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폴드 다음은 무엇인가 — 과학의 황금기와 창업자를 위한 허사비스의 조언


노벨상 수상자이자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대표 개리 탄(Garry Tan)과 마주 앉았다. 4월 29일 진행된 이 대담에는 AGI의 현주소, 딥마인드의 기술 전략, 그리고 AI 시대 창업자에게 던지는 직언이 담겼다. 와우테일이 주목할 내용을 골라 3편의 연속 기사로 정리한다. (대담 원본 영상)

이 시리즈의 다른 기사:

Hassabis YC interview 3 - 와우테일

2020년, 인공지능이 생물학의 50년 난제를 풀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사슬이 3차원 공간에서 어떤 모양으로 접힐지를 예측하는 문제였다. 단백질의 모양이 곧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것을 알면 신약을 설계하고 질병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그런데 가능한 구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아, 기존 방법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계산이었다.

알파폴드(AlphaFold)가 그것을 풀었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AI였다.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는 이 성과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딥마인드는 200만 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 예측 결과를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했다.

허사비스는 4월 29일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거의 모든 신약 개발 과정에는 알파폴드가 쓰일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 300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알파폴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알파폴드가 성공한 이유

허사비스는 알파폴드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반복 가능한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조건이다.

첫째, 브루트포스로는 절대 탐색할 수 없는 거대한 조합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단백질 구조 예측이 딱 그랬다. 가능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인간이 일일이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AI가 빛나는 지점이다.

둘째,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단백질은 자유 에너지가 최소화되는 형태를 취한다는 물리 법칙이 있었다. AI가 향해야 할 방향이 분명했다.

셋째, 학습할 데이터 또는 시뮬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단백질 데이터 뱅크(PDB)에는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쌓아온 구조 데이터가 있었다.

이 공식이 맞아떨어지는 분야가 어디인가. 허사비스는 신소재 과학, 신약 설계, 기후 모델링, 수학까지 나열했다. “이 분야들은 지금 알파폴드 이전 단계에 있습니다. 앞으로 2년 안에 할 이야기가 많이 생길 겁니다.”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는 이미 신약 설계를 위한 화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허사비스는 “곧 중요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음 목표: 살아있는 세포를 통째로 시뮬레이션한다

알파폴드가 단백질 하나를 예측하는 것이었다면, 허사비스의 다음 구상은 규모가 전혀 다르다. 살아있는 세포 하나를 컴퓨터 안에 완전히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상 세포(virtual cell)’라고 부른다.

가상 세포가 완성되면 어떤 약물을 투여했을 때 세포가 어떻게 반응할지, 유전자 하나를 바꾸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실험실 없이 컴퓨터 안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실험 단계를 건너뛰고 가설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 신약 개발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다.

허사비스는 완전한 가상 세포까지 약 10년이 필요하다고 봤다. 딥마인드는 현재 더 작은 단위인 세포핵(nucleus)부터 시작하고 있다. 세포핵은 세포 안에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입력과 출력의 경계를 정의하기 좋다.

가장 큰 걸림돌은 데이터다. 살아있는 세포를 죽이지 않고 나노미터 수준의 해상도로 촬영하는 기술이 아직 없다. 허사비스는 “그 기술이 나온다면 판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 세포 이미징을 이미지 인식 문제로 전환할 수 있고, 이미지 문제는 딥마인드가 이미 잘 아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테스트

허사비스는 AI 과학 발견 능력의 기준점으로 ‘아인슈타인 테스트’를 제시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던 지식에서 출발해, 완전히 새로운 우주관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1901년까지의 물리학 지식으로만 훈련된 AI 시스템이, 아인슈타인처럼 독자적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AI는 불가능하다. 기존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고 내삽(interpolation)하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이론 체계를 발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러나 허사비스는 이것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지 않았다. “유추 추론과 가설 생성 능력 — 한두 가지 미싱 피스일 것입니다. 몇 년 안에 진전이 있을 겁니다.”

그는 구체적인 예측도 내놨다. 수학계 최고 난제 모음인 밀레니엄 문제(Millennium Prize Problems) 중 하나를 AI가 2027~2028년쯤 풀어낼 것으로 봤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새로운 밀레니엄 수준의 문제를 AI 스스로 제안하는 것이다. “탑 수학자들이 평생 연구할 만한 깊이의 문제를 AI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 그것이 진정한 과학적 창의성의 기준입니다.”

창업자에게: API 래퍼는 사라진다

허사비스는 지금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경고를 던졌다.

지금 AI 스타트업 중 적지 않은 곳이 기존 파운데이션 모델(GPT, 제미나이 등)의 API 위에 얇은 껍데기를 씌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그 서비스가 순식간에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차별화된 기능이 내일 GPT의 기본 기능이 되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 API만 감싼 회사들은 다음 모델 업데이트 한 방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가 추천하는 방향은 ‘AI × 딥테크의 교차점’이다. 신소재, 신약 개발, 로보틱스, 세포 생물학처럼 물리적 세계를 다루는 분야 — 허사비스는 이를 ‘원자 세계(world of atoms)’라고 불렀다. 이런 영역은 파운데이션 모델 업데이트 한 방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수년간 쌓은 도메인 전문성과 독자적인 데이터, 하드웨어 통합이 자연스러운 해자(moat)가 된다.

AGI가 창업 사이클 한복판에 등장한다

AGI 타임라인이 이 조언을 더 긴박하게 만든다.

테크 스타트업은 보통 창업부터 엑시트(exit)까지 10년 정도 걸린다. 허사비스의 예측대로 2030년에 AGI가 등장한다면, 오늘 창업한 회사는 성장 사이클 한복판에서 AGI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때 어떤 회사가 살아남는가.

그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AGI가 등장하면 우리 회사의 접근 방식이 쓸모없어지는가. 아니면 AGI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가.

“AGI와 싸우지 마세요. AGI가 호출하게 될 수직 전문 시스템을 만드세요.”

허사비스는 미래의 AGI가 단일 거대 두뇌가 아닐 것이라고 봤다. 범용 모델이 전문 시스템들을 자율적으로 호출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문 시스템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창업자에게 가장 방어적인 전략이다.

추론 비용이 무료가 되면

AI를 실행하는 비용, 즉 추론 비용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1년 전에 1000달러짜리였던 연산이 지금은 10달러가 됐다. 이것이 무료에 가까워지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허사비스는 ‘제번스 역설(Jevons Paradox)’을 들었다. 19세기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발견한 현상으로, 석탄 엔진의 효율이 높아지자 오히려 석탄 소비량이 더 늘었다. 싸지면 더 많이 쓰게 된다. AI도 마찬가지다. 추론 비용이 떨어질수록 AI를 활용하는 범위가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결국 가용한 컴퓨팅을 다 소진하게 된다.

그래서 허사비스는 말했다. “추론이 진정으로 무료가 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 세상을 가정하고 서비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어려운 길을 택하라

대담 말미, 허사비스는 창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문제를 쫓는 것과 쉬운 문제를 쫓는 것은, 그냥 다르게 어려울 뿐입니다. 인생이 짧습니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에 에너지를 쏟으세요.”

2010년 딥마인드를 창업할 때 투자자들은 “이미 실패한 분야”라며 등을 돌렸다. 학계에서도 AI는 한물간 주제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AI가 아직 작은 차고 안에 있더라도, 저는 계속했을 겁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알파고는 6년 후 서울의 바둑판 위에 앉았다. 알파폴드는 10년 후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10년 후 AGI가 등장하는 세상에서, 지금 무엇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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