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조스가 베팅한 초저가 전기 픽업트럭, 슬레이트 오토 6억 5천만 달러 시리즈C 유치


미국 신차 평균 가격이 5만 1천 달러를 넘어선 시대에, 그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의 전기 픽업트럭을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이 있다. 미시간주 트로이(Troy) 기반의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 오토(Slate Auto)가 6억 5천만 달러 시리즈C를 마감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투자자인 TWG 글로벌(TWG Global)이 라운드를 주도했으며, 2022년 창업 이래 누적 조달액은 14억 달러에 달한다.

Slate Truck2 - 와우테일
Slate Truck

슬레이트 오토의 전략적 핵심은 극단적 단순함이다. 슬레이트 트럭(Slate Truck)은 2도어 후륜구동 전기 픽업으로, 공장 출고 사양은 회색 단일 외관에 크랭크식 수동 창문, 별도 인포테인먼트 없이 스마트폰 거치대만 달린 형태다. 201마력 단일 후륜 전기모터를 얹었고, 주행거리는 기본 52.7kWh 배터리 기준 150마일(약 240km), 84.3kWh 확장 배터리 선택 시 240마일(약 385km)이다. 차체 길이는 포드 매버릭(Ford Maverick)보다 60cm 이상 짧지만, 적재 용량은 650kg(약 1,433파운드)으로 중형 픽업과 비슷하다. 

5인승 SUV 컨버전 키트를 볼트 몇 개로 조립하면 차 자체의 형태도 바뀐다. 약 5천 달러짜리 이 키트 외에도 외장 비닐 랩, 서스펜션 리프트 키트, 루프랙 등 100여 가지 액세서리를 직접 장착할 수 있고, 슬레이트는 DIY 설치를 돕는 동영상 플랫폼 ‘슬레이트 유니버시티(Slate University)’도 운영한다. 충전 포트는 테슬라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쓸 수 있는 표준 NACS 방식이며, 전국 4천여 개의 리페어팔(RepairPal) 서비스 센터에서 보증 서비스와 액세서리 장착을 지원한다.

슬레이트 오토의 뿌리는 메사추세츠 기반 제조 인큐베이터 리빌드 매뉴팩처링(Re:Build Manufacturing) 내부 프로젝트 ‘Re:Car’다. 2022년 여기서 출발한 슬레이트는 공동창업자 제프 윌키(Jeff Wilke), 윌리엄 바커(William Barker), 마일스 아르노네(Miles Arnone)가 함께 세웠다. 윌키는 아마존(Amazon) 글로벌 소비자 부문 CEO를 오랫동안 지낸 인물이다. 투자자 면면도 아마존 색채가 짙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개인 투자 회사 베이조스 익스페디션스(Bezos Expeditions)를 통해 초기부터 참여했으며, 전 아마존 임원 디에고 피아센티니(Diego Piacentini)도 투자자 명단에 있다. 슬레이트 내부에는 모빌리티·UX·이커머스·플릿 세일즈·HR 담당 팀장 등이 아마존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아마존 자체는 2020년 자율주행 로보택시 업체 죽스(Zoox)를 12억 달러에 인수해 운영 중인데, 슬레이트는 그와 무관한 별개 투자다.

3월에는 창업 CEO가 교체됐다. 초대 CEO 크리스틴 바먼(Christine Barman)은 차량 개발·제조·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차량 부문 사장(President of Vehicles)’으로 자리를 옮겼고, 아마존 마켓플레이스 부사장 출신의 피터 파리시(Peter Faricy)가 새 CEO로 합류했다. 파리시는 포드(Ford)와 맥킨지(McKinsey)를 거쳐 아마존에서 12년을 보내며 마켓플레이스를 수백만 셀러가 14개국에서 활동하는 플랫폼으로 키웠다. 이후 디스커버리(Discovery Inc.)와 태양광 기업 선파워(SunPower) CEO도 역임했다. 슬레이트 공동창업자 윌리엄 바커는 “예약→주문 전환이라는 다음 단계에 돌입하는 지금이 피터가 합류하기에 딱 맞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리즈C 자금은 인디애나주 워소(Warsaw)의 폐인쇄 공장을 전기차 생산 라인으로 탈바꿈하는 데 집중 투입된다. 슬레이트는 이 공장에 총 4억 달러를 투자해 코시어스코 카운티에서 2천 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20년에 걸쳐 인디애나 경제에 최대 390억 달러를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CEO 파리시는 “올해 생산의 다음 단계에 예정대로, 예산 내에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슬레이트 트럭은 2025년 4월 공개 후 3주 만에 예약 10만 건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16만 건을 넘어섰다. 예약금은 환불 가능한 50달러로 실제 구매 계약과는 차이가 있지만, 6월 정식 사전 주문 개시와 공식 가격 발표를 앞두고 누적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 첫 고객 인도가 목표다.

타이밍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미국 의회가 전기차 세액공제 7,500달러를 폐지하면서 슬레이트는 당초 내세우던 ‘2만 달러 미만’ 문구를 내렸고, 가격은 2만 달러 중반대로 올라섰다. 테슬라(Tesla)의 미국 판매량은 2년 연속 감소했고,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계획을 줄이고 있다. 피스커(Fisker), 로드스타운 모터스(Lordstown Motors) 등 저가 EV를 내세웠다가 파산한 전례도 부담이다. 반면 슬레이트는 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단일 모델·단일 스펙에 집중하며 생산 복잡도를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 14억 달러의 실탄과 16만 건의 예약을 손에 쥔 지금, 관건은 연말 인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베이조스 익스페디션스, AI·로봇·우주까지 뻗은 포트폴리오

슬레이트 오토에 투자한 베이조스 익스페디션스는 2005년 설립 이후 85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해온 제프 베이조스의 개인 투자 회사다. 운용 자산은 2천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며, 포트폴리오에서 유니콘 기업만 12개다.

초기에는 에어비앤비(Airbnb), 우버(Uber), 워크데이(Workday)처럼 디지털 플랫폼 선도 기업에 초기 투자해 큰 성과를 거뒀다. 최근 몇 년은 AI와 로봇, 우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AI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대형 언어모델을 활용한 대화형 검색 엔진으로, 베이조스 익스페디션스가 2024년 시리즈B에 참여한 이후 기업가치가 수십억 달러로 치솟았다. 로봇용 범용 AI를 개발하는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에도 2024년부터 여러 차례 투자했고, 현재 기업가치는 56억 달러를 넘어섰다. 다양한 로봇 하드웨어에 탑재 가능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스킬드 AI(Skild AI)에도 투자했으며, 이 회사는 최근 소프트뱅크 주도로 기업가치 14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로봇뿐 아니라 방산 AI 기업 안두릴(Anduril)도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다. 우주 부문에서는 베이조스가 직접 창업한 블루 오리진(Blue Origin)과 함께, AI 물리 세계 적용을 위한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Project Prometheus)에도 공동 CEO로 직접 참여 중이다.

슬레이트 오토는 이 중에서도 소비자용 EV 시장에 베이조스가 드물게 베팅한 사례다. 단순한 재무 수익보다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이라는 서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리즈C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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