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나 바이오메디신스, ‘분자 접착제’ 항암제 개발에 1.2억 달러 시리즈B 투자유치


분자 접착제 분해제(molecular glue degrader) 기반 항암제를 개발하는 트리아나 바이오메디신스(Triana Biomedicines)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발표했다. 이번 라운드는 초과 청약됐으며, 아센타 캐피탈(Ascenta Capital)과 베서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가 공동으로 리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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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 바이오벤처스(YK Bioventures), 리제너론 벤처스(Regeneron Ventures), 인버스(Invus), 핀츨리 헬스케어 벤처스(Finchley Healthcare Ventures)가 신규 투자자로 참여했고, RA 캐피탈 매니지먼트(RA Capital Management), 아틀라스 벤처(Atlas Venture),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Lightspeed Venture Partners), 화이자 벤처스(Pfizer Ventures), 서베이어 캐피탈(Surveyor Capital)이 후속 투자에 나섰다.

기존 약물의 한계: 90%의 단백질은 ‘공략 불가’

전통적인 저분자 약물은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active site)’에 결합해 기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인체 단백질의 85~90%가 이런 결합 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결합할 곳이 없으니 약물이 붙을 수 없고, 이런 단백질은 ‘약물로 공략할 수 없는(undruggable)’ 표적으로 분류돼 왔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표적단백질분해(TPD, Targeted Protein Degradation)다. 단백질 기능을 억제하는 대신, 아예 세포 내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활용해 단백질 자체를 분해시키는 전략이다. 세포는 원래 손상되거나 불필요한 단백질을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을 통해 제거하는데, TPD 기술은 이 자연 시스템을 ‘납치’해 질병 유발 단백질을 강제로 분해하도록 유도한다.

프로탁(PROTAC)의 등장과 한계

TPD 분야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기술은 프로탁(PROTAC, 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이다. 프로탁은 양쪽 끝이 다른 역할을 하는 ‘아령’ 모양의 분자다. 한쪽 끝은 분해하려는 표적 단백질에 붙고, 다른 쪽 끝은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세포의 분해 효소)에 붙는다. 가운데 연결고리(링커)가 두 단백질을 가까이 끌어당기면, E3 리가아제가 표적 단백질에 ‘분해 태그(유비퀴틴)’를 붙이고, 태그가 붙은 단백질은 프로테아좀이라는 세포 내 분쇄기에서 파괴된다.

프로탁은 기존 약물이 공략하지 못하던 단백질까지 분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아르비나스(Arvinas)와 화이자(Pfizer)가 공동 개발 중인 유방암 치료제 ARV-471이 2026년 승인을 앞두고 있어, 최초의 프로탁 신약 탄생이 임박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프로탁에도 한계가 있다. 첫째, 분자 크기가 크다. 양쪽 끝과 연결고리까지 합치면 분자량이 1,000달톤(Da)을 넘는 경우가 많아, ‘좋은 약물’의 조건으로 알려진 리핀스키 법칙(분자량 500 이하 권장)을 벗어난다. 분자가 크면 세포막 투과율이 떨어지고 경구 복용 시 흡수율이 낮아진다. 뇌혈관장벽(BBB) 통과도 어려워 뇌질환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표적 단백질에도 여전히 ‘결합 부위’가 필요하다. 프로탁의 한쪽 끝이 표적 단백질에 붙어야 하므로, 결합할 곳이 전혀 없는 단백질은 여전히 공략할 수 없다. 셋째, ‘훅 효과(hook effect)’라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프로탁 농도가 너무 높으면 양쪽 끝이 각각 따로 단백질에 붙어버려 오히려 분해 효율이 떨어진다.

분자 접착제: 더 작고, 더 넓은 표적을 공략

분자 접착제는 프로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차세대 기술이다. 가장 큰 차이는 구조의 단순함이다. 프로탁이 ‘양끝이 다른 아령’이라면, 분자 접착제는 ‘단일 분자’에 가깝다. 연결고리 없이 E3 리가아제 표면에 붙어 그 형태를 살짝 바꾸고, 이렇게 바뀐 표면이 표적 단백질과 새로운 접촉면을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접착제가 두 물체 사이에 끼어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분자 접착제의 분자량은 대부분 500달톤 이하로 프로탁의 절반 수준이다. 덕분에 세포막 투과율이 높고, 경구 복용 시 흡수가 잘 되며, 뇌혈관장벽도 통과할 수 있어 뇌종양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에도 적용 가능성이 열린다.

