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항공기 설계로 에어버스·보잉에 도전장…’젯제로’, 1억7500만 달러 투자 유치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본사를 둔 젯제로(JetZero)가 혁신적인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 개발을 위해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투자사 비캐피털(B Capital)이 이번 라운드를 주도했으며, 유나이티드항공벤처스(United Airlines Ventures), RTX벤처스(RTX Ventures), 노스럽그루먼(Northrop Grumman), 3M벤처스(3M Ventures) 등 항공업계 핵심 기업들이 함께했다.

JetZero aircraft - 와우테일

이번 투자로 젯제로가 확보한 총 자금은 정부 지원금과 상업 계약을 포함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회사는 2027년 첫 비행을 앞둔 실물 크기 시연기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젯제로의 공동창업자 겸 CEO 톰 오리어리(Tom O’Leary)는 “이번 투자 라운드는 수요부터 공급, 실행까지 가치 사슬 전반의 핵심 파트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며 “비캐피털과 함께 효율적인 항공기로 승객 경험을 높이고, 미국의 첨단 제조 리더십을 강화하며, 항공 공급망을 든든하게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젯제로가 개발 중인 Z4 항공기는 전통적인 동체와 날개 구조 대신 양쪽을 하나로 융합한 블렌디드 윙 바디 설계를 택했다. 이 설계로 기존 상용 항공기보다 연료를 최대 50%나 아낄 수 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Z4는 250명을 태우고 5000해리를 날 수 있다. 뉴욕에서 스페인 팔마데마요르카까지 3400해리 구간을 예로 들면, 현재 이 노선을 다니는 쌍발 광동체 항공기보다 연료를 최대 45%까지 덜 쓴다는 계산이 나온다.

블렌디드 윙 바디 설계의 장점은 명확하다. 날개와 동체를 자연스럽게 이으면 항공기 전체가 양력을 만들어내 공기역학적 효율이 크게 올라간다. 젯제로는 시연기로 기존 튜브앤윙 방식보다 최소 30% 나은 공기역학 성능을 보여줄 계획이다. 엔진을 기체 윗면에 달아 소음을 줄였고, 최대 45,000피트 높이에서 순항할 수 있게 설계했다. NASA와 록히드마틴이 만든 초음속 시연기 X-59와 비슷한 접근이다.

젯제로는 미 공군, NASA, 연방항공청과 긴밀히 협력하며 든든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2023년 8월 미 공군은 젯제로에 2억3500만 달러 규모의 4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2027년 1분기까지 실물 크기 시연기를 날리는 게 목표다. 상업 서비스는 2030년대 초반에 시작할 계획이다.

젯제로는 2021년 오리어리와 항공우주 엔지니어 마크 페이지(Mark Page)가 함께 세웠다. 오리어리는 전기수직이착륙기 스타트업 베타테크놀로지스(BETA Technologies)에서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냈고, 테슬라 초기 임원으로 일하며 혁신적인 모빌리티 기업을 키운 경험이 있다.

