GPT-5 기반 모델은 HealthBench라는 자체 벤치마크로 검증됐는데, 이는 시험 문제가 아닌 “실제 의사가 작성한 평가 기준”을 사용한다. 하지만 ChatGPT Health는 아직 대기자 명단 방식으로 제한 출시 중이며, 전체 공개는 “수 주 내”로 예정됐다.

앤쓰로픽: “병원과 보험사부터” HIPAA 인프라로 엔터프라이즈 공략

앤쓰로픽의 접근은 정반대다. 1월 11일 샌프란시스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Claude for Healthcare는 처음부터 “엔터프라이즈 고객”을 겨냥했다. 가장 큰 차별점은 HIPAA 준수 인프라를 기본 제공한다는 점이다.

앤쓰로픽은 이를 위해 의료 산업 표준 데이터베이스와 직접 연결되는 “커넥터(Connector)”를 구축했다.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 보장 데이터베이스, ICD-10 진단 코드, 국가 의료제공자 식별 레지스트리(NPI), PubMed(3,500만 건의 생의학 문헌) 등이다. 병원이나 보험사는 Claude를 통해 이 데이터베이스를 즉시 조회하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실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는 Claude를 사용해 임상 문서 작성 시간을 10주 이상에서 10분으로 단축했다. 배너 헬스(Banner Health)는 2만 2,000명 이상의 의료진이 Claude를 도입해 더 빠르고 정확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노피(Sanofi)는 규제 업무, 신약 발견, 암 치료 개발에 Claude를 배치했다.

마이크 크리거(Mike Krieger) 앤쓰로픽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임상의들은 환자를 실제로 보는 것보다 문서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며 “AI는 전문가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것이지, 대체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스타그램 공동창업자 출신인 크리거는 지난해 5월 앤쓰로픽에 합류했다.

환자용 기능: 접근 방식의 차이

오픈AI의 ChatGPT Health는 “내 건강을 이해하고 싶은 개인”을 위한 도구다. 의료 기록을 업로드하고, 검사 결과를 쉬운 말로 설명받고, 의사 예약 전에 질문 목록을 준비하는 용도다. 별도 앱이 아닌 ChatGPT 내 독립 공간으로 작동하며, 건강 관련 대화와 파일은 다른 대화와 분리된다. 추가 암호화와 격리 보호 기능이 적용된다.

앤쓰로픽도 환자용 기능을 제공하지만,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헬스엑스(HealthEx)와의 파트너십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가 주도한 1,400만 달러 시리즈 A를 유치한 헬스엑스는 미국 내 5만 개 이상 의료 기관의 전자 건강 기록을 통합하는 스타트업이다.

헬스엑스 통합의 핵심은 앤쓰로픽이 개발한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이다. 전체 의료 기록을 한 번에 가져오는 대신, 각 질문에 필요한 부분만 동적으로 검색한다. “이 검사 결과는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물으면, Claude는 약물, 알레르기, 최근 검사 결과, 의사 노트 등 관련 카테고리만 요청한다. 사용자는 세밀한 권한 설정이 가능하며 언제든 연결을 끊을 수 있다.

헬스엑스의 프리얀카 아가르왈(Priyanka Agarwal) CEO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미국인에게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AI와 안전하게 사용할 방법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의사 출신인 아가르왈은 이전에 UCSF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에 인수된 MyoKardia에서 근무했다.

행정 업무 자동화: 사전승인이 핵심

앤쓰로픽이 타깃으로 하는 핵심 문제는 “행정 업무 과부하”다. 미국 의사들은 환자 진료보다 서류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특히 사전승인(prior authorization)은 대표적인 비효율이다. 의사가 특정 치료나 약물을 처방하려면 보험사에 수십 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검토에 수 시간이 걸린다.

Claude는 이를 자동화한다. 보장 요건, 임상 가이드라인, 환자 기록, 항소 문서를 교차 검토해 “승인 가능성”과 “필요한 추가 자료”를 즉시 제시한다. 의료 AI 문서화 솔루션 커뮤어(Commure)의 드루브 파르타사라시(Dhruv Parthasarathy) 최고기술책임자(CTO)는 “Claude가 임상의들의 연간 수백만 시간을 절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앤쓰로픽은 공격적이다. 지난 10월 Claude for Life Sciences를 출시한 데 이어, 이번 발표에서는 메디데이터(Medidata), ClinicalTrials.gov, bioRxiv/medRxiv, Open Targets 등과의 통합을 추가했다. 임상시험 프로토콜 작성, 시험 계획, 규제 제출 지원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의료 AI 스타트업과는 다른 레이어: 경쟁 아닌 협력

앤쓰로픽과 오픈AI의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존 의료 AI 스타트업들과의 차이를 먼저 봐야 한다. 에이브리지(Abridge), 엠비언스(Ambience Healthcare), 나블라(Nabla) 같은 전문 기업들은 이미 수년간 의료 현장에서 검증받았다.

