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 파운데이션 모델 블랭크바이오, 클로드로 ‘파괴적 가설’ 캔다


과학자가 새로운 가설을 떠올리는 흔한 방식 중 하나는 ‘같은 개념을 다른 맥락에서 알아보는 것’이다. 어떤 약의 효과가 무관한 질병에서 다시 나타나거나, 배아를 만드는 신호 경로가 암에서 또 등장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이 논문을 사람보다 빨리 읽어 서로 다른 맥락의 개념을 잇는 데 쓰인다. 하지만 텍스트는 원본 데이터를 뭉갠 ‘손실 있는 표현’일 뿐이고, 과학 데이터의 상당수는 아예 논문 텍스트로 옮겨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AI가 점진적(incremental)이 아니라 ‘파괴적(disruptive)’인 연구 방향을 제시하게 만드는 일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RNA 파운데이션 모델 블랭크바이오, 클로드로 '파괴적 가설' 캔다

이 문제를 데이터로 푸는 곳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AI 바이오 스타트업 블랭크바이오(Blank Bio)다. 핵심은 대량 RNA 시퀀싱(bulk RNA-seq) 데이터를 학습한 파운데이션 모델 ‘라돈(Ladon)’이다. 20년간 쌓인 세포주·동물모델·인체 조직의 공개 전사체(transcriptome) 샘플 수백만 개를 학습해, 비슷한 생물학적 상태끼리 가까이 놓이는 ‘지도(임베딩 공간)’를 만든다. 연구자는 자기 실험 데이터를 이 지도에 던져 넣기만 하면, 맥락(조직·종·실험 배치)이 전혀 달라도 같은 생물학적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다른 실험을 곧바로 찾아낼 수 있다. 유전자 목록→큐레이션된 유전자세트→키워드 검색으로 이어지던 기존의 ‘손실 많은 여러 단계’를 건너뛰는 셈이다.

블랭크바이오는 이 라돈을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에 임베딩 검색 MCP로 연결해, AI 에이전트가 직접 가설을 뽑아내게 한다. 실제 사례로, 분자 진단·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 근육통성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ME/CFS) 환자의 근육 RNA 데이터를 클로드에 넣자, 잠복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세포 노화(cellular senescence)’라는, 도메인 전문가가 독립적으로 “파볼 만하다”고 평가한 미탐색 기전에 도달했다. 텍스트로는 이어질 수 없던 서로 다른 맥락의 실험들을 ‘데이터 다리’로 연결해 얻은 결과다.

블랭크바이오는 조너선 슈(Jonathan Hsu) CEO가 공동 창업했다. 그는 AI 신약개발 기업 밸런스디스커버리(Valence Discovery·리커전에 인수)의 초기 멤버 출신이다. 공동창업자 필립 프라드킨(Philip Fradkin)과 이안 슈(Ruian Shi)는 토론토대 박사과정에서 RNA 파운데이션 모델 ‘오르트루스(Orthrus)’를 개발한 연구자들로, 이 연구가 회사의 기술적 뿌리가 됐다.

핵심 모델 라돈의 기술 작업과 이번 기술 블로그를 맡은 인물은 한국인 과학자 변건우(Gun Woo Byeon)다. 그는 스탠퍼드대 유전학과에서 mRNA의 번역 조절(5’UTR)과 RNA 기반 치료제를 연구해온 RNA 전문가로, 블랭크바이오의 전사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이끌고 있다.

블랭크바이오는 지난 5월 초과청약된 시드 라운드에서 720만 달러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시그널파이어(SignalFire), 디파인벤처스(Define Ventures), 레오니스캐피탈(Leonis Capital), 노바스레숄드(Nova Threshold), 리플벤처스(Ripple Ventures) 등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롱리드 시퀀싱 기업 팩바이오(PacBio)와 정밀 종양학(precision oncology)용 RNA 파운데이션 모델을 함께 발전시키는 전략적 협력도 맺었다.

‘생물학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 AI 신약의 새 전장

단백질·유전체·전사체 같은 생물학 데이터를 통째로 학습하는 ‘생물학 파운데이션 모델’은 AI 신약개발의 새로운 전장이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아이소모픽랩스(Isomorphic Labs)는 알파폴드 기반 신약 설계로 21억 달러를 유치했고, 타깃 정보만으로 항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차이디스커버리(Chai Discovery)도 4억 달러를 유치했다. 국내에서는 공간전사체 기반 신약개발 기업 포트래이(Portrai)가 145억 원 시리즈B를 유치하는 등 전사체 분야도 뜨겁다. 대부분이 단백질 구조나 분자 설계에 집중하는 반면, 블랭크바이오는 환자의 질병 상태를 그대로 담는 전사체 데이터를 파운데이션 모델로 만들어, AI 에이전트가 임상시험·진단 가설을 발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AI 바이오테크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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