JetZero logo - 와우테일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번 투자에 앞서 지난해 4월 젯제로에 투자하며 최대 200대 구매 의향을 밝혔다. 다만 조건부 계약이라 2027년 시연기 비행을 포함한 개발 마일스톤을 달성하고, 안전과 사업, 운영 요구사항을 충족해야 한다. 유나이티드항공벤처스의 앤드류 창(Andrew Chang) 대표는 “젯제로가 성공하면 더 넓고 편안한 객실을 갖추면서도 네트워크 전체의 연료 효율을 높여 메인라인 사업을 혁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젯제로의 도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항공기 제조 시장의 판도 때문이다. 지금은 에어버스와 보잉이 200석 이상 항공기 시장을 사실상 나눠 먹고 있다. 그런데 보잉은 안전 문제로 시장점유율이 65%에서 40% 밑으로 떨어졌고, 에어버스는 향후 10년간 8000대, 1조 달러어치 주문이 밀려 있어 신규 혁신보다는 밀린 물량 소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젯제로 같은 신생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를 만들겠다는 곳은 젯제로만이 아니다. 에어버스는 제로E(ZEROe) 프로그램으로 블렌디드 윙 바디 설계를 연구하고 있다. 2019년 6월엔 소형 시연기 MAVERIC를 처음 띄웠다. 에어버스는 이 설계로 2005년 대비 탄소배출을 최대 50% 줄이겠다는 목표다. 캐나다 봄바르디에(Bombardier)도 2022년부터 비즈니스 제트기용 에코제트(EcoJe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젯제로와 가장 직접 경쟁할 곳은 샌디에이고 기반 스타트업 나틸러스(Natilus)다. 나틸러스는 지난해 10월 200석 블렌디드 윙 바디 여객기 호라이즌(Horizon)을 공개했다. 호라이즌은 보잉 737, 에어버스 A320과 맞붙으면서 배출은 50%, 연료는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나틸러스는 2016년 설립 이후 화물기 코나(KONA)를 먼저 개발해 2028년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고, 지금까지 460대 선주문을 받았다. 다만 직원 15명 규모로 젯제로보다는 한발 늦은 출발이다.

NASA와 보잉은 2000년대부터 블렌디드 윙 바디 기술을 연구해왔다. 무인 시연기 X-48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약 120번 날면서 이 개념이 실제로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NASA는 보잉 747만 한 날개 폭의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가 기존 공항 터미널에서도 쓸 수 있고, 무게도 덜 나가고, 소음과 배출도 적고, 운영 비용까지 낮을 거라고 평가했다. 케임브리지대학과 MIT가 2000년대 중반 진행한 사일런트 항공기 이니셔티브(Silent Aircraft Initiative) 연구에서는 215석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가 기존 여객기보다 승객마일당 연료를 약 25% 덜 쓴다는 결과가 나왔다.

젯제로는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의 피드몬트 트라이어드 국제공항 근처에 47억 달러를 들여 첫 제조 공장을 짓는다. 이 공장에서 앞으로 10년간 일자리 14,500개가 생긴다는 전망이다. 오리어리 CEO는 지난해 7월 그린즈버러 비즈니스 리더들 앞에서 미 공군과의 계약에 잡힌 핵심 설계 검토 마일스톤을 일정대로, 예산 안에서 마쳤다고 밝혔다.

비캐피털은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사베린(Eduardo Saverin)과 라지 강굴리(Raj Ganguly)가 2015년 세운 글로벌 멀티스테이지 투자사다. 기술, 헬스케어, 기후 부문에 주력하며 6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굴린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손잡고 포트폴리오 기업에게 컨설팅도 지원한다. 비캐피털은 지난해 3월 7억5000만 달러짜리 오퍼튜니티스 펀드 II를 만들어 후기 단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RTX벤처스는 항공우주·방위산업 대기업 RTX의 벤처캐피털 부문이다. 노스럽그루먼은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같은 플라잉윙 군용기를 만든 회사다. 노스럽그루먼 자회사 스케일드컴포지트(Scaled Composites)가 젯제로 시연기 제작에 참여한다. 3M벤처스는 소재와 제조 전문성을 보탠다.

항공업계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획기적인 항공기 설계가 절실하다.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SAF)는 2024년 기준 전체 제트 연료의 0.3%밖에 안 돼서 목표 달성까지는 한참 멀었다. 젯제로의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는 기존 제트 연료로 돌아가지만,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를 섞거나 나중에 액체 수소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게 설계됐다.

젯제로가 성공할지는 2027년 시연기가 하늘을 날 때 판가름 날 전망이다. 회사는 탈레스(Thales)가 만든 플라이바이와이어 제어 시스템으로 블렌디드 윙 바디 항공기의 저속 피치 제어와 양력 문제를 풀 계획이다. 보잉 737 같은 기존 협동체 항공기 엔진을 쓰면서 개발 위험을 낮추고 인증도 수월하게 만들었다. 에어버스와 보잉의 과점 체제에 도전하는 첫 신생 항공기 제조사로 젯제로가 항공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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