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AI 레고라, 5.5억 달러 시리즈D 투자유치…기업가치 55억 달러로 급등


스웨덴 출신 법률 AI 스타트업 레고라(Legora)가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레고라는 10일(현지 시각) 액셀(Accel) 주도로 55억 달러(약 5조 5000억 원) 밸류에이션에서 5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시리즈C 당시 18억 달러였던 기업가치가 불과 5개월 만에 3배 이상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legora team - 와우테일

법률 업계는 전통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보수적인 산업으로 꼽혀왔다. 방대한 계약서 검토, 판례 조사, 문서 초안 작성 등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가 큰 업무가 많지만, 정확성과 기밀 유지에 대한 기준이 높아 새로운 기술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레고라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단순히 AI 도구를 제공하는 것에서 나아가, 고객 로펌 및 사내 법무팀과 밀착해 AI를 실제 업무 흐름에 깊숙이 녹여내는 ‘협업형 플랫폼’을 지향한다.

레고라는 202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맥스 유네스트란드(Max Junestrand), 시게 라보르(Sigge Labor), 아우구스트 에르세우스(August Erséus)가 공동 창업했다. CEO를 맡은 맥스 유네스트란드는 스웨덴 명문 왕립공과대학교(KTH)와 스톡홀름경제대학교(SSE)에서 머신러닝과 경영학 학위를 동시에 취득한 뒤, 맥킨지, 벤처캐피털, YC 스타트업 등을 거쳤다. e스포츠 선수 출신이기도 한 그는 “법률 배경 없이 세계 최대 로펌에 직접 찾아가 비전을 설명했다”고 창업 초기를 회고한다. 이 과감한 도전은 통했다. 북유럽 최대 로펌과의 협업으로 제품을 검증한 레고라는 YC 2024년 겨울 배치에 합류하며 글로벌 무대로 도약했고, 현재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번 투자에는 기존 투자사인 벤치마크(Benchmark),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 아이코닉(ICONIQ), 레드포인트 벤처스(Redpoint Ventures),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가 모두 재참여했다. 신규 투자사로는 알케온 캐피털(Alkeon Capital), 베인 캐피털(Bain Capital), 퍼스트마크 캐피털(Firstmark Capital), 멘로 벤처스(Menlo Ventures), 샌즈 캐피털(Sands Capital), 스타우드 캐피털(Starwood Capital), 그리고 세일즈포스 벤처스(Salesforce Ventures)가 합류했다.

액셀 파트너 아룬 매튜(Arun Mathew)는 “레고라 팀은 법률 업계를 위한 AI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다른 서비스 업종에서처럼 법률 분야에서도 엔드투엔드 워크플로가 에이전트에 의해 운영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그 중심에 레고라가 있다”고 밝혔다.

레고라는 창업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투자를 유치해왔다. 2024년 5월 벤치마크 주도 시드 투자(1050만 달러)로 출발한 뒤, 같은 해 7월 시리즈A(2500만 달러, 675억 달러 밸류)를 마무리했다. 2025년에는 5월 아이코닉·제너럴 카탈리스트 주도 시리즈B 8000만 달러(6억 7500만 달러 밸류)에 이어, 10월 베세머 주도 시리즈C 1억 5000만 달러(18억 달러 밸류)를 유치했다. 이번 시리즈D(5억 5000만 달러)까지 합산하면 누적 조달액은 약 8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성장 지표도 가파르다. 지난 1년간 직원 수는 40명에서 400명으로 10배 늘었고, 고객사는 800여 곳으로 확대됐다. 플랫폼은 현재 50개 이상 시장에서 수만 명의 변호사가 매일 사용하고 있으며, 버드앤버드(Bird & Bird), 클리어리 고틀리브(Cleary Gottlieb), 화이트앤케이스(White & Case), 링클레이터스(Linklaters), 딜로이트(Deloitte), 덴튼스(Dentons), 굿윈(Goodwin) 등이 주요 고객이다.

이번 투자 발표는 레고라의 미국 진출 1주년과도 맞물린다. 레고라는 2025년 3월 뉴욕에 첫 미국 사무소를 열었고, 현재 뉴욕과 덴버에서 운영 중인 거점 외에 휴스턴과 시카고에 신규 오피스를 추가로 개설할 계획이다. 2026년 말까지 미국 내 직원 수를 300명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유네스트란드는 “미국에서의 AI 도입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주요 로펌과 사내 법무팀이 실험 단계에서 벗어나 AI를 핵심 업무에 본격적으로 통합하는 단계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리걸테크 AI 시장은 지금 역사상 가장 뜨거운 투자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레고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미국 하비(Harvey)다. 지난해 12월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주도로 80억 달러 밸류에서 1억 6000만 달러를 유치한 하비는 현재 세쿼이아(Sequoia Capital)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 주도로 110억 달러 밸류의 2억 달러 규모 추가 투자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딜룸(Dealroom) 데이터에 따르면 레고라와 하비의 매출 성장 궤적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하비가 유럽을 공략하는 동안 레고라는 정반대로 미국 시장을 파고드는 구도다.

스타트업들만의 경쟁이 아니다. 캐나다 밴쿠버 기반 클리오(Clio)는 법률 사무소용 업무 관리 플랫폼으로 2024년 9월 9억 달러 시리즈F에 이어 2025년 11월 5억 달러 시리즈G를 추가로 마감하며 기업가치 50억 달러를 달성했다. 솔트레이크시티 기반 파일바인(Filevine)도 2025년 9월 인사이트 파트너스(Insight Partners)·액셀(Accel) 주도로 4억 달러를 유치했다. 6000여 개 고객사와 10만 명의 법률 전문가가 사용하는 법률 업무 관리 플랫폼으로 AI 매출이 전년 대비 130% 성장했다. 개인상해 소송 전문 AI 스타트업 이븐업(EvenUp)은 2025년 10월 1억 5000만 달러 시리즈E를 유치하며 2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기존 법률 정보 플랫폼들의 대응도 거세다.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는 2023년 케이스텍스트(Casetext)를 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하며 AI 전환을 가속화했고, 렉시스넥시스(LexisNexis)와 볼터스 클루버(Wolters Kluwer) 역시 자체 AI 기능을 기존 플랫폼에 빠르게 통합하고 있다.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법률 AI 소프트웨어 시장은 2025년 31억 달러에서 2030년 108억 달러로 연평균 28.3% 성장할 전망이다.

레고라는 주력 대형 언어 모델(LLM)로 클로드(Claude)를 사용하고 있어 앤쓰로픽(Anthropic)이 지난달 공개한 법률 전용 클로드 플러그인이 직접적인 경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네스트란드는 “클로드가 ‘개인 주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놀랍지만, 우리가 해결하는 문제와는 다르다”며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건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되는 솔루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플랫폼이 모델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모델이 좋아질수록 우리에게도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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