에이브리지는 2018년 설립돼 지난해 6월 a16z와 코슬라 벤처스가 주도한 3억 달러 시리즈 E를 유치하며 53억 달러 가치를 인정받았다. 존스홉킨스 메디신 6,700명, 메이요 클리닉 2,000명, 카이저 퍼머넌트 2만 4,000명의 의사가 사용한다. 엠비언스는 MIT 출신이 창업해 지난해 2월 a16z와 코슬라 벤처스가 공동 주도한 7,000만 달러 시리즈 B를 유치했으며, UCSF와 메모리얼 허만 헬스 시스템에 배치됐다. 나블라는 메타 AI 연구소 출신이 설립해 8만 5,000명 이상의 임상의가 사용 중이다.

이들의 핵심 기능은 “의사-환자 대화의 실시간 문서화”다. 진료실에서 대화를 녹음하고, AI가 즉시 임상 노트를 생성하며, 전자건강기록(EHR) 시스템에 자동으로 통합한다. 에이브리지는 평균 하루 2시간, 엠비언스는 1시간 이상의 문서 작업 시간을 절약한다고 발표했다. 특정 전문과(응급의학, 정신과, 소아과 등)에 맞춰 미세 조정된 AI 모델을 제공하는 게 강점이다.

앤쓰로픽과 오픈AI는 이와 다른 레이어에서 작동한다. 이들은 “범용 AI 플랫폼”이다. 실시간 대화 녹음이나 EHR 직접 통합보다는, 더 넓은 헬스케어 워크플로우를 커버한다. 오픈AI는 개인이 자신의 건강 기록을 이해하도록 돕고, 앤쓰로픽은 병원이 사전승인·보험청구·임상시험 등 다양한 업무에 AI를 활용하도록 “인프라”를 제공한다.

실제로 오픈AI는 발표에서 에이브리지, 엠비언스, EliseAI를 “오픈AI API를 사용해 HIPAA 준수 솔루션을 구축한 파트너”로 명시했다. 즉, 의료 AI 스타트업들이 오픈AI의 GPT 모델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구조다. 엠비언스는 Azure OpenAI를 사용하고, 에이브리지도 오픈AI API를 활용한다고 알려졌다. 앤쓰로픽도 비슷하다. 커뮤어의 CTO가 Claude 활용을 언급한 것처럼, 의료 스타트업들이 Claude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든다.

정리하면 현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 관계다. 의료 AI 스타트업들은 “의사 앞단”에서 진료실 문서화 같은 특정 작업을 자동화한다. 오픈AI와 앤쓰로픽은 “뒷단”에서 AI 모델과 인프라를 제공한다. 스타트업들은 범용 AI 플랫폼을 활용해 의료 특화 제품을 만들고, 빅테크는 의료 시장 전체로 자사 기술을 확산시킨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긴장 관계가 될 수 있다. 오픈AI와 앤쓰로픽이 “Claude/ChatGPT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을 심으면, 중간 레이어 스타트업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특히 오픈AI의 ChatGPT for Healthcare가 병원용 워크스페이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일부 기능이 겹치기 시작했다. 에이브리지와 나블라가 단순 문서화를 넘어 코딩 지원, 사전승인, 임상 의사결정 지원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다.

또 다른 경쟁자: 오픈에비던스의 급부상

의료 AI 생태계에는 또 다른 강자가 있다. 오픈에비던스(OpenEvidence)는 “의사를 위한 ChatGPT”로 불리며 지난 10월 구글 벤처스가 주도한 2억 달러 투자로 60억 달러 가치를 인정받았다. 불과 3개월 전 35억 달러였던 기업가치가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2022년 설립된 오픈에비던스는 하버드 박사 출신 다니엘 나들러(Daniel Nadler)가 창업했다. 그는 이전에 S&P 글로벌이 7억 달러에 인수한 켄쇼(Kensho)를 창업한 연쇄 창업가다. 오픈에비던스는 미국 의사의 40%가 매일 로그인하며, 월 1,500만 건의 임상 상담을 처리한다. 1만 개 이상의 병원과 의료센터에서 사용 중이다.

