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미국 국방부와 앤쓰로픽의 갈등은 계약 해지 통보와 오픈AI와의 계약 체결로 이어지고 있다.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해서 다시 작성했다.
AI 기업이 자사 기술의 군사 활용 방식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가. 미국 국방부(Pentagon)와 앤쓰로픽(Anthropic)의 정면충돌이 실리콘밸리 전체를 뒤흔들었다. ‘자율무기와 국내 대규모 감시에는 AI를 쓸 수 없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킨 앤쓰로픽은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면 퇴출 명령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그러나 경쟁사인 구글과 오픈AI의 직원 수백 명이 이례적인 공개 연대 서명으로 앤쓰로픽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갈등은 단순한 계약 분쟁을 훌쩍 넘어섰다.
두 가지 레드라인, 돌이킬 수 없는 충돌
사태의 발단은 앤쓰로픽이 미 국방부와 맺은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다. 앤쓰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는 미군 기밀 네트워크에 도입된 최초의 AI 시스템으로, 군 내부에서 폭넓게 활용돼왔다. 문제는 앤쓰로픽이 계약서에 명시한 두 가지 조건이었다. 클로드를 미국 시민 대량 감시에 쓰지 말 것, 그리고 인간의 개입 없이 타격 결정을 내리는 완전 자율무기에 활용하지 말 것. 이 두 조건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충돌로 이어졌다.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은 지난 화요일 앤쓰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CEO를 직접 만나 최후통첩을 내놨다. 금요일 오후 5시까지 클로드를 ‘모든 합법적 목적’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요구였다. 따르지 않으면 앤쓰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해 방산업체들과의 거래를 끊겠다고 했다. 여기에 한국전쟁 시대의 법인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 DPA)까지 발동해 강제 복종시키겠다는 경고도 뒤따랐다.
아모데이 CEO는 목요일 공개한 성명에서 굽히지 않았다. “두 가지 위협은 서로 모순된다. 하나는 우리를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다른 하나는 클로드를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본다”며 “어떤 위협도 우리의 입장을 바꾸지 못한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밤사이 내놓은 ‘타협안’에 대해서도 앤쓰로픽은 “대량 감시와 자율무기를 실질적으로 막는 진전이 전혀 없었다. 타협처럼 포장한 언어 뒤에 안전장치를 언제든 무력화할 수 있는 법률 문구를 숨겨놨다”고 일축했다.
경쟁사 직원들까지 나선 이례적 연대
이 대립이 업계 전체를 끌어들인 건 구글과 오픈AI 직원들이 함께 서명한 공개 서한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notdivided.org에 올라온 ‘우리는 분열되지 않는다(We Will Not Be Divided)’는 서한에는 구글 직원 300명 이상, 오픈AI 직원 60명 이상이 이름을 올렸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AI 기업들의 직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공동 행동에 나선 건 업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한은 국방부의 전략을 정조준했다. “국방부는 앤쓰로픽이 거부한 것을 구글과 오픈AI가 받아들이도록 협상하고 있다. 상대가 먼저 양보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각 회사를 분열시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 전략은 우리가 서로의 입장을 모를 때만 통한다”는 내용이었다. 서명자들은 구글과 오픈AI 경영진에게 “차이를 내려놓고 함께 서서” 앤쓰로픽이 지켜온 원칙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했다. 주최 측은 어떤 AI 기업이나 정치 단체와도 무관하다고 밝혔으며, 서명자 신원은 검증되고 익명 참여도 가능하다.
두 회사 CEO들의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오픈AI(OpenAI)의 샘 알트만(Sam Altman) CEO는 금요일 CNBC 인터뷰에서 “국방부가 AI 기업들에 DPA를 위협하는 건 개인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오픈AI 대변인도 자율무기와 대량 감시에 관해 앤쓰로픽과 같은 레드라인을 공유한다고 확인했다. 구글딥마인드(Google DeepMind)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수석 과학자 제프 딘(Jeff Dean)은 개인 X 계정에서 “대량 감시는 수정헌법 4조를 위반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게시했다.
국방부 측에서도 날선 반응이 나왔다. 에밀 마이클(Emil Michael) 연구공학 차관은 X에서 “아모데이는 거짓말쟁이에 신 콤플렉스를 지녔다. 그는 미군을 개인적으로 통제하려 할 뿐”이라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반면 앤쓰로픽 내부에서는 자사 입장을 공개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렬 팀 소속 트렌튼 브리켄(Trenton Bricken)은 “앤쓰로픽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도 수차례 가치를 지켜온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번에는 모두가 볼 수 있는 형태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고 X에 적었다.
트럼프의 결정타, 그리고 파장
결정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날렸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Truth Social) 게시물에서 앤쓰로픽을 향해 “좌파 엉터리들(Leftwing nut jobs)”이라고 규정하고, 국방부를 상대로 이용약관을 강요하려 한 “처참한 실수”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모든 연방기관은 앤쓰로픽의 기술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우리는 그것이 필요 없고, 원하지도 않으며,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방부처럼 앤쓰로픽 제품을 이미 사용 중인 기관에는 6개월의 단계적 전환 기간이 주어졌다.
