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쿼이아캐피털, 엔쓰로픽에 투자 검토…VC 업계 금기 깨나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벤처캐피털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 엔쓰로픽(Anthropic)의의 대규모 투자 라운드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가 성사되면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결정이 된다.

Sequoia Capital Anthropic - 와우테일

세쿼이아캐피털은 이미 오픈AI(OpenAI)와 일론 머스크의 xAI에 투자한 상태다. 여기에 이들의 직접 경쟁사인 엔쓰로픽에까지 자금을 투입하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벤처캐피털은 같은 분야의 경쟁 기업에 동시 투자하는 걸 꺼려왔다. 단일 승자에 집중 투자하는 게 이해상충을 최소화하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엔쓰로픽은 250억 달러 이상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투자 후 기업가치는 35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9월 1830억 달러였던 기업가치의 거의 2배 수준이다.

이번 라운드는 지난 11월 발표된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의 투자 약속이 포함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대 50억 달러, 엔비디아는 최대 1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여기에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GIC)와 미국 투자사 코투(Coatue)가 각각 15억 달러씩 투자하며 라운드를 주도하고, 세쿼이아캐피털 등 다른 벤처캐피털들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는 당초 100억 달러 규모로 보도했으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종 규모가 25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샘 올트먼의 경고, 무색해지나

세쿼이아캐피털의 투자 검토는 오픈AI CEO 샘 올트먼(Sam Altman)의 과거 발언을 고려하면 더욱 눈길을 끈다. 올트먼은 작년 일론 머스크의 소송 관련 법정 증언에서 오픈AI의 기밀 정보에 접근하는 투자자들이 경쟁사에 비수동적 투자를 하면 정보 접근이 차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상 민감한 정보 오용을 막기 위한 “업계 표준” 보호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세쿼이아캐피털과 올트먼의 인연은 깊다. 올트먼이 스탠퍼드를 중퇴하고 Loopt를 창업했을 때 세쿼이아가 투자했고, 이후 그는 세쿼이아의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스트라이프(Stripe)를 소개했다. 스트라이프는 세쿼이아 포트폴리오 중 가장 성공적인 투자처 중 하나가 됐다.

세쿼이아의 새 공동 리더인 앨프리드 린(Alfred Lin)과 올트먼도 가까운 사이다. 린은 세쿼이아 행사에서 올트먼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고, 2023년 11월 올트먼이 오픈AI에서 잠시 해임됐을 때는 공개적으로 그의 “차기 세상을 바꿀 회사”를 기꺼이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xAI 투자는 머스크와의 관계 강화 차원

세쿼이아의 xAI 투자는 언뜻 오픈AI 경쟁사 지원의 시작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일론 머스크와의 광범위한 관계 강화 차원으로 해석한다. 세쿼이아는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해 X로 리브랜딩할 때 투자했고, 스페이스X(SpaceX), 보링컴퍼니(The Boring Company), 뉴럴링크(Neuralink)의 주요 투자자다. 세쿼이아의 전 리더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는 페이팔의 전신인 머스크의 X.com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반면 엔쓰로픽 투자는 세쿼이아의 과거 원칙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2020년 세쿼이아는 결제 스타트업 피닉스(Finix)가 스트라이프와 경쟁한다고 판단하자 투자를 철회했다. 2100만 달러 투자금을 포기하고 이사회 의석, 정보 접근권, 주식을 모두 반납했다. 피닉스의 3500만 달러 시리즈B 라운드를 주도한 지 불과 몇 달 만이었다. 세쿼이아 역사상 이해 충돌로 신규 투자처와 관계를 끊은 첫 사례였다.

급성장하는 엔쓰로픽, IPO도 준비 중

엔쓰로픽은 2021년 오픈AI의 전직 연구 임원들이 창업한 AI 안전성 연구 기업이다.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를 비롯한 창업팀은 오픈AI에서 연구 방향을 둘러싼 의견 차이로 퇴사했다. 엔쓰로픽은 AI 챗봇 ‘클로드(Claude)’ 시리즈를 개발하며 오픈AI, 구글과 경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의 투자는 엔쓰로픽이 300억 달러 규모의 애저 컴퓨팅 용량을 구매하는 전략적 파트너십과 연계돼 있다. 엔쓰로픽은 올해 IPO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엔쓰로픽은 올해 IPO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쿼이아캐피털에선 지난 가을 글로벌 책임자였던 루엘로프 보타(Roelof Botha)가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참석 며칠 만에 예상치 못한 투표로 물러났다. 린과 패트 그래디(Pat Grady)가 새 리더로 취임했는데, 흥미롭게도 그래디는 2020년 피닉스 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변화하는 AI 투자 판도

엔쓰로픽의 이번 라운드는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반영한다. 오픈AI는 2025년 10월 구주 거래에서 500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일론 머스크의 xAI는 2350억 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 AI 스타트업 시장에 전례 없는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AI 버블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세쿼이아의 전략 전환은 AI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익명 소식통은 세쿼이아가 궁극적으로 오픈AI와 엔쓰로픽이 AI 시장의 서로 다른 영역을 공략하며 다른 방향으로 갈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모바일 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로 평가받는 AI 혁명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벤처캐피털들은 과거의 관행을 뒤로 하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픈AI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미스트랄(Mistral)과 UAE의 G42에도 자금을 투입했다.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드 리서치(Fidelity Management & Research)는 xAI 라운드에 참여하면서도 AI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CoreWeave), AI 데이터 분석 기업 데이터브릭스(Databricks), 칩 스타트업 아스테라랩스(Astera Labs)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세쿼이아캐피털의 엔쓰로픽 투자 검토는 AI 산업의 경쟁 구도와 벤처캐피털의 투자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일 승자에 집중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잠재적 승자에 분산 투자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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