오픈에비던스의 차별점은 “검증된 의학 지식”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 미국의사협회지(JAMA)와 파트너십을 맺고, 동료 검토를 거친 논문만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다. 의사가 “이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적합한가?”라고 물으면, 5~10초 내에 최신 연구를 기반으로 답변하고 출처를 제공한다. 검증된 의사에게 무료로 제공하며, 광고로 수익을 창출한다.

최근 오픈에비던스는 딥컨설트(DeepConsult)라는 AI 에이전트를 출시했다. 수백 개의 동료 검토 논문을 병렬로 분석해, 사람이라면 수개월 걸릴 종합 연구 보고서를 생성한다. 일반 검색보다 100배 이상의 컴퓨팅 비용이 들지만, 검증된 의사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오픈에비던스는 에이브리지·엠비언스와도, 오픈AI·앤쓰로픽과도 다른 포지션을 점한다. 문서화가 아닌 “임상 의사결정 지원”이 핵심이며, 범용 AI가 아닌 “의학 지식 검색”에 특화됐다. 월터스 클루워(Wolters Kluwer)의 UpToDate 같은 기존 의료 정보 서비스와 경쟁하면서도, AI로 훨씬 빠르고 대화형 경험을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층 전략

마이크로소프트도 여러 레이어에서 헬스케어 AI 시장을 공략 중이다. 1월 11일 발표한 블로그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Foundry 플랫폼을 통해 Claude의 헬스케어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신뢰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 내에서 HIPAA 준수를 보장하며 엔터프라이즈급 배포를 지원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 의료 AI 음성 스크라이브인 뉴앙스(Nuance)도 보유하고 있어, 인프라(Azure OpenAI), 음성 문서화(Nuance), 범용 AI(Claude 파트너십) 등 여러 레이어에서 시장을 공략한다.

시장 규모와 성장 전망

헬스케어 AI 시장은 2026년까지 45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오픈AI의 매주 2억 3,000만 건 건강 질문과 앤쓰로픽의 엔터프라이즈 LLM 지출 40% 점유율(멘로 벤처스 분석)은 전혀 다른 전략이 동시에 작동함을 보여준다. 소비자 규모는 데이터와 브랜드 인지도를, 엔터프라이즈 계약은 안정적 수익과 규제 검증을 제공한다.

안전성 논란: 환각과 잘못된 조언

두 회사 모두 환각 현상과 잘못된 의료 조언에 대한 우려를 의식하고 있다. 앤쓰로픽은 이용 약관에서 “의료 결정, 진단, 환자 치료, 정신 건강 등 고위험 사례에서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결과물을 검토한 후 배포하거나 최종 확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오픈AI 역시 ChatGPT Health가 “진단이나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며” 의료진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최근 19세 청소년이 ChatGPT의 의료 조언을 믿고 약물을 과다복용해 사망한 사건이 보도되며 논란이 커졌다. 구글도 부정확한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AI 요약을 삭제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환각이 빈번한 대형언어모델이 의료 조언을 제공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지만, 행정 업무 자동화와 정보 접근성 개선의 잠재력은 분명하다.

미국 의료계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행정 업무 과부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의사협회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66%가 이미 AI를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2030년까지 미국은 10만 명의 의사 부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각자의 길, 각자의 승부

현재 Claude for Healthcare의 건강 기록 연동 기능은 미국 내 Claude Pro 및 Max 사용자를 대상으로 베타 서비스 중이며, Apple Health와 Android Health Connect 통합은 이번 주 베타 출시 예정이다. ChatGPT Health는 대기자 명단 방식으로 제한 출시 중이며, 전체 공개는 수 주 내로 예상된다.

크리거 CPO는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우리는 ChatGPT와 소비자 마인드셰어를 놓고 경쟁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차별화와 집중에 힘을 쏟고 있다. 개발자들이 우리를 사랑하고, 빌더들이 우리를 사용해 무언가를 만들며, 우리가 에이전트 행동과 코딩에서 탁월하다는 점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결국 승자는 안전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쪽이 될 것이다. 오픈AI의 소비자 우선 전략이 시장을 장악할지, 앤쓰로픽의 엔터프라이즈 중심 접근이 효과를 볼지는 앞으로 수개월 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확실한 것은 AI가 헬스케어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답이 이제 실험실이 아닌 병원과 가정에서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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