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접착제로 ‘불가능한 표적’ 공략하는 네오모프, 1억 달러 시리즈B 유치


신장암은 치료 성적이 크게 개선된 암 중 하나다. 면역관문억제제와 VEGF 표적치료제 조합 덕분에 전이성 환자의 중간 생존 기간이 20년 전 1년 미만에서 최근 임상에서는 5년 가까이로 늘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환자는 결국 치료 내성을 겪고, 이후 단계에서는 효과적인 선택지가 거의 없다. 특히 ccRCC(투명세포 신세포암)의 핵심 드라이버인 HIF 경로는 그동안 ‘약으로는 손댈 수 없는 표적’으로 분류돼 왔다.

Neomorph logo - 와우테일

샌디에이고 바이오텍 네오모프(Neomorph)는 이 표적을 분자 접착제 기술로 공략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B 투자유치를 마감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투자자인 디어필드 매니지먼트(Deerfield Management)가 라운드를 주도했고, 리제네론 벤처스(Regeneron Ventures), 롱우드 펀드(Longwood Fund), 알렉산드리아 벤처 인베스트먼트(Alexandria Venture Investments), 다나-파버 암 연구소 산하 바이니 스트리트 캐피털(Binney Street Capital) 등이 신규 투자자로 합류했다.

‘억제’가 아닌 ‘제거’ — 표적단백질분해 기술의 계보

기존 약물의 작동 방식은 단순하다. 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활성 부위(active site)에 달라붙어 기능을 막는다. 자물쇠 구멍에 맞는 열쇠를 꽂아 잠그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인체 단백질의 85~90%가 이런 결합 홈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단백질들은 ‘언드러거블(undruggable)’, 즉 약으로 공략 불가능한 표적으로 분류돼 왔다.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표적단백질분해(TPD, Targeted Protein Degradation)다. 단백질을 억제하는 대신, 세포 자체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활용해 문제 단백질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세포는 원래 손상되거나 불필요한 단백질에 유비퀴틴(ubiquitin)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이 꼬리표가 달린 단백질을 프로테아좀(proteasome)이라는 분해 기관으로 보내 파괴한다. TPD는 이 자연 시스템을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가동시키는 방식이다.

TPD 기술의 첫 번째 물결은 프로탁(PROTAC, 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이었다. 프로탁은 양끝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아령형’ 분자다. 한쪽은 표적 단백질에, 다른 쪽은 E3 유비퀴틴 리가아제에 각각 결합해 두 단백질을 강제로 끌어당기고 분해 반응을 유도한다. 이 방식은 기존 억제제가 접근하지 못하던 표적까지 다룰 수 있어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프로탁에는 세 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첫째, 분자가 너무 크다. 두 단백질을 연결하는 링커 구조까지 합치면 분자량이 흔히 1,000달톤(Da)을 넘어서는데, 경구용 약물의 이상적인 기준(분자량 500 이하)을 크게 벗어난다. 세포막 투과율이 떨어지고 흡수율도 낮다. 둘째, 표적 단백질에도 결합 부위가 있어야 한다. 프로탁 한쪽 끝이 표적에 붙어야 하므로, 홈이 전혀 없는 단백질에는 여전히 손을 못 댄다. 셋째, 약물 농도가 높아지면 ‘훅 효과(hook effect)’가 발생해 분해 효율이 오히려 떨어진다.

분자 접착제: 더 작고, 더 넓은 표적 공간

분자 접착제(molecular glue degrader)는 이 한계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가장 큰 차이는 구조다. 프로탁이 두 단백질을 묶는 ‘다리’라면, 분자 접착제는 훨씬 작은 단일 분자다. E3 리가아제 표면에 결합해 그 형태를 미세하게 바꾸고, 이렇게 바뀐 표면이 표적 단백질과 새로운 접촉면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두 물체 사이에 접착제를 발라 붙이는 것처럼, 원래는 서로 결합하지 않는 두 단백질을 가까이 붙여놓는 셈이다.

