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릴리, 10억 달러 투자해 AI 신약개발 공동 랩 출범


엔비디아(NVIDIA)와 150년 전통의 제약 대기업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손잡았다. 두 회사는 향후 5년간 최대 10억 달러를 공동 투자해 AI 기반 신약 개발 연구소를 세운다고 12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제약 업계에서 이런 규모와 형태의 AI 공동혁신 연구소가 만들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nvidia lilly - 와우테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들어서는 이 연구소는 릴리의 생물학자, 화학자, 의학 전문가들과 엔비디아의 AI 연구자, 엔지니어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구조다.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 젠슨 황은 “AI는 모든 산업을 바꾸고 있지만,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과학자들이 단 하나의 분자도 만들기 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수십억 가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릴리 이사회 의장 겸 CEO 데이비드 릭스는 “150년 가까이 환자를 위한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해왔다”며 “우리가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와 과학적 지식을 엔비디아의 컴퓨팅 파워, 모델 구축 전문성과 결합하면 신약 개발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실험실과 AI를 연결하는 ‘연속 학습 시스템’이다. 릴리의 습식 실험실(wet lab)에서 실제 실험을 하면, 그 결과가 바로 엔비디아의 건식 실험실(dry lab) AI 모델에 입력된다. AI는 이 데이터를 학습해 다음 실험 방향을 제안하고, 과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실험을 설계한다. 이 과정이 24시간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실험과 AI 모델이 함께 진화한다. 과학자들은 전략적 의사결정에 집중하고, 반복적인 테스트 작업은 시스템이 기계 속도로 처리하는 구조다.

이 시스템의 중심에는 엔비디아의 BioNeMo 플랫폼이 있다. BioNeMo는 생물학과 화학 분야의 AI 모델을 만들고 훈련시키고 배포하는 통합 도구다. 쉽게 말하면 ChatGPT가 언어를 이해하듯이, BioNeMo는 DNA, RNA, 단백질, 화학 분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AI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제약회사들은 BioNeMo를 활용해 신약 후보 물질을 설계하거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거나,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을 만한 화합물을 찾아낼 수 있다.

엔비디아는 같은 날 BioNeMo 플랫폼의 대대적 확장도 함께 발표했다. 기존 기계학습 프레임워크에서 생물학과 신약 개발을 위한 완전한 오픈 개발 플랫폼으로 진화한 것이다. 새로 추가된 기능으로는 RNA 구조를 3차원으로 예측하는 RNAPro 모델, AI가 설계한 약물이 실제 실험실에서 합성 가능한지 판단하는 ReaSyn v2 모델, 독성을 예측하는 모델 등이 있다. 엔비디아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 킴벌리 파월은 “생물학과 신약 개발이 트랜스포머 모멘트를 맞이하고 있다”며 “BioNeMo는 실험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지능으로 바꿔서, 모든 실험이 다음 실험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연속 학습 사이클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nvidia bionemo - 와우테일

연구소는 릴리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약 업계 최대 규모 AI 슈퍼컴퓨터를 토대로 한다. 1,016개의 엔비디아 블랙웰 울트라 GPU로 구성된 이 ‘AI 팩토리’는 초당 9,000페타플롭스 이상의 AI 연산을 처리한다. 1992년 릴리가 보유했던 크레이 슈퍼컴퓨터 700만 대를 합친 것보다 강력하다. 여기에 차세대 엔비디아 베라 루빈(Vera Rubin) 아키텍처가 추가되면서 컴퓨팅 역량이 더욱 확대된다.

신약 개발을 넘어 양사는 임상시험, 제조, 상업화 전반에 AI를 적용한다. 특히 물리적 AI와 로보틱스를 활용한 제조 공정 혁신이 눈길을 끈다. 엔비디아 옴니버스(Omniverse) 라이브러리와 RTX PRO 서버로 생산 라인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면, 실제 생산 설비를 변경하기 전에 가상 환경에서 공정을 테스트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의약품의 생산 능력을 높이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는 데 활용된다.

양사는 바이오테크 생태계 지원도 함께 진행한다. 릴리의 TuneLab은 수십 년간 축적한 독점 데이터로 구축한 AI 신약 개발 모델을 다른 바이오테크 기업들에 공개하는 플랫폼이다. 향후 엔비디아 클라라(Clara) 오픈 파운데이션 모델이 TuneLab 워크플로에 통합된다. 엔비디아의 인셉션(Inception)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에 기술 멘토링과 소프트웨어, 컴퓨팅 자원을 제공한다. 새로운 공동혁신 랩은 양사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연구자들에게 전문 지식과 대규모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의 생명과학 분야 투자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AI 신약 개발 바이오테크 리커전 파마슈티컬스(Recursion Pharmaceuticals)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23페타바이트 이상의 생물학·화학 데이터를 BioNeMo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6월에는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와 덴마크 AI 슈퍼컴퓨터 게피온(Gefion)을 활용한 협력을 발표했다.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일루미나(Illumina), IQVIA 등 업계 리더들과도 AI 기반 의료 연구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공동혁신 랩은 올해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문을 연다. 현재 연간 3,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제약 업계 연구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지 업계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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