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만 한 위성을 냉장고 크기로 — 애스트라니스, 4억5천만 달러로 GEO 민주화 나선다


지구 위 3만 6천 킬로미터. 그곳에 지금도 수백 기의 통신위성이 떠 있다. 특별한 고도다. 이 높이에서 공전하는 위성은 지구 자전속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면 하늘의 한 점에 고정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지궤도(GEO, Geostationary Orbit)’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위성 세 기만 있으면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체를 커버할 수 있어서, 수십 년간 방송·통신위성의 기본 무대가 됐다.

Astranis image - 와우테일

문제는 크기와 비용이었다. 정지궤도 위성은 전통적으로 버스 크기의 거대한 구조물이다. 설계부터 발사까지 7~10년이 걸리고, 비용은 기본 3억 달러에서 많게는 5억 달러를 넘는다. 그러다 보니 자국 전용 위성을 보유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러시아·유럽 강국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나라들은 바이어샛(Viasat), 인텔샛(Intelsat) 같은 대형 사업자의 위성을 다른 나라들과 함께 나눠 쓰는 수밖에 없었다. 통신 대역폭을 임차하는 구조라, 용량이 부족하거나 다른 고객과 충돌이 생겨도 속수무책이다. 보안도 문제다. 공유 위성은 데이터가 동일 인프라를 타고 흐르는 구조라 기밀 통신에는 쓰기 어렵다.

그렇다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처럼 저궤도(LEO) 위성으로 가면 안 될까. 저궤도는 고도 200~2,000km로 지구에 훨씬 가깝다. 응답 속도(레이턴시)가 20~40ms로 빠른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저궤도 위성은 지구를 빠르게 공전하기 때문에 한 위성이 특정 지역 상공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 끊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수백~수천 기의 위성을 동시에 운용하는 ‘별자리(constellation)’가 필수다. 스타링크가 이미 7,000기 이상을 띄운 이유가 여기 있다. 소수 국가나 기업이 자국 전용으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전용 위성이 필요한 고객들은 여전히 GEO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GEO 위성이 너무 크고 비싸다. 이 딜레마를 정조준한 회사가 있다.

애스트라니스(Astranis)는 GEO 위성을 소형화해 가격과 납기를 동시에 낮춘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이다. 회사의 핵심 제품인 ‘마이크로GEO(MicroGEO)’는 기존 GEO 위성의 10분의 1 수준 무게로 설계됐다. 무게가 가벼우면 발사 비용이 내려가고, 다른 위성의 빈자리에 얹혀 발사하는 공유 발사(rideshare)도 가능해진다. 제작 기간도 수년에서 수개월로 줄었다. 독자 통신 위성을 갖고 싶지만 수억 달러를 쏟아부을 여력이 없던 중소 국가·기업·군사 조직이 비로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궤도에 위성 5기를 운용 중이며, 수주 잔고는 상업 계약만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회사는 6일 시리즈E 4억5천만 달러의 신규 자본을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로 누적 조달액은 12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번 라운드는 스노우포인트 벤처스(Snowpoint Ventures)와 프랭클린 템플턴(Franklin Templeton)이 공동 주도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블랙록(BlackRock), 베일리 기퍼드(Baillie Gifford), 피델리티(Fidelity Management & Research Company), BAM 엘리베이트(BAM Elevate), 님블 파트너스(Nimble Partners), 프렌즈앤패밀리캐피털(Friends & Family Capital) 등 기존 및 신규 투자자들도 참여했다. 트리니티캐피털(Trinity Capital)은 최대 1억5500만 달러 규모의 지연 인출 신용 시설도 별도로 제공해 총 조달 규모는 최대 6억 달러에 달한다.

창업자: X프라이즈에서 플래닛랩스까지

애스트라니스는 2015년 존 게드마크(John Gedmark)라이언 맥린코(Ryan McLinko)가 공동 창업했다. 두 사람 모두 YC(Y Combinator) W16 배치 출신이다.

게드마크 CEO는 퍼듀대와 스탠퍼드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X프라이즈재단에서 로켓 비행 운영 디렉터로 일하며 VTVL(수직 이착륙) 로켓의 최초 공개 비행을 지휘했고, 이후 상업우주비행연맹(Commercial Spaceflight Federation)을 공동 창립해 사무총장으로서 NASA 우주비행사 수송의 민간 이관을 이끌었다.

맥린코 CTO는 MIT에서 항공우주공학 학사·석사를 마쳤다. 스페이스X, 시에라네바다 코퍼레이션(Sierra Nevada Corporation), 플래닛랩스(Planet Labs)에서 위성 설계와 기계·전자 엔지니어링 팀을 이끌었다. 플래닛랩스 재직 시에는 지구 전체 지표를 매일 촬영하는 큐브샛 함대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했다.

상업과 국방, 두 시장이 동시에 열리다

애스트라니스가 공략하는 시장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

하나는 상업 시장이다. 기업과 각국 정부가 노후화된 공유형 GEO 위성에서 벗어나 독자 위성·네트워크를 갖추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애스트라니스는 최근 대만의 중화텔레콤(Chunghwa Telecom)과 오만의 MB그룹과 잇달아 전용 위성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두 위성 모두 올해 발사 예정이다.

또 하나는 미국 국방 시장이다. 미 우주군은 중국·러시아의 위성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을 711억 달러로 확대할 예정이다. 애스트라니스는 미 국방부의 주요 프로그램들—프로텍티드 택티컬 새트컴 글로벌(PTS-G), 리질리언트 GPS, 안드로메다—에 프라임 계약자로 선정됐다. 우주군 예산 증액이 본격화되면 이 수주의 규모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

스노우포인트 벤처스의 제너럴 파트너 알렉산더 크리시(Alexander Creasey)는 “GEO는 국가 안보에 가장 중요한 궤도이며, 우주군이 가장 큰 신규 역량 수요를 보이는 궤도”라고 밝혔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제임스 크로스(James Cross) 상무이사도 “실제로 고궤도 위성을 날린 유일한 회사”라며 애스트라니스의 실적을 평가했다.

애스트라니스는 이번 투자금을 상업 고객향 위성 생산 가속과 미 정부 프로그램 대응 역량 확충에 사용할 계획이다. 현재 직원 수는 500명이며,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있는 14만㎡ 규모의 본사에서 위성 설계·제조·운용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우주항공 스타트업 지형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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