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코드 짜는 속도, 검증이 따라가지 못한다 — 데포, 1,000만 달러로 CI 재설계


앱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개발자가 새 기능 코드를 완성하면 곧바로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코드를 실제로 배포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새 코드가 기존 코드와 충돌하지는 않는지, 버그는 없는지, 보안 취약점은 없는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CI(지속적 통합, Continuous Integration)’ 파이프라인이다. 깃허브(GitHub) 같은 코드 저장소에 코드를 올리면, 이 파이프라인이 수천 가지 자동화된 테스트를 돌리고 통과해야만 배포가 가능하다.

depot logo - 와우테일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코드가 복잡해질수록 파이프라인 완료까지 15분, 30분, 길면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개발자는 그 시간 동안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커서(Cursor), 클로드 코드(Claude Code) 같은 AI 코딩 도구 덕분에 개발자 한 명이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코드를 쏟아낼 수 있게 됐다. 10명짜리 팀이 100명짜리 팀처럼 움직이는 게 가능해진 셈이다. 코드 작성 속도는 폭발적으로 빨라졌는데, 그 코드를 검증하고 통합하는 파이프라인은 여전히 10년 전 속도 그대로다. 병목이 더 극명해진 것이다.

빌드 가속 플랫폼 데포(Depot)가 바로 이 문제를 파고든다. 데포는 펠리시스(Felicis),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파이오니어 펀드(Pioneer Fund)로부터 총 1,000만 달러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투자사 세 곳이 모두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는 것은, 이들이 데포의 방향에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데포는 2022년 카일 갈브레이스(Kyle Galbraith)와 제이콥 길레스피(Jacob Gillespie)가 공동 창업했다. 두 사람은 비영리단체 손(Thorn)과 DB 스타트업 에라 소프트웨어(Era Software)에서 함께 일하며 느린 빌드 속도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특히 깃허브 액션스에서 여러 플랫폼용 이미지를 동시에 빌드하면 45분이 훌쩍 걸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두 사람은 직접 해결책을 만들기로 했고, 첫 번째 프로토타입만으로 자신들의 빌드를 5배 빠르게 단축시켰다. 갈브레이스는 결과를 처음 봤을 때 “이게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이 경험이 2023년 와이콤비네이터 W23 배치 합류로 이어졌다.

데포는 2024년 8월 펠리시스 주도로 410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당시 이미 월 100만 건 이상의 빌드를 처리하며 1,800개 이상 조직에서 쓰이고 있었고, 주간 평균 1만3,750시간의 빌드 시간을 줄여주고 있었다. 도커 이미지 빌드에서 시작해 깃허브 액션스 러너(GitHub Actions Runners), 로컬 빌드, 원격 캐싱, 에이전트 샌드박스로 기능을 넓혀온 데포는, 이번 시리즈A를 계기로 가장 야심찬 제품을 꺼내든다. 처음부터 AI 시대를 위해 설계한 CI 시스템, ‘데포 CI(Depot CI)’다.

갈브레이스는 “기존 CI를 조금 개선한 게 아니라, 3년간 현장에서 배운 교훈을 토대로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기존 CI 시스템들은 사람이 코드를 작성하고, 어느 정도 모아서 푸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패턴에 맞게 설계됐다. 파이프라인이 15분 걸려도 참을 수 있는 세계였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쉴 새 없이 코드를 커밋하고, 수십 개의 브랜치가 동시에 검증을 요청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느린 게 아니라 구조 자체가 맞지 않는다. 데포 CI는 빠른 오케스트레이션, 조합 가능한 컴퓨트, API 우선 설계를 갖춰 개발자의 터미널 환경과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루프를 돌리는 환경을 모두 지원하며, 기존 깃허브 액션스 워크플로를 그대로 가져와 쓸 수 있어 전환 부담도 낮췄다. 데포는 장기적으로 소스 컨트롤, CI, 빌드, 검증 전 과정을 현재의 개발 속도에 맞게 처음부터 설계한 소프트웨어 딜리버리 플랫폼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경쟁 지형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재 CI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깃허브 액션스(GitHub Actions)다. 깃허브 저장소와의 원클릭 연동, 1,800개 이상의 액션 생태계, 무료 티어를 앞세워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폭넓게 쓰인다. 하지만 전직 서클CI 직원 이안 던컨(Ian Duncan)은 최근 깃허브 액션스를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비유“하며 편의성으로 시장을 장악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느린 CI/CD 파이프라인이 엔지니어링팀 주간 생산성의 최대 20%를 낭비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서클CI(CircleCI)는 고성능 빌드와 병렬 처리, 3,500개 이상의 재사용 파이프라인 모듈을 앞세우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이 빠르게 오른다. 빌드카이트(Buildkite)는 우버(Uber), 도어대시(DoorDash), 핀터레스트(Pinterest) 같은 대형 테크 기업들이 선택하는 하이브리드 CI 플랫폼으로, 빌드 결과물을 자사 인프라에서만 처리해 보안이 까다로운 기업에 적합하다. 하네스(Harness)는 CI를 넘어 CD(지속적 배포), 보안, 비용 관리까지 아우르는 엔터프라이즈 데브옵스(DevOps) 플랫폼으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주도로 2억4000만 달러를 유치한 강자다. 워프빌드(Warpbuild), 네임스페이스 랩스(Namespace Labs) 같은 스타트업들도 빠른 자체 호스팅 러너를 내세우며 틈새를 공략 중이다. 데포는 러너 속도 개선에 그치지 않고 CI 엔진 자체를 다시 설계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결이 다르다.

이번 1,000만 달러는 데포 CI 개발 가속화와 원격 캐싱, 에이전트 샌드박스 등 플랫폼 기능 확장에 쓰일 예정이다. 데포 CI는 조만간 출시되며, 현재 얼리 액세스 신청을 받고 있다.

기사 공유하기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