분자량은 보통 500달톤 이하로 프로탁의 절반 수준이다. 경구 흡수율이 높고 뇌혈관장벽(BBB)도 통과할 수 있어 신경계 질환까지 적용 폭이 넓다. 표적 단백질에 결합 홈이 없어도 되므로 공략 가능한 표적의 범위가 훨씬 확장되고, 같은 분자가 분해 반응을 반복적으로 촉매하는 특성도 있어 효율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다만 설계가 극도로 어렵다. 분자 접착제 역사에서 잘 알려진 사례 대부분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탈리도마이드가 대표적이다. 1950~60년대 임산부 입덧 치료제로 쓰이다 태아 기형을 일으킨 이 약물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세레브론(cereblon)이라는 E3 리가아제에 결합해 배아 발달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분해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극의 원인이었지만, 동시에 분자 접착제 약물 설계의 과학적 토대가 됐다.

TPD 경쟁 지형: 프로탁과 분자 접착제의 두 갈래

TPD 시장은 프로탁 전문사와 분자 접착제 전문사, 그리고 두 기술을 모두 다루는 빅파마 협력 구도로 나뉜다.

프로탁 진영에서는 아르비나스(Arvinas)가 가장 앞서 있다. 2019년 최초로 프로탁 후보물질을 임상에 올린 이 회사는 화이자와 공동 개발 중인 유방암 치료제 베프데제스트란트(vepdegestrant, ARV-471)의 FDA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승인되면 세계 최초의 프로탁 신약이 된다. 카이메라 테라퓨틱스(Kymera Therapeutics)는 프로탁을 면역·염증 질환에 적용하는 전략으로 차별화했다. 사노피(Sanofi)와 최대 9억 7,500만 달러, 길리어드(Gilead)와 최대 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각각 맺고 있다. C4 테라퓨틱스(C4 Therapeutics)와 뉴릭스 테라퓨틱스(Nurix Therapeutics)도 각각 독자적인 분해제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수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분자 접착제 진영의 핵심 경쟁사는 몬테로사 테라퓨틱스(Monte Rosa Therapeutics)다. 노바티스(Novartis)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MRT-6160에 대해 최대 21억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폐암·혈액암 대상의 자체 프로그램 MRT-2359도 임상 중이다. 트리아나 바이오메디신스(Triana Biomedicines)는 ‘타깃 우선(target-first)’ 접근법으로 ALK 양성 폐암에 집중하며 화이자와 최대 15억 달러 규모의 협력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에는 1억 2,000만 달러 시리즈B를 유치했다. 플렉시움(Plexium)은 단가 분자 분해제(monovalent degrader)와 분자 접착제를 함께 발굴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빅파마도 직접 뛰어들었다.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ristol Myers Squibb)은 셀진(Celgene) 인수로 확보한 CC-90009, CC-92480 등 분자 접착제 분해제를 임상에서 테스트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도 프로탁과 분자 접착제를 아우르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약 4억 8,000만 달러 규모인 TPD 시장은 2035년까지 연평균 35%대 성장률로 98억 5,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빅파마 협력과 임상 데이터 축적이 시장 팽창을 이끌고 있다.

네오모프의 차별화: E3 리가아제 600개를 무기로

분자 접착제 설계 난이도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네오모프는 경쟁사와 뚜렷하게 갈린다.

트리아나가 분해하고 싶은 표적 단백질을 먼저 정한 뒤 맞는 접착제를 설계하는 ‘타깃 우선’ 전략을 쓴다면, 몬테로사는 세레브론이라는 단일 E3 리가아제에 집중해 신규 결합 부위를 발굴하는 방식을 취한다.

네오모프의 핵심 기술은 ‘E3 리가아제 표면 재설계(neomorphic surface engineering)’다. 인체에는 E3 리가아제가 600개 이상 존재한다. 기존 분자 접착제 연구는 세레브론이나 DCAF15 같은 소수에만 집중됐는데, 네오모프는 이들 각각의 다양한 결합 부위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새로운 ‘네오모픽(neomorphic)’ 접촉면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구축했다. 단일 E3 리가아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E3 리가아제와 다수의 표적 조합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는 플랫폼인 셈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업계 최대 규모의 분자 접착제 표적 공간을 확보했다고 밝힌다.

