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EO가 직접 베팅한 AI 칩 설계 ‘코그니칩’, 6천만 달러 시리즈A


반도체 하나를 설계하는 데는 보통 2~3년이 걸린다. 엔비디아의 블랙웰(Blackwell) GPU에는 트랜지스터가 1,040억 개 들어간다. 이 복잡한 구조를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직렬(serial) 방식으로 검토하고 검증하는 작업 방식은 수십 년째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를 몇 배씩 끌어올리는 동안에도, 칩 설계 현장만큼은 여전히 사람 손을 거치는 단계가 너무 많다.

Cognichip team - 와우테일

코그니칩(Cognichip)은 이 구조를 바꾸겠다며 나선 스타트업이다. 반도체 설계 전용 AI 파운데이션 모델인 ‘ACI®(Artificial Chip Intelligence, 인공 칩 지능)’를 개발 중인 이 회사가 셀리그만 벤처스(Seligman Ventures) 주도로 6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일본 SBI인베스트먼트(SBI Investment)도 참여했고, 초기 투자자인 메이필드(Mayfield), 럭스캐피털(Lux Capital), FPV, 캔도우 벤처스(Candou Ventures)는 모두 프로라타 이상으로 재참여했다. 누적 투자액은 9천3백만 달러다.

두 번의 IPO를 이끈 반도체 40년 베테랑

코그니칩은 2024년 파라지 알라에이(Faraj Aalaei) CEO가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40년 넘게 반도체·통신 분야에 몸담은 연쇄 창업자다. 센틸리움 커뮤니케이션스(Centillium Communications)와 아쿠안티아(Aquantia) 두 회사를 각각 나스닥 IPO로 이끌었는데, 센틸리움은 창업 3년 만에 상장해 반도체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빠른 IPO로 기록됐다. 아쿠안티아는 마벨 테크놀로지(Marvell Technology)에 인수됐고, 알라에이는 마벨에서 네트워킹·자동차 부문을 총괄했다. 이후 2016년 캔도우 벤처스를 설립해 투자자로 활동하다가, 생성형 AI가 칩 설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코그니칩을 창업했다.

공동창업자로는 CTO 에산 카말리네자드(Ehsan Kamalinejad)와 최고아키텍트 사이먼 사바토(Simon Sabato)가 함께한다. 카말리네자드는 아마존 AI팀과 애플 ML 사이언티스트 출신으로 토론토대학교 박사다. 팀 전체는 아마존, 구글, 애플, 시놉시스(Synopsys), 아쿠안티아, KLA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인텔 CEO가 직접 투자에 나선 이유

이번 라운드에서 눈길을 끄는 건 투자자 명단이다. 인텔(Intel) CEO 립부 탄(Lip-Bu Tan)이 개인 자격으로 투자에 참여하고 코그니칩 이사회에 합류했다.

탄은 캐던스 디자인 시스템즈(Cadence Design Systems) CEO를 오랫동안 역임하며 이 회사를 글로벌 EDA 소프트웨어 강자로 키운 인물이다. 코그니칩과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라에이가 센틸리움과 아쿠안티아를 이끌 때 탄이 두 회사 이사회 멤버로 함께했고, 두 번의 IPO를 같이 경험했다. 탄은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며 “코그니칩의 물리학 기반 파운데이션 모델 기술과 검증된 리더십이 이 회사를 세대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셀리그만 벤처스의 우메시 파드발(Umesh Padval) 매니징 파트너도 이사회에 합류했다. 파드발은 인티그레이티드 디바이스 테크놀로지(IDT, 르네사스 인수), 멜라녹스 테크놀로지스(Mellanox Technologies, 엔비디아 인수), PA 세미(P.A. Semi, 애플 인수) 등 굵직한 반도체 딥테크 기업의 이사회를 역임했다. 그는 “칩 설계 주기를 단축하는 다음 진전은 기존 설계 도구의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직렬로 이어진 설계 공정을 AI로 병렬화하는 데서 온다”고 강조했다.

SBI홀딩스(SBI Holdings) 요시타카 키타오(Yoshitaka Kitao) 대표는 “코그니칩의 ACI®는 차세대 AI 반도체의 핵심 지능 레이어가 될 것”이라며 “설계 비용을 최대 75%, 개발 기간을 50%까지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BI는 프리퍼드 네트웍스(Preferred Networks), 텐스토런트(Tenstorrent), 엣지코텍스(EdgeCortix) 등에도 투자하며 AI 반도체 생태계를 꾸준히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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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법칙을 학습한 반도체 전용 모델

코그니칩의 핵심 차별점은 ‘물리학 기반(physics-informed)’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범용 LLM 위에 프롬프트를 감싸는 ‘래퍼(wrapper)’ 방식이 아니라, 반도체 설계에 실제로 적용되는 물리·논리 법칙을 직접 학습시킨 전용 모델을 처음부터 쌓아올렸다. RTL(Register Transfer Level), 합성 후 넷리스트(netlist), 회로 데이터, 스펙·검증 자료까지 포함한 독점 데이터셋을 구축했다.

데이터 확보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에는 깃허브(GitHub)처럼 방대한 오픈소스 코드베이스가 있지만, 반도체 설계 데이터는 IP 보호를 이유로 철저히 폐쇄적이다. 코그니칩은 내부 데이터 자체 생성, 합성 데이터 활용, 파트너사 데이터 라이선싱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돌파했다. 회사 측은 ACI®를 통해 설계 주기를 수개월에서 며칠 수준으로 단축하고, 개발 비용을 75%까지 절감하면서도 전력·성능·면적(PPA)을 최적화할 수 있다고 밝힌다.

현재 상위 20개 반도체 기업 다수를 포함해 30개 이상의 반도체 회사와 협력 중이다.

몰려드는 경쟁자들

전자설계자동화(EDA) 시장은 시놉시스(Synopsys)와 캐던스 디자인 시스템즈(Cadence Design Systems)가 수십 년간 과점해온 분야다. 코그니칩은 이 기존 EDA 진영과 팹리스(fabless) 칩 설계사 사이에서 새로운 카테고리, 이른바 ‘AI 기반 칩 설계(AI-enabled chip design)’ 세그먼트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같은 공간으로 뛰어드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칩(AlphaChip) 개발자들이 세운 리커시브 인텔리전스(Ricursive Intelligence)는 올해 1월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Lightspeed Venture Partners) 주도로 3억 달러 시리즈A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40억 달러를 찍었다. 칩에이전츠(ChipAgents)도 2월 7천4백만 달러 규모 시리즈A 익스텐션을 마무리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2월 시놉시스에 20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리커시브 투자에도 참여하며, 칩 설계 생태계 전반에 걸친 포지셔닝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 강자인 시놉시스도 AI 에이전트 기반 설계 자동화 도구를 잇달아 출시하며 방어에 나섰다.

코그니칩은 이번 투자금을 연구 인력 확충, 엔지니어링 팀 구성, 컴퓨팅 인프라 증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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