더 중요한 장점은 표적 단백질에 결합 부위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다. 분자 접착제는 E3 리가아제와 표적 단백질이 만나면서 ‘새로 형성되는’ 접촉면을 활용한다. 각각의 단백질 표면에는 약물이 붙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더라도, 두 단백질이 만나면서 생기는 ‘틈새’에 분자 접착제가 끼어들어 결합을 안정화시킨다. 이 원리 덕분에 기존에 공략 불가능했던 단백질까지 분해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다만 분자 접착제도 과제가 있다. 프로탁은 양쪽 끝을 각각 설계해 조립하면 되지만, 분자 접착제는 두 단백질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 분자로 유도해야 해서 설계 난이도가 높다. 실제로 지금까지 발견된 분자 접착제 대부분은 우연히 발견됐다. 대표적인 예가 탈리도마이드와 그 유도체(레날리도마이드, 포말리도마이드)인데, 이들은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먼저 승인된 뒤에야 분자 접착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트리아나의 차별점: ‘우연’에서 ‘설계’로

트리아나는 이 ‘우연의 발견’을 ‘체계적 설계’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회사의 핵심 기술은 ‘타깃 우선(target-first)’ 접근법이다. 인체에는 600종 이상의 E3 리가아제가 존재하는데, 트리아나는 AI와 구조생물학 데이터를 활용해 특정 질병 표적에 가장 잘 맞는 E3 리가아제를 먼저 선정한다. 

그 다음 맞춤형 화합물 라이브러리에서 두 단백질을 연결할 최적의 분자 접착제를 탐색한다. 대부분의 경쟁사가 이미 알려진 분자 접착제(탈리도마이드 유도체 등)를 변형하는 방식을 쓰는 것과 달리, 트리아나는 표적부터 역으로 접근해 새로운 화합물을 발굴한다.

ALK 폐암: 내성 문제의 새로운 해법

이번 투자금은 선도 파이프라인 TRI-611의 임상 개념증명(proof of concept) 단계 진입에 집중 투입된다. TRI-611은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 중인 분자 접착제다.

ALK(역형성 림프종 키나아제) 유전자 재배열은 전체 비소세포폐암의 3~5%에서 발견되며, 비흡연자와 젊은 환자층에서 비율이 높다. 현재 ALK 양성 폐암에는 크리조티닙(Xalkori), 알렉티닙(Alecensa), 로라티닙(Lorbrena) 등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TKI)가 사용된다. 이들 약물로 환자 예후가 크게 개선됐지만, 대부분 1~2년 내 내성이 발생한다. 암세포가 ALK 단백질의 결합 부위를 변형시켜 약물이 붙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자 접착제는 단백질의 결합 부위가 아니라 단백질 자체를 분해하므로, 결합 부위 변형으로 인한 내성을 우회할 수 있다. 트리아나는 TRI-611이 ALK 변이체를 선택적으로 분해해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도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패트릭 트로예르(Patrick Trojer) CEO는 “시리즈B 마감은 난치성 암 치료제 혁신이라는 미션의 중요한 이정표”라며 “폐암 환자를 위한 TRI-611의 임상 개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컨스텔레이션 파마슈티컬스(Constellation Pharmaceuticals) 공동창업자 겸 CSO 출신으로, 해당 회사가 2021년 17억 달러에 인수되기까지 핵심 파이프라인 개발을 이끌었다.

베서머의 앤드루 헤딘(Andrew Hedin) 파트너는 “분자 접착제는 표적단백질분해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영역”이라며 “기존 치료제의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트리아나의 ALK 폐암 프로그램은 환자 치료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아센타의 로런스 김(Lorence Kim) 공동창업자 겸 매니징 파트너는 “트리아나의 타깃 우선 접근법과 TRI-611의 약리학적 프로파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더나(Moderna) CFO 출신인 그는 이번 라운드를 계기로 앤드루 헤딘 파트너와 함께 트리아나 이사회에 합류한다.

빅파마가 주목하는 분자 접착제 시장

트리아나는 지난해 10월 화이자와 4,900만 달러 선급금을 포함해 최대 15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협력을 체결한 바 있다. 종양학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 영역에서 분자 접착제 신약을 공동 발굴하는 내용이다.

분자 접착제 시장에는 글로벌 빅파마의 투자가 몰리고 있다. 노바티스(Novartis) 몬테로사 테라퓨틱스(Monte Rosa Therapeutics)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MRT-6160에 대해 선급금 1억 5,000만 달러, 마일스톤 포함 최대 21억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다케다(Takeda)는 중국 데그론 테라퓨틱스(Degron Therapeutics)와 종양학·신경과학·염증 분야에서 최대 12억 달러 규모의 협력을 진행 중이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네오모프(Neomorph)와 심혈관대사질환·희귀질환 분야에서 최대 14억 6,000만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시장은 2024년 약 21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2% 이상 성장해 44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트리아나는 2022년 1억 1,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로 출범했다. 이번 시리즈B까지 누적 투자유치액은 2억 3,000만 달러다. 회사는 2026년 두 번째 신약 후보물질 선정과 추가 파이프라인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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