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뱅킹 플랫폼 슬래시, 1억 달러 시리즈C 유치…기업가치 14억 달러로 유니콘 등극


전통 은행은 모든 기업에게 똑같은 계좌 하나를 내민다. 마케팅 대행사든 이커머스 업체든 헬스케어 기업이든, 금융 흐름이 아무리 달라도 마찬가지다. 그 불편을 사업 기회로 본 스타트업이 있다.

slash series c funding - 와우테일

기업 뱅킹 플랫폼 슬래시(Slash)가 시리즈C 라운드에서 1억 달러를 조달했다고 발표했다. 리빗 캐피털(Ribbit Capital)이 주도하고,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와 굿워터 캐피털(Goodwater Capital)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NEA와 Y컴비네이터(Y Combinator)도 네 번째 연속 투자다. 기업가치는 14억 달러로, 16개월 전 시리즈B 당시(3억7000만 달러)의 약 4배다. 누적 조달액은 1억6000만 달러를 넘어섰고, 이번 라운드로 유니콘 지위에 올랐다.

위기가 만든 피봇

슬래시의 시작은 지금과 꽤 달랐다. 2021년,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CEO 빅터 카르데나스(Victor Cardenas)와 워털루대를 그만둔 CTO 케빈 바이(Kevin Bai)는 당시 19세였다. 두 사람이 처음 겨냥한 시장은 팬데믹 호황을 타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스니커즈 리셀러였다. 버추얼 계좌와 결제 인프라를 만들었고, NEA·Y컴비네이터 등으로부터 1900만 달러를 모았다.

그런데 2022년 말 시장이 무너졌다. 당시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핵심 상품은 아디다스와 래퍼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공동 개발한 이지(Yeezy) 라인이었다. 그런데 카니예가 반유대적 발언을 쏟아내자 전 세계적인 불매 운동이 일었고, 아디다스는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이지 파트너십을 전격 종료했다. 이지 공급이 끊기면서 리셀 거래량이 급감했고, 슬래시의 매출도 거의 80% 폭락했다. 팀을 꾸린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카르데나스와 바이는 접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수평으로 모든 기업을 아우르는 램프(Ramp)·브렉스(Brex)·머큐리(Mercury)와 정면 승부하는 대신, 업종별 고유한 금융 문제를 해결하는 ‘버티컬 뱅킹’으로 방향을 틀었다.

첫 피벗 타깃은 퍼포먼스 마케팅사였다. 이들은 여러 광고주 클라이언트의 예산을 동시에 집행하면서, 고객사별로 지출을 완전히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 슬래시는 가상 계좌로 이 문제를 풀었다. 클라이언트마다 별도 계좌를 만들어 지출 흐름을 깔끔하게 추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시리즈B 발표 당시 카르데나스는 포춘 인터뷰에서 “전체 페이스북 광고의 1% 이상이 슬래시 카드로 결제된다”고 밝혔다. 피벗은 통했다.

2년 만에 연 매출 25배

이후 슬래시는 버티컬을 빠르게 확장했다. 현재는 이커머스, 헬스케어, 도급업체, 어필리에이트 마케터, 여행사, 도매업자, 웹3 기업 등 5000개 이상의 사업자가 고객이다. 연간 결제 처리량은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능은 출시 9개월 만에 연 환산 거래량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연 매출은 2년 만에 1000만 달러에서 2억5000만 달러로 뛰었다.

제품군도 넓어졌다. 법인 카드, 기업 당좌예금, 인보이싱, 지출 관리, 트레저리, 운전자본 대출, 글로벌 USD 계좌,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단일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지난 12개월간 100개 이상의 기능을 출시했으며, AI 에이전트 기반 재무 자동화도 플랫폼에 얹고 있다.

뱅킹 인프라는 플레이드(Plaid) 임원이 공동창업한 찰터드 뱅크 컬럼(Column)을 기반으로 한다. 2023년 뱅킹-애즈-어-서비스 중개사 시냅스(Synapse)가 붕괴하며 업계에 혼란이 빚어졌을 때 슬래시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투자자들이 베팅한 것

리빗 캐피털 창업자 미키 말카(Micky Malka)는 “인원 대비 아웃풋 비율이 최고의 AI 네이티브 기업들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코슬라 벤처스 파트너 자이 사즈나니(Jai Sajnani)는 “슬래시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돈을 움직이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들을 위한 금융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 VC 모두 핀테크 이력이 깊다. 리빗은 로빈후드(Robinhood)·코인베이스(Coinbase)·크레딧카르마(Credit Karma)를, 코슬라는 스트라이프(Stripe)·어펌(Affirm)·램프를 초기에 베팅했다.

카르데나스는 “24개월 만에 연 매출 1000만 달러에서 2억5000만 달러로 성장했다. 이번 라운드로 더 많은 산업과 시장, 그리고 기업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금융 도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장기 포부는 더 야심차다. 시리즈B 당시 그는 “버티컬별 금융 문제를 계속 해결해 나간다면, 미국 최대 기업 신용카드 발행사 중 하나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투자로 그 길이 한층 가까워졌다.

혼전 중인 기업 뱅킹 시장

슬래시가 파고드는 기업 뱅킹·지출 관리 시장은 지금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가장 큰 뉴스는 브렉스(Brex)의 행방이다. 한때 기업가치 123억 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렉스는 2026년 1월 캐피털원(Capital One)에 51억5000만 달러에 인수됐다. 연 매출 7억 달러에 현금흐름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2022년 최고 평가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브렉스가 독립 경쟁자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은 셈이다.

램프(Ramp)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네 번 투자를 받으며 기업가치를 130억 달러에서 320억 달러로 불렸다. 연 매출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AI 에이전트 기반 재무 자동화 플랫폼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머큐리(Mercury)는 스타트업 전문 디지털 뱅킹으로 차별화된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세쿼이아 주도로 시리즈C 3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5억 달러를 기록했고, 2025년 연 매출 6억5000만 달러에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30만 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50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로 추가 투자 유치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도에서 슬래시의 위치는 독특하다. 램프와 머큐리가 점차 모든 기업을 아우르는 수평 플랫폼을 지향하는 동안, 슬래시는 업종별 금융 문제를 파고드는 버티컬 전략을 고수한다. 카르데나스가 말하는 경쟁 우위의 핵심은 그 차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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