파장은 적지 않다. 2억 달러 계약 손실 자체는 3,800억 달러로 평가받는 앤쓰로픽에 치명적이지 않지만, ‘공급망 위험’ 낙인이 더 무섭다. 미군과 거래하는 기업이라면 앤쓰로픽과의 연결고리를 모두 입증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악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의 민감한 업무에 클로드를 활용해온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Palantir)도 경쟁사와 새 계약을 맺어야 할 처지가 됐다. 대형 기업 고객 상당수가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있어 앤쓰로픽의 기업 고객 기반 전체에 파급 효과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체재 논의도 분주해졌다.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xAI가 자사 모델 그록(Grok)을 기밀 환경에서 쓸 수 있도록 군과 계약을 맺었지만, 내부에서조차 “클로드를 일대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Jensen Huang) CEO는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의 끝은 아니다. 국방부가 활용할 수 있는 다른 AI 기업들이 있다”고 말했다.
앤쓰로픽, 소송으로 맞서다
앤쓰로픽은 퇴출 명령이 내려진 당일 밤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 “공급망 위험 지정은 법적으로 근거가 없으며 미국 기업에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며 법원에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앤쓰로픽이 근거로 제시한 연방법(10 USC 3252)에 따르면, 이 지정은 국방부 계약 관련 사용에만 효력이 있으며 기업 API 이용이나 클로드닷AI 구독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헤그세스 장관이 “국방부와 거래하는 모든 계약업체는 앤쓰로픽과의 상업적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앤쓰로픽은 “장관에게 그런 법적 권한이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같은 원칙, 다른 결과—오픈AI는 왜 됐나
사태의 아이러니는 앤쓰로픽이 퇴출된 바로 그날 밤에 드러났다. 오픈AI가 앤쓰로픽이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것과 사실상 동일한 조건으로 국방부 기밀 네트워크 계약을 전격 체결한 것이다. 알트만 CEO는 “대량 감시 금지와 자율무기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책임 원칙, 이 두 가지가 우리의 핵심 안전 원칙”이라며 “국방부는 이 원칙에 동의하고 법과 정책에 반영했으며 계약서에도 명시했다”고 밝혔다. 오픈AI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위험 자동화 의사결정 금지’라는 세 번째 레드라인까지 계약에 포함시켰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같은 원칙을 지키다 퇴출된 앤쓰로픽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다.
그렇다면 왜 국방부는 앤쓰로픽은 버리고 오픈AI는 품었을까. 복수의 언론 분석을 종합하면, 이 갈등은 처음부터 AI 안전 정책의 싸움이 아니라 정치적·개인적 신뢰의 문제였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계약서 문구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뉴욕타임스와 UPI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국방부가 요구한 “모든 합법적 목적에 사용 가능하다(for all lawful purposes)”는 문구를 계약서에 포함하면서, 동시에 대량 감시·자율무기 금지 원칙도 명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술적으로는 같은 결과이지만, 국방부 입장에서는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형식적 주도권을 인정받은 셈이다. 반면 앤쓰로픽은 이 “모든 합법적 목적” 문구 자체를 거부했다. 포춘은 “내용은 같았지만, 누가 갑인지가 달랐다”고 분석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념 딱지가 붙었다. 악시오스가 인용한 펜타곤 고위 관계자의 말이 핵심을 찌른다. “문제는 다리오야. 그는 이념적이야.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아모데이 CEO가 1월 발표한 에세이에서 “정부가 AI를 통해 자국민을 감시하거나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공개 주장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포춘이 입수한 오픈AI 전직원 회의 발언에서도 “앤쓰로픽과의 관계가 무너진 건 아모데이가 국방부 리더십의 심기를 건드린 블로그 포스트들 때문”이라는 내부 언급이 나왔다. 반면 알트만은 트럼프 취임식 참석,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 협력 공언 등 행정부와 정치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결국 앤쓰로픽과 오픈AI의 접근 방식도 달랐다. 앤쓰로픽은 “정부를 신뢰할 수 없기에 계약서에 제한을 명시해야 한다”는 불신 기반의 원칙론을 고수했고, 오픈AI는 “정부를 신뢰하되 기술적 안전장치로 보완한다”는 실용론을 택했다. CNBC 분석대로 “왜 국방부가 오픈AI에게는 동의하고 앤쓰로픽에게는 하지 않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분석가들은 이번 사태를 AI 안전이라는 기술적 논쟁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앤쓰로픽을 ‘이념적 적’으로 규정한 정치적 결정으로 해석한다. 하버드 법대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는 앤쓰로픽의 성명을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원칙과 무결성의 행동”이라고 평했다.
퇴출이 부른 역설—클로드, 앱스토어 1위 등극
뜻밖의 반전도 일어났다. 트럼프의 퇴출 명령이 앤쓰로픽에 최고의 홍보가 됐다는 점이다. 애플 앱스토어 미국 무료 앱 순위에서 클로드는 사태 이후 급등해 토요일 기준 1위를 기록했다.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Sensor Tower)에 따르면 1월 말만 해도 131위에 머물던 클로드가 2월 내내 20위권에서 등락하다, 수요일 6위→목요일 4위→토요일 2위로 수직 상승했다. 앤쓰로픽 대변인은 CNBC에 “무료 사용자 수가 1월 대비 60% 이상 늘었고, 일일 신규 가입자는 11월 이후 세 배로 증가해 이번 주 매일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유료 구독자 수도 올 들어 두 배 이상 됐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충돌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같은 원칙을 내걸었는데 한 회사는 퇴출되고 다른 회사는 계약을 땄다. AI 기술의 군사 활용 한계를 설정하는 게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신뢰와 줄서기의 문제라면, 그 결과가 옳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앤쓰로픽은 법정에서, 오픈AI는 협상 테이블에서, 그리고 수백만 명의 일반 사용자들은 클로드를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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