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표 데이터 AI 프라이어랩스 인수… 유럽 최대 프론티어 AI 연구소 설립


AI가 기업 시장을 바꾸고 있다. 오픈AI(OpenAI)는 ChatGPT 엔터프라이즈로 사무직 업무를 자동화하고, 구글(Goog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자사 생산성 툴에 AI를 통합해 기업 고객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기존 기업용 소프트웨어 강자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SAP Prior labs - 와우테일

ERP 시장의 절대 강자 SAP가 반격 카드를 꺼냈다. LLM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기업의 구조화 데이터에 AI를 꽂겠다는 전략이다. SAP는 독일 스타트업 프라이어랩스(Prior Labs)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따르면 사실상 현금 거래이며, 창업진에게 돌아가는 금액만 5억 달러를 넘는다고 알려졌다. SAP는 향후 4년간 프라이어랩스에 10억 유로(약 11억6000만 달러) 이상을 추가 투자해 유럽 최대 구조화 데이터 전문 AI 연구소로 키울 계획이다. 인수 절차는 규제 당국 승인을 거쳐 2026년 2~3분기 중 마무리될 전망이다.

LLM이 못 하는 것

기업의 핵심 데이터는 대부분 표(테이블) 형태다. 거래 내역, 재고 현황, 고객 이탈률, 공급망 리스크 지수 등 경영 의사결정에 직결되는 숫자들이 스프레드시트와 데이터베이스에 담겨 있다. 전 세계 기업 데이터의 80~90%는 텍스트·이메일·문서 같은 비정형 데이터지만, 나머지 10~20%의 구조화 데이터가 실제 비즈니스 예측과 운영을 지탱한다.

문제는 ChatGPT 같은 LLM이 이 구조화 데이터에서 정확한 예측을 뽑아내는 데 취약하다는 점이다. LLM은 테이블·숫자·통계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결제 지연 예측, 공급업체 리스크 산정, 고객 이탈 가능성 계산 같은 업무에서는 기존 통계 기법에도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 SAP CTO 필립 헤르치히(Philipp Herzig)는 “기업용 AI에서 가장 큰 미개척 기회는 LLM이 아니라 전 세계 비즈니스를 실제로 굴리는 구조화 데이터에 특화된 AI”라고 잘라 말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테블러 파운데이션 모델(Tabular Foundation Model, TFM)이다. TFM은 처음부터 표 데이터를 위해 설계됐다. 별도의 태스크별 학습 없이도 어떤 테이블이든 즉시 패턴을 파악하고 예측을 내놓는다.

18개월 만에 빅딜로 이어진 연구

프라이어랩스는 2024년 초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창업됐다. 창업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오토ML(AutoML) 연구자 프랑크 후터(Frank Hutter) 교수, 구글과 BCG를 거친 컴퓨터 과학자 노아 홀만(Noah Hollmann), 그리고 벤처캐피털과 M&A 분야 경험을 가진 사우라지 감비르(Sauraj Gambhir)다. 세 사람은 ELLIS 생태계 안에서 학문적 성과를 상업화하기 위해 뭉쳤다.

초기 투자는 볼더튼 캐피탈(Balderton Capital)이 주도한 프리시드 라운드에서 900만 유로를 유치하며 시작됐다. XTX 벤처스, SAP 창업자 한스 베르너-헥터(Hans Werner-Hector)의 헥터 재단(Hector Foundation), 허깅페이스(Hugging Face) 공동창업자 토머스 울프(Thomas Wolf) 등도 참여했다.

기술적 실적이 딜의 근거다. 핵심 모델 TabPFN 시리즈는 네이처(Nature)에 게재됐으며, 현재 TFM 표준 벤치마크인 TabArena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TabPFN은 현재까지 3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최신 버전 TabPFN-2.6은 기존에 4시간이 걸리던 자동화 머신러닝 파이프라인과 동일한 정확도를 단일 모델로 즉시 구현한다. 볼더튼 캐피탈 파트너 제임스 와이즈(James Wise)는 이번 딜을 “독일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벤처 성과 중 하나”라고 평했다.

독립 운영 보장, 브랜드도 유지

인수가 완료돼도 프라이어랩스는 독립 법인으로 계속 운영된다. 브랜드명, 팀, 연구 미션, 프라이부르크 본사와 베를린·뉴욕 오피스도 그대로다. 오픈소스 전략, 고객 관계, 깃허브 리포지터리와 개발자 커뮤니티도 종전과 동일하게 이어진다.

달라지는 것은 리소스 규모와 배포 범위다. SAP의 10억 유로 투자로 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했던 연구 과제에 도전할 수 있게 되고, SAP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친 제품화 경로도 열린다. 프라이어랩스 팀은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 CERN 등에서 영입한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다. 과학 자문위원회에는 튜링상 수상자 얀 르쿤(Yann LeCun)과 막스플랑크 지능시스템연구소 소장 베른하르트 쇨코프(Bernhard Schölkopf)가 합류한다.

SAP는 TabPFN을 SAP AI Core와 SAP Business Data Cloud에 통합해 결제 지연 예측, 공급업체 리스크 산정, 고객 이탈 방지, 추가 판매 기회 발굴 등의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헤르치히 CTO는 “프라이어랩스의 프론티어 모델 작업에 기업 데이터와 고객 접근성을 결합하는 것이 우리가 이 카테고리를 글로벌로 이끌 방법”이라고 말했다.

독점이 아니다, 치열한 TFM 경쟁

TFM 시장은 프라이어랩스가 혼자 달리는 시장이 아니다. 창업 붐이 일고 있다.

펀더멘털(Fundamental)은 가장 공격적인 경쟁자다. 2024년 설립된 미국 스타트업으로, 오크HC/FT(Oak HC/FT)와 세일즈포스 벤처스(Salesforce Ventures)가 주도한 시리즈A에서 2억5500만 달러를 조달했다. ‘NEXUS’라는 대형 표 데이터 모델을 개발 중이며 수십억 행 처리를 표방하지만, 2026년 초 기준 독립 제3자 벤치마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딥마인드 출신이 만든 ‘표 데이터 AI’ 펀더멘털, 시리즈A서 2억2500만 달러 투자유치

쿠모(Kumo)는 스탠퍼드 교수 출신 연구자들이 설립한 미국 스타트업으로,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 주도로 총 3700만 달러를 조달했다. 단일 테이블 대신 여러 테이블이 연결된 관계형 데이터를 처리하는 릴레이셔널 파운데이션 모델(RFM)로 차별화한다. 2026년 4월에는 KumoRFM-2를 공개하며 SAP SALT 벤치마크에서 89% 정확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스타트업뉴럴크AI(Neuralk-AI)는 커머스 특화 TFM NICL을 개발 중이다. 허깅페이스 공동창업자 토머스 울프 등이 참여한 400만 달러 시드 라운드를 유치했다.

학계에서도 경쟁 모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프랑스 국립정보학연구소(INRIA)의 TabICL은 TabPFN 대비 최대 10배 빠른 속도를 앞세우며 ICML 2025에 채택됐고, 완전 오픈소스라는 점에서 개발자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고 있다.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SAP의 선택은 단순한 인수를 넘어 카테고리 표준 정의를 위한 전략적 포지셔닝으로 읽힌다. 방대한 ERP 고객 데이터와 프라이어랩스의 연구 역량을 결합하면, 실제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검증된 TFM 기술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프라이어랩스 CEO 프랑크 후터는 링크드인에 올린 게시물에서 “구조화 데이터 분야의 세계적인 프론티어 AI 연구소, 유럽에서, 오픈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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