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유통사의 디지털화를 돕는 페퍼(Pepper), 5,000만 달러 투자유치


북미 중소 식자재 유통사를 위한 올인원 SaaS 플랫폼 페퍼(Pepper)가 시리즈C에서 5,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이번 라운드는 리드 엣지 캐피탈(Lead Edge Capital)이 주도했으며, 아이코닉(ICONIQ), 인덱스 벤처스(Index Ventures), 그레이록(Greylock), 하모니 파트너스(Harmony Partners), 인터플레이(Interplay) 등 기존 투자자들도 함께 참여했다.

pepper logo - 와우테일

현재 페퍼와 계약한 식자재 유통사는 500곳을 넘어섰고, 이들의 연간 총 거래액(GMV)은 약 300억 달러에 달한다. 전국 10만 개 이상의 외식업체가 페퍼 플랫폼을 통해 식자재를 주문하고 있다. 페퍼를 도입한 유통사들의 매출 성장률은 지난해 대형 식자재 유통사인 시스코(Sysco), US 푸드(US Foods), PFG 대비 80% 이상 높게 나타났다.

북미에는 약 2만 5,000개의 중소 식자재 유통사가 있으며, 이들이 전체 식자재 소비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시스코 같은 대형 유통사 몫이지만, 대형사들은 주로 프랜차이즈 체인을 상대한다. 동네 레스토랑이나 소규모 외식업소가 다양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건 중소 유통사 덕분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팩스와 전화, 수기 장부로 일을 처리해왔다는 것이다. 마진은 빠듯한데 디지털화는 더딘 구조가 오래 이어졌다.

페퍼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 2019년 출발했다. 공동창업자 겸 CEO인 바우이 청(Bowie Cheung)은 우버이츠(Uber Eats) 초대 총괄 매니저 출신으로, 우버 미국·캐나다 운영을 총괄한 뒤 창업에 뛰어들었다.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 컨설턴트 경력도 있는 그는 “기술이 대형 유통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소 유통사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플랫폼을 설계했다.

페퍼 플랫폼은 주문 접수부터 영업, 마케팅, 결제, 매출채권 관리까지 식자재 유통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특히 최근 선보인 AI 기반 에이전틱(agentic) 제품군이 주목받고 있다. 오더 에이전트(Order Agent)는 고객이 남긴 음성 메시지나 난잡한 이메일 속 주문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처리한다. 그동안 영업 담당자가 일일이 해야 했던 수작업이다. 세일즈 허브(Sales Hub)는 고객 관리와 영업 동선을 최적화하고, 파이낸스 허브(Finance Hub)는 청구서 발송과 미수금 관리를 자동화한다. 시리즈B 이후 고객사와 매출이 모두 세 배 이상 늘었다는 점이 이번 투자를 이끌어낸 핵심 근거였다.

이번 라운드를 주도한 리드 엣지 캐피탈은 운용 자산 50억 달러 규모의 성장 투자 전문사다. 토스트(Toast), 프로코어(Procore) 등 버티컬 SaaS 강자에 일찍 베팅한 이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리드 엣지의 아론 다르(Aaron Darr) 프린시펄은 “중소 식자재 유통사들은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이루고 있지만 서로 단절된 채 운영되고 있다”며 “페퍼가 이 시장을 이어주는 공유 기술 인프라”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페퍼는 이번 자금을 AI 에이전틱 솔루션 고도화, 핵심 운영 기능 확장, ERP 연동 인프라 강화, 영업 및 고객 성공 조직 확충에 투입할 계획이다.

국내외 식자재 유통 SaaS 시장, 빠르게 달아오른다

페퍼가 공략하는 시장은 북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식자재 B2B 유통의 디지털화는 뜨거운 화두다. 연간 5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식자재 유통시장에서 유통사 전용 수발주 SaaS로 출발한 마켓봄(Marketbom)은 페퍼와 닮은 꼴이다. 식당들이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주문을 넣던 방식을 앱 기반 주문·결제 시스템으로 바꾸고, 납품업체의 미수금 문제와 오발주 문제를 디지털로 해소한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거의 같다. 다만 마켓봄을 운영하는 마켓보로는 여기에 더해 외식업자용 오픈마켓 ‘식봄’까지 직접 운영하며 미국의 그럽마켓(GrubMarket)처럼 유통 플랫폼 사업자로도 확장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럽마켓은 페퍼의 가장 강력한 글로벌 경쟁자다. 미국 최대 민간 식품 테크 기업인 그럽마켓은 지난 2월 초 시리즈H에서 5,000만 달러를 추가로 조달하며 기업 가치를 45억 달러(프리머니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유통 사업과 소프트웨어를 한 지붕 아래 묶은 수직통합 모델로 AI 기반 공급망 자동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반면 페퍼는 기존 납품업체를 직접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중소 식자재 유통사가 그대로 쓸 수 있는 순수 SaaS로, 이들이 시스코 같은 대형사에 맞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뒤를 받치는 역할이다. 

글로벌 푸드테크 투자 규모는 디지털푸드랩(DigitalFoodLab) 집계 기준 2024년 한 해 16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2025년 들어서는 전반적인 스타트업 투자 위축 기조 속에 다시 감소 추세지만, 식자재 유통 디지털화처럼 실제 사업 현장의 비효율을 해소하는 버티컬 SaaS는 여전히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누가 이 시장의 표준 플랫폼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놓고 국내외 경쟁은 이제 막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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