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환구의 특허 이야기] 상표권자로부터 상표 침해 경고장을 받았을 때


상표의 침해는 특허나 디자인과 비교할 때 침해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상품이나 서비스 출시 전에 상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조사를 했는데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침해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타상품 출처표시라는 상표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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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는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다. 따라서 상표는 문자나 도형 등으로 표시되는 표장과 그 표장이 출처를 나타내고자 하는 지정상품이 함께 구성요소로 포함된다. 상표는 항상 지정상품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상표 침해 행위는 등록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장을 등록상표가 지정한 지정상품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품에 사용한 행위를 일컫는다. 여기서 유사한 표장을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행위를 침해가 아니라고 잘못 생각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러므로 상표의 침해 범위가 유사표장을 유사상폼에 사용하는 데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누군가 내게 상표침해를 주장한다면 그 상표가 유효하지 않거나, 혹은 등록상표의 표장과 내가 사용하는 표장이 비유사하거나, 혹은 그 표장을 사용하는 상품이 등록상표의 지정상품과 비유사함을 증명해야 침해가 아님을 인정받을 수 있다.

지정상품에 대해 우선 살펴보자. 세상에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프랑스 니스에서 회의를 열어 전체 상품과 서비스를 45개 류로 구분했다. 이를 니스(NICE) 국제상품분류라고 하는데 1류부터 34류까지가 상품이고, 35류부터 45류까지는 서비스업이다. 상표권은 이렇게 분류된 45개 각각의 류 단위로 표장을 등록하여 얻는 권리이다.

그렇지만 예컨대 제3류의 ‘비의료용 화장품 및 세면용품’을 지정상품으로 등록한다고 해서 제3류의 모든 상품에 대해 권리를 갖지는 못한다. 제3류에 속하는 ‘비의료용 화장품 및 세면용품’ 중에서도 각질제거용 바디로션, 각질제거용 스크럽(화장용), 각질제거용 젤시트(화장용), 각질제거용 크림, 각질제거용 파우더, 각질제거용 팩, 각질제거용 화장수 등으로 세분된 지정상품명을 찾아 그 중 실제 판매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상품지정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인인 상표권자의 등록상표 지정상품이 제3류에 속하는 ‘각질제거용 바디로션’일 때, 내가 사용한 상품이 제3류에 속한다고 해도 ‘가정용 공기청향제’라면 구체적인 거래계의 현황에 비추어볼 때 양 상품은 서로 유사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

설사 상품이 유사하다고 해도 표장이 비유사하다면 상표침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표장은 사람마다 느끼는 유사 정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법령과 판례를 근거로 하여 파악해야 하며, 일반적으로는 상품을 거래한다고 인정되는 추상적인 사람을 가정하여 그 사람의 판단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상표의 유사 여부는 물론 표장의 유사여부 판단도 법령과 판례에 따른 분석이 필요하므로 변리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용 상품이 등록상표의 지정상품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고, 그 상품에 사용하는 표장도 등록상표의 표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해도 반드시 침해는 아니다. 등록상표가 출원되기 전부터 부정경쟁의 목적 없이 그 상표를 계속 사용하여 왔고, 등록상표의 출원시점에는 국내 수요자 사이에 그 상표가 특정인 곧 나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면 선사용권이 인정될 수 있다. 특정인의 상품 표시로 인식되었다는 증거는 상품 판매 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주장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등록상표의 출원 전부터 자기의 성명이나 상호(기업의 이름)를 상표로 사용해 왔다면 국내 수요자 사이에 특정인의 상품 표시 표장으로 인식되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선사용권이 인정된다. 회사의 명칭인 상호를 상표로 사용하는 경우에 주로 활용되는 선사용권 인정 근거이다.

또 하나 살펴볼 내용은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에 대해서 사용했는지 여부이다. 등록상표의 지정상품이 의류와 신발이고 상표권자는 의류에만 상표를 사용하여 왔다면 신발에 대한 상표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등록상표와 동일한 표장을 신발에 사용했다면 상표 침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침해에 따른 구제인 손해배상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상표권자가 신발에 대해서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표권자는 상표의 통상사용권을 설정할 경우에 받을 수 있는 사용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침해자도 상표권자가 입는 구체적 피해 발생이 없음을 항변할 수 있다.

손해발생이 없었다는 주장과는 별개로 상표권자가 등록상표를 지정상품인 신발에 대하여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면, 신발에 대한 상표권을 취소해 달라는 취소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상표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적절한 항변을 통해 침해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은 상표 등록의 비용과 시간에 비해 엄청나게 큰 값을 필요로 하므로, 상품을 출시할 때는 미리 상표등록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문환구변리사:두리암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석사, 고등기술연구원(IAE)과 아주대학교 협동과정에서 시스템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와 고등기술연구원에서 반도체, 정보통신 분야를 연구했으며,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를 지냈다. 《세상의 모든 X》(2020) 《발명, 노벨상으로 빛나다》(2021)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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