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러닝의 대모’ 페이페이 리의 월드랩스, AMD·엔비디아 등에서 10억 달러 투자유치


‘딥러닝의 대모’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Fei-Fei Li)가 이끄는 월드랩스(World Labs)가 18일 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유치를 발표했다. AMD, 엔비디아(NVIDIA), 오토데스크(Autodesk), 피델리티(Fidelity Management & Research Company), 에머슨 콜렉티브(Emerson Collective), 씨(Sea) 등이 이번 라운드에 참여했으며, 기존 투자사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도 재참여했다. 이 가운데 3D 설계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 오토데스크는 단독으로 2억 달러를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로 나섰다.

world labs funding - 와우테일

월드랩스는 2024년 10억 달러 가치평가로 2억 3000만 달러를 조달하며 스텔스 모드를 벗어났다. 이번 신규 투자로 누적 조달액은 12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회사는 이번 라운드의 가치평가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는 지난 1월 월드랩스가 약 50억 달러 가치평가를 목표로 투자자들과 논의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창업 후 약 1년 반 만에 가치평가 다섯 배 상승을 노리는 셈이다.

공간 지능, AI의 다음 프런티어

월드랩스가 개발하는 ‘공간 지능(spatial intelligence)’은 텍스트나 2D 이미지를 넘어 3차원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AI 기술이다. 언어 모델이 텍스트를 읽고 쓰는 능력을 AI에 부여했다면, 월드 모델은 AI에 공간을 보고 세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이 페이페이 리의 핵심 철학이다. 로봇이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 경로를 파악하거나, 영화 제작사가 복잡한 세트를 몇 분 만에 생성하거나, 건축가가 설계 도면을 즉시 3D 공간으로 변환하는 등 산업 전반에 걸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회사를 이끄는 페이페이 리는 컴퓨터 비전 분야의 살아있는 역사다. 2009년 스탠퍼드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1400만 개 이상의 이미지에 레이블을 붙인 대규모 시각 데이터베이스 이미지넷(ImageNet)을 구축했다. 2012년 이미지넷 대회에서 알렉스넷(AlexNet)이 기존 최고 성능을 압도하며 우승하자 딥러닝 열풍에 불이 붙었고, 오늘날 구글 이미지 검색부터 자율주행차 시각 인식까지 이미지넷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후 리는 구글 클라우드 AI·머신러닝 수석 과학자를 지냈고, 스탠퍼드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를 공동 설립했다. 공동창업자로는 컴퓨터 비전·3D 재구성 전문가인 벤 밀덴홀(Ben Mildenhall), 저스틴 존슨(Justin Johnson), 크리스토프 라스너(Christoph Lassner)가 함께한다.

첫 제품 ‘마블’, 텍스트 한 줄로 3D 세계 뚝딱

월드랩스의 첫 번째 상용 제품 마블(Marble)은 지난해 11월 정식 출시됐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3D 레이아웃 등 다양한 입력을 받아 영속적이고 탐색 가능한 고품질 3D 세계를 만들어낸다. 초기 사용자들 사이에서 “수주가 걸리던 작업이 몇 분으로 줄었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기존 3D 모델링 워크플로를 뒤흔들고 있다.

핵심 편집 도구 ‘치즐(Chisel)’은 벽, 방, 지형 같은 공간 구조를 러프 스케치로 잡고 텍스트 프롬프트로 시각적 스타일을 입히는 방식이다. HTML이 웹페이지의 뼈대를 담당하고 CSS가 외관을 꾸미듯, 공간 구조와 시각 표현을 분리해 다룬다는 게 특징이다. 생성된 세계는 가우시안 스플랫(Gaussian splat), 메시(mesh), 영상 포맷으로 내보낼 수 있어 언리얼 엔진, 유니티, 후디니, 블렌더 등 기존 3D 툴과 바로 연동된다. 애플 비전 프로와 메타 퀘스트3 VR 헤드셋도 지원한다. 올 1월에는 이 기능을 외부 개발자 앱에 직접 통합할 수 있는 월드 API(World API)도 공개했다.

world labs logo - 와우테일

오토데스크, 2억 달러 베팅으로 전략적 동반자로

이번 라운드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오토데스크의 2억 달러 투자다. 오토캐드(AutoCAD), 리빗(Revit), 마야(Maya) 등을 앞세워 건축·엔지니어링·제조·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반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오토데스크 입장에서, 공간 AI로의 확장은 사업 방향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양사는 단순한 투자 관계를 넘어 연구·모델 수준에서 기술을 함께 발전시키기로 했으며, 초기에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부터 협력을 시작할 계획이다.

오토데스크의 수석 과학자 다론 그린(Daron Green)은 테크크런치에 “고객이 월드랩스에서 공간 스케치를 만들고 오토데스크로 세부 설계를 다듬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며 “단순히 개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 개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두 기술의 결합이 가져올 변화를 설명했다. 오토데스크는 이미 주요 미디어 제작사들과 협력하며 캐릭터 애니메이션 모델을 훈련해왔는데, 이는 월드 모델 기술과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로봇공학으로 전선 확장…경쟁은 이미 본격화

월드랩스는 이번 투자금을 스토리텔링, 창작, 로봇공학, 과학적 발견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회사는 이번 투자 발표 직후부터 로봇 자율 이동에 핵심인 SLAM(동시 위치 추정 및 지도 생성) 기술 엔지니어와 3D 재구성 전문가 채용에 나서고 있어 로봇 시장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공간 지능 AI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뜨겁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지니(Genie) 시리즈로 상호작용 가능한 환경 생성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엔비디아는 로봇 훈련용 물리 시뮬레이션 플랫폼 코스모스(Cosmos)를 출시했다. 딥러닝의 대부 얀 르쿤(Yann LeCun)이 창업한 AMI 랩스(AMI Labs)도 35억 달러 가치평가를 목표로 투자 유치에 나서며 월드 모델 분야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런웨이(Runway) 역시 지난해 30억 달러 가치평가로 3억 800만 달러를 조달하며 ‘월드 시뮬레이터’ 개발을 선언했다.

이번 라운드에 AMD와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참여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하학, 물리학, 동역학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월드 모델 훈련에는 대규모 GPU 연산이 필수인 만큼, 이들의 투자는 월드 모델이 단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넘어 차세대 AI 인프라 수요를 이끌 기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미지넷으로 딥러닝 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페이페이 리가 이번에는 공간 지능으로 또 한 번 AI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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