이 차이가 파이프라인의 폭에서 드러난다. 트리아나나 몬테로사가 주로 종양학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네오모프는 신장암 NEO-811을 넘어 심혈관대사질환, 신경학, 면역질환까지 여러 치료 영역에 동시에 파이프라인을 두고 있다.

탈리도마이드 비극에서 분자 접착제의 미래를 본 CEO

필 챔벌레인(Phil Chamberlain) 공동창업자 겸 CEO는 이 분야에서 가장 깊은 이력을 가진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옥스퍼드대에서 학·박사를 마친 뒤 노바티스 연구재단(GNF)을 거쳐 2007년 셀진에 합류해 구조 및 화학 생물학 부서를 이끌었다. 그곳에서 탈리도마이드 계열 약물이 세레브론이라는 E3 리가아제에 결합해 특정 단백질의 분해를 유도한다는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 연구가 분자 접착제 신약 설계의 과학적 기반이 됐다. 챔벌레인은 “분자 접착제 전문 회사를 처음부터 쌓아올릴 기회”라며 2020년 네오모프를 설립했다.

공동창업자로는 다나-파버 암 연구소의 에릭 피셔(Eric Fischer) 박사, 하버드 의대 벤자민 에버트(Benjamin Ebert) 박사, 스콧 암스트롱(Scott Armstrong) 박사가 함께했다. 회사는 설립 직후 디어필드 주도의 1억 900만 달러 시리즈A를 유치하며 출발했다.

신장암 임상의 최전선, NEO-811

이번 투자금은 주로 리드 프로그램 NEO-811의 임상 1/2상에 쓰인다. ccRCC는 신장암의 75~8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으로, 환자의 약 90%에서 VHL 유전자 이상이 확인된다. 이 이상으로 HIF 경로가 과활성화돼 혈관 생성과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데, NEO-811의 표적인 ARNT(HIF-1β)는 이 경로의 핵심 허브 역할을 한다. 전통적인 억제제로는 공략이 어려웠던 표적이다. NEO-811은 세레브론 의존 메커니즘으로 ARNT를 직접 분해해 HIF 경로 전체를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올해 2월 첫 환자 투약을 완료했고, 현재 미국 내 최대 30명 환자를 대상으로 단일요법 용량 증량 및 확장 설계로 진행 중이다. 임상 주요 완료 시점은 2027년 1월로 예정돼 있다. 다나-파버 암 연구소 비뇨기종양학센터 토니 추에이리(Toni K. Choueiri) 소장은 임상 운영위원회 의장으로서 “NEO-811의 독특한 작용 메커니즘은 매우 유망하며, ccRCC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네오모프는 오늘(4월 19일) 개막하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 학술대회에서 NEO-811의 전임상 및 발견 데이터를 구두 발표와 포스터로 공개한다.

노보 노디스크·바이오젠·애브비까지 — 플랫폼 범용성의 증거

네오모프의 E3 리가아제 다각화 전략이 대형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체결한 빅파마 협력의 잠재 규모만 합산해도 50억 달러를 넘는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와는 심혈관대사 및 희귀질환 분야에서 최대 14억 6,000만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바이오젠(Biogen)과는 2024년 알츠하이머·희귀신경질환·면역질환 영역에서 최대 14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연구협력 계약을, 애브비(AbbVie)와는 2025년 1월 종양학·면역학 분야에서 최대 16억 4,000만 달러 규모의 옵션-라이선스 계약을 각각 맺었다.

디어필드의 캠 휠러(Cam Wheeler) 파트너는 “노보 노디스크, 바이오젠, 애브비가 심혈관대사, 신경학, 종양학, 면역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네오모프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이 플랫폼의 범용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20년 설립된 네오모프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두고 있다. 시리즈A(1억 900만 달러)와 이번 시리즈B를 합친 누적 투자유치액은 약